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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한-미 FTA 효과’…외국산 담배가 더 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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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정부의 ‘담뱃값 2천원 인상안’ 발표 계기로

살펴본 담배와 한-미 FTA의 역학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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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9월11일 현재 2500원 수준(국산 담배 ‘에쎄 라이트’ 기준)인 담뱃값을 내년 1월1일부터 4500원으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담배로 인한 국민 건강의 심각한 피해를 줄이기 위한 조처라는 게 정부의 주장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담뱃값 인상으로)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인 흡연율(성인 남성 기준 43.7%)을 2020년까지 29% 이하로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등은 정부가 부족한 세수를 메우려고 간접세 성격의 담뱃세를 올리려 한다고 비판한다. 야당은 서민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며 반대했다. 통상법 전문가가 담배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역학관계를 풀어낸 글을 보내왔다. _편집자

담뱃값은 담배회사가 정한다. 국가는 담배에 매기는 세금을 정한다. 인상된 세금을 반영해서 담배회사가 담배 가격을 정한다. 그러므로 국가가 담뱃값을 올린다고 할 것이 아니라 담뱃세를 인상한다고 해야 맞다.

담뱃세 1768원을 추가로 걷겠다는 정부

담뱃값이 2500원이라고 하면, 담배 소비세가 641원, 국민건강증진 부담금이 354원, 지방교육세가 321원, 부가가치세가 234원 등 모두 1550원이 조세와 여러 부담금이다. 정부는 여기에 개별소비세(594원)라는 세금 항목을 신설하고 건강증진부담금을 841원으로 올리는 등 모두 1768원의 담뱃세를 추가로 걷는다고 발표했다. 담뱃세는 1550원에서 3318원으로 2배 이상 늘어난다. 세금은 법률로 정한다는 원칙에 따라 국회가 이 세금과 부담금을 올리기로 의결해야 한다. 그러니 담뱃값 인상이 아니라 담뱃세 인상이다. 담뱃세를 인상하면 금연으로 이어질까? 담배와 술을 보면 이상과 현실이 서로 다른 낱말임을 실감하게 된다. 현실적으로 국민의 삶의 조건이 나빠지는 한 담뱃세 인상은 금연이라는 이상을 실현하지 못한다.

담배와 술은 서민에게 짧은 시간이나마 탈출구요, 탐닉의 대상이다. 군복 입은 청춘들에게 담배를 적극 권장한 것이 바로 국가였다. 낯선 말이 되었지만 ‘엽연초 쿠폰’이란 것을 국가는 군복 입은 청춘들에게 공짜로 나눠주었다. 살벌한 구타 현장에서도 담배는 잠깐의 평화를 만들어줬다.

우리 사회에서 담배를 피우는 다수인 서민들의 삶의 조건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그래서 담배와 소주를 통해 짧은 순간이나마 현실을 잊고 현실을 정지시키고 싶은 충동이 온 세상에 더욱 무성하다. 그러니 담뱃세를 올린다고 해서 바로 금연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에 필요한 돈을 더 뺏어갈 뿐이다.

담뱃세를 더 걷어야 할 만큼 다급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4대강 사업이 상징하듯이 공공예산이 소수의 자본을 위해 허비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합부동산세 폐지와 법인세 인하와 같이 부자를 위한 감세 때문이다. 결국 담뱃세 인상은 부자를 위해 서민을 더 희생시키는 정책이다.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는 담뱃세를 올릴 것이 아니라, 국가가 범국가적 금연운동을 전개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과제가 남아 있는데 바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다.

40%의 담배 관세율 15년 안에 폐지

나는 한-미 FTA 대상에서 담배를 빼라고 줄곧 요구했다. 현재 외국산 담배를 수입하면 수입가의 40%를 관세로 내야 한다. 그러나 한-미 FTA에서는 어떤가? 40%의 담배 관세율을 15년 안에 폐지해야 한다. 담배 관세율은 2017년 1월1일 26.6%, 2022년 1월1일 13.3%, 그리고 2027년 1월1일 최종적으로 0%가 됨을 의미한다.

편의상 앞에서 본 담뱃값 2500원의 원가 구조를 미국산 담배에도 적용하면, 여기에는 제조 마진을 포함한 제조원가가 707원이다. 여기에 관세 40%를 적용하면 약 282원이 관세이다. 결국 한-미 FTA는 미국산 담배 가격을 282원 낮춘다.

국내 판매 담배 중 국산이 약 62%, 외국 담배가 약 38%다. 외국산 담배 가격은 대개 2700원 수준이다. 국산 담배보다 200원 정도 더 비싸다. 결국 관세가 철폐되면 미국산 담배가 상대적으로 더 싸질 수 있다.

게다가 한-미 FTA에는 공중보건을 위한 관세 철폐 예외 조항이 없다. 기존 관세율을 올리거나 새로운 관세를 채택할 수 없다. 관세 철폐에 대한 유일한 예외 조치로 ‘세이프가드’(Safeguard)가 있다. 여기서의 ‘세이프’는 국민 건강의 ‘안전’을 의미하지 않는다. 국내 담배회사의 ‘안전’을 의미한다.

한-미 FTA에서 외국산 담배의 소비를 줄이기 위해 담배 관세를 올리는 정책은 금지된다. 국산 담배와 외국산 담배의 가격 차이가 없어진다. 외국산 담배 가격이 더 쌀 수도 있다. 외국산 담배 구입 유혹은 더 강력해진다.

담배회사는 한-미 FTA에서 ‘투자자’로 보호받는다. 극적인 변화다. 한-미 FTA 11장의 투자자 조항을 보자. 담배산업의 설립, 인수, 확장, 관리, 수행, 운영 및 판매에서 여러 보호를 제공한다. 상표 및 특허 등 담배산업의 지적재산권을 ‘투자’로 보호하고, 예외 없이 담배산업에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를 비롯한 국제 기준에 따른 대우를 받을 권한을 부여하며, 예외 없이 담배산업의 재산을 ‘간접 수용 보상’ 법리에 따라 보호한다.

담배회사를 두텁게 보호하는 한-미 FTA

미국 담배회사는 국제중재회부권을 국가에 행사할 수 있다. 만일 한국 정부가 담배광고의 포괄적 금지를 포함해서 담배 포장 및 상표나 광고 문구에 대한 강력한 금연정책을 펼 경우 미국 담배회사는 한국 정부를 국제중재에 회부할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아무런 문구나 도안이 없는 담배 포장법을 시행하자 필립모리스는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를 국제중재에 회부했다. 한국 국회가 국제중재에 회부될 경우 준거법은 한-미 FTA와 국제법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이 더 이상 공공정책의 정당성을 뒷받침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미 FTA에서 관세를 없애는 제품은 소비를 증가시키고 소비자 복지를 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담배는 다르다. 담배 소비를 늘린다고 해서 소비자 복지가 늘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담배를 한-미 FTA에서 빼야 한다. 담배회사들이 한국 정부와 국회의 강력한 금연정책에 복종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유엔 담배협약의 서문에서 선언한 대로 국민 건강을 보호하는 국가의 권리가 우선권을 갖는다.

송기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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