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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세상에 찌든 몸을 해독하는 음식, 황태해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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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 서민식당 발굴기]

서울 내발산동 <똑순이막국수>

해독식품 '황태'

추석 연휴 전 아는 식당 업주에게 책을 선물하러 방문했다. 서울 내발산동 <똑순이막국수> 주인장으로 운영 자세가 참 좋은 식당 업주다. 그에겐 식재료를 늘 좋은 것만 사용한다는 원칙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원재료비에 담대하다. 원가를 줄이기보다는 많이 팔면 남는다는 소신으로 식당을 운영하며, 단기적 수익추구보다는 맛있고 좋은 음식 만들기에 더 신경을 쓴다. 그래서인지 작년 가을, 좋은 입지에서 훨씬 불리한 입지인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는데도 매출은 비약적으로 신장했다.

생각 이상으로 고객은 예리하다. 그래서 필자가 음식 과학서와 음식 인문학 서적 몇 권을 구매해서 방문했다. 손님 입장에서 이 식당이 더욱 진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처음엔 책을 전달하고 나서 동행 직원과 마포의 중식당이나 탕집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집 메뉴판의 황태해장국을 보고 생각이 바뀌어서 냉큼 그 메뉴를 주문했다.

황태해장국을 주문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여러 해 전 인터넷 뉴스에서 황태의 효능에 대한 내용을 주의 깊게 읽었다. 황태는 해독(解毒)에 매우 좋은 음식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기사의 근거에는 고 인산 김일훈 선생의 저서와 의술이 있었다. 인산 선생이 저술한 ‘신약본초’에서 황태를 해독의 신약(神藥)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선생은 황태를 푹 달여서 국물을 먹는 것이 좋다고 했다.

조선일보

황태해장국


인산 김일훈 선생(1909~1992)은 독립운동가이자 성리학자였으며 정치가였다. 선생은 이항로 계열의 화서학파 유림으로 민족정신이 투철하였다. 만주로 건너가 항일 투쟁을 벌이다 왜놈들에게 체포된 뒤 탈옥하여 오랜 세월 산 속에서 약초를 연구하기도 했다. 특히 자유당 정권 때 낙향한 후 민간의학자로서 가난한 민초들을 무료로 구완해 ‘의왕’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의왕’이란 칭호에는 존경과 권위가 담겼다.

"명태는 뭇별들 가운데 28수(宿) 중의 여성정(女星精)으로 화생하고 바닷물속의 수정(水精)으로 성장하므로 강한 해독제를 많이 함유하게 된다. 즉 최고의 해독 능력이 있는 해자(亥子)의 수정수기(水情水氣)를 체내에 가장 많이 지니고 있는 물체이다.
명태가 이처럼 강한 해독제를 지니고 있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지구상의 간동(艮東) 분야에 속하여 있어 우리나라 상공(上空)에 동방생기(東方生氣)의 특이한 색소가 조직되어 있고 바닷물 속에는 특이한 약소(藥素)가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명태는 천상 여성정의 수정수기를 받아 태어나 바닷물의 수정수기로 생장하며, 이를 말릴 때 공간의 수정(本體)과 화기(火氣)인 전류(電流) 속에 조직되어 있는 색소가 합성되므로 가장 강력한 해독제가 되는 것이다. 동지가 지나면 수기(水氣)가 약화되므로 명태는 반드시 입동 후 동지 전의 것을 잡아서 약용으로 써야 하는 것이다,

다소 성리학의 우주관적 해석이 들어간 내용이다. 쉽게 설명하면 황태 최고의 효능은 ‘해독’이다. 특히 간 해독에 좋은 음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서양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다소 비논리적이라는 비판의 여지도 있다. 하지만 인산 선생의 약리론에는 현대 과학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하여 무조건 내칠 수 없는 측면도 많다. 실제 그의 이론에 따라 건강을 되찾은 사람도 있고, 그의 삶은 병고에 시달리는 가난한 민초를 구하고자 하는 이타행으로 점철되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은 후 가급적 황태나 명태 등을 먹으려고 노력했지만 막상 시중에 황태국을 맛있게 제공하는 식당은 별로 없었다.

시원하면서 중독성 있는 황태 국물 맛

식당 정보에 대해서 일반인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는 필자도 황태국 맛있는 곳 하면 딱 떠오른 곳이 거의 없다. 무교동에 소재한 북어국 집이 평이 좋지만 가본 적은 없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똑순이막국수>에서 황태해장국을 주문했다. 반찬이 정갈했고, 김치와 장아찌 모두 가정식 같은 맛이 났다.

황태해장국이 날달걀과 같이 나왔다. 펄펄 끓는 소리가 들렸다. 황태와 함께 부추와 콩나물이 듬뿍 들어갔다. 국물이 시원하면서 담백했다. 황태국의 매력은 깔끔하면서도 끌어당기는 맛에 있다. 우리 입맛에는 고단백 저지방인 황태, 코다리 북어 등이 아주 잘 맞는다. 황태, 명태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식유전자가 유유히 흐르고 있다. 황태 국물은 몸에도 좋지만 은근한 중독성이 있다. 간만에 맛있는 황태해장국을 먹었다. 먹는 도중 달걀을 넣었다. 국물이 뜨거워서 반숙 상태로 금방 익었다. 후후 불면서 반숙일 때 날름 먹었다.

해장국에 들어간 황태 양이 섭섭지 않았다. 우리는 무국이나 콩나물국 등 맑은 국물에 고춧가루 넣는 것을 좋아한다. 황태해장국에 고춧가루를 풀었다. 얼큰해서 좀 더 입맛에 맞았다. 속이 확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 식당 업주의 성격상 고춧가루도 국내산을 사용했을 것이다.

조선일보

황태해장국


술을 아주 좋아하지는 않지만 황태국은 해장으로도 더 좋을 것 같다. 해장국과 반찬이 모두 맛났다. 아는 식당 중 맛있는 곳이 많다는 것도 부담스럽다. 다이어트는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앞선다. 국물을 완전히 비웠다. 최근 아내가 염도 때문에 국물을 가급적 먹지 말라고 했지만 해독제인 황태국은 국물을 많이 먹는 것이 좋다. 이런 국물이면 싹 먹어도 몸에 이로울 것 같다. 어떤 자료를 보니 미국에 거주하는 교포가 황태 국물을 먹고 암을 치유했다는 내용도 있다. 사무실 인근에 이런 황태 국 전문점이 있으면 좋겠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황태국으로 해결할 터인데.

설사 황태가 해독에 효능이 없다고 치더라도 저지방 고단백이기 때문에 몸에는 나쁠 것도 없다. 황태, 명태는 우선 입맛에 맞는다. 필자의 블로그를 본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는 몰라도 연휴 때 아내가 황태국을 여러 번 끓여주었다. 조미료가 배제된 가정식 황태국이었다. 솔직히 맛은 <똑순이막국수>가 더 괜찮았지만, 아내의 성의를 생각해서 싹싹 비웠다. 특히 국물은 남김없이 먹었다.

필자는 보쌈을 별로 안 좋아한다. 그래서 즐겨 먹지 않는다. 그러나 이 집 보쌈은 남다르다. 좋은 식재료와 더불어 늘 음식을 맛있게 제공하려는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날도 기왕 내왕한 필자에게 막국수 면 품평을 요청해왔다. 막국수 수요가 급격히 줄어드는 시기인데도 내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 황태국을 사무실 인근의 아는 식당 업주보고 배우라고 해서 자주 먹어야겠다.

지출 (2인 기준) 황태해장국(7000원) = 1만 4000원
<똑순이막국수>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700, 02) 2064-2626

글·사진 김현수 외식콘셉트 기획자(NAVER 블로그 ‘식당밥일기’)
외식 관련 문화 사업과 콘텐츠 개발에 다년간 몸담고 있는 외식콘셉트 기획자다. ‘방방곡곡 서민식당 발굴기’는 저렴하면서 인심 훈훈한 서민스러운 음식점을 사전 취재 없이 일상적인 형식으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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