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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친구 위한 밥 한끼… 空講(공강·수업 사이에 빈 시간) 1시간 알바의 작은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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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생 39명의 '십시일밥']

끼니 거르는 저소득 학생 위해 교내식당서 배식·세척 알바

커피 마시고 당구 치는 대신 일주일에 1시간씩만 투자… 식권 500장 모으기에 나서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학생식당엔 지난 1일부터 특별한 아르바이트생들이 나온다. 식당이 가장 바쁜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사이 39명의 학생이 돌아가면서 배식과 식권 판매, 식기 세척을 돕는다. 식권 판매와 배식은 시급 5500원, 식기 세척은 7000원이다. 노동의 대가는 돈이 아닌 식권이다. 3시간 식기 세척을 하면 3000원짜리 식권 7개를 받는 식이다. 이 식권의 주인은 따로 있다. 한 끼 식사비도 부담이 되는 교내 250명의 기초생활수급 가정 대학생들이다. 39명의 아르바이트생들이 일주일에 한 번, 자신의 공강(空講)시간 1시간씩을 투자해 가난한 친구들에게 '밥'을 만들어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아르바이트 이름도 '십시일반(十匙一飯)'에서 따온 '십시일밥'이다.

식기 세척 봉사를 하는 중문과 3학년 서현석(23)씨는 "친구 2명이 식권 하나로 밥을 타 나눠 먹는 모습을 보고 돕고 싶단 생각이 많았다"고 했다. 서씨는 "내 용돈을 아껴 1만~2만원씩 도울 수도 있지만 친구 자존심이 다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내 힘으로 주변 친구를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자원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서울 성동구 한양대 한양플라자에 있는 학생식당에서 공강 시간을 이용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십시일밥’ 멤버들. 이 학생들이 일주일에 하루 1시간씩 식기 세척 아르바이트를 하고 받은 식권은 기초수급계층 학생들에게 익명으로 전달된다. /이태경 기자


'십시일밥'은 이 학교 경영학과 3학년 이호영(24)씨의 아이디어다. 그는 "커피 마시고 당구나 치며 보내는 공강시간에 일을 해, 밥값을 버느라 수업시간 외엔 아르바이트만 하는 친구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누군가에겐 쉬운 밥 한끼지만 어려운 친구들은 이 한끼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 때문에 학점이 떨어지고 취직이 어려워지는 악순환에 빠지기도 해요." 그는 "모두의 공강시간을 모으면 친구들의 밥 한끼가 되고 그건 다시 그들이 공부하는 데 필요한 소중한 시간이 된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번 학기 독일에 교환학생으로 갈 예정이었지만, 십시일밥 아이디어를 실행하기 위해 그걸 포기했다.

이씨는 지난 6월 사비 30만원을 털어 교내 곳곳에 동참할 사람을 찾는 포스터를 붙였다. 페이스북에도 글을 올렸다. 일주일 만에 60여명이 찾아왔다. 그중 2학기 공강 시간이 배식시간과 맞는 39명이 우선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이다. 식권 판매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양대 정보시스템학과 한지수(19)씨는 "과외보다 힘들지만 1시간을 투자해 얻을 수 있는 보람은 비교할 수 없이 크다"고 말했다. 한씨는 "학과 친구들도 원래는 학과 건물이 학생식당과 멀어 잘 이용 안 하는데 이 아르바이트 취지를 알고 일부러 와서 먹고 간다"고 했다.

잔반 처리를 하는 경영학과 최규하(22)씨는 "라면으로 하루 끼니를 모두 때우는 친구를 위해 일한다"고 했다. 최씨는 "바쁠 땐 식판을 옮기는 컨베이너 벨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컨베이너 벨트를 멈춰 놓고 일할 정도지만 친구를 돕고 있단 생각에 신이 나 '식판아 더 늘어나라'고 외친다"고 했다. 이들의 노력으로 지난 17일까지 식권은 총 150장, 약 45만2000원 상당이 모였다. 이들 목표는 10월 말까지 500장의 식권을 모으는 것. 39명의 공강 1시간이 기초수급가구 대학생 250명의 밥 두 끼가 되는 것이다.

봉사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은 화학과 11학번 장다솔(22)씨는 "봉사활동은 대개 멀리 가거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해 쉽게 하기 힘든데 학교 안에서 공강 시간을 이용하는 봉사라 꼭 하고 싶다"고 했다.

아이디어가 실현될 때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교내에 2곳의 식당을 운영하는 한 대기업은 "바쁘다"며 설명할 기회도 주지 않았고 다른 대기업은 "취지는 좋은데 기존 인력이 있어 방법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다행히 학교가 자체 운영하는 학생식당에서 "2학기부터 아르바이트생을 새로 고용할 수 있다"고 했다. 학생식당 김민지(34) 영양사는 "솔직히 부담이 적잖았다"고 했다. 짧은 시간에 많은 학생이 돌아가면서 일을 하니 숙련도가 낮고 매번 학생들에게 새로 설명하는 게 업무를 지연시키진 않을까, 다치진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컸다고 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2명이 할 일을 3명이 나눠 하거나 30분씩 일찍 와 일을 배웠다. 덕분에 기존 인력보다 생산성이 높아졌다.

식기세척을 하는 20명의 학생은 안전사고에 대비해 각자 손해보험도 들었다. 돈을 벌겠다는 목적보다 남을 돕겠다는 목적으로 일하니 분위기도 밝아졌다는 게 학생식당 측 설명이다. 학생들은 교내 다른 식당, 다른 대학에도 십시일밥을 퍼뜨리는 게 목표다.

[남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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