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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허삼관’ 하정우 “제가 연기하고 컷 외치려니 많이 어색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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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

[OSEN=순천, 김범석 기자] “조명은 오케입니다. 이번엔 앵글 한번 맞춰볼게요.” “자, 관광객들 현장 통제 확실히 해주시고, 감독님 나오십니다.”

무전기를 든 조감독이 “레디 액션”을 외치자 왁자지껄했던 시장통이 일순간 적막해지고 하정우 성동일 김성균이 빙 둘러앉아 순대를 안주삼아 막걸리를 들이켠다. “오늘처럼 피 뽑고 난 뒤엔 말이여 이 돼지간이 최고여. 자 얼른들 한 사발씩 들이켜자고. 쭉.” 성동일의 너스레에 하정우가 고개를 연신 끄덕이더니 대뜸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 상담에 들어간다. “근데 저 좋아하는 여자 생겼어요. 계속 그 여자 생각이 나 미칠 것 같아요.”

일교차가 부쩍 커진 8월 하순 어느 날. 1960년대를 재현한 전남 순천 야외세트장에서 영화 ‘허삼관 매혈기’ 촬영이 한창이었다. 감독 겸 주연을 맡은 하정우는 세트와 모니터를 수시로 오가며 결과물을 체크하느라 몹시 분주해 보였다. 때론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같은 장면을 10번도 넘게 찍을 때도 있었지만, 흡족한 얼굴로 한두번 만에 OK 컷을 건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럴 땐 월척이라도 낚은 것마냥 표정에 희열이 번졌다.

“장마 때문에 일정이 좀 딜레이 됐어요. 아직 갈 길이 먼데 마음만 급하죠.(웃음) 그래도 현장에 패기와 파이팅이 넘쳐요. 드라마도 잘 붙고 예상보다 좋은 장면이 많이 나와서 만족하며 찍고 있어요.”

얼핏 봤을 때 스태프들의 평균 연령은 30대 초반. 다른 현장보다 확연히 젊어보였다. 하정우 보다 연장자를 찾기 어려웠는데 대부분의 스태프들이 ‘군도’ 팀에서 넘어왔고, 하정우의 모교인 중앙대 연영과 출신들도 많다고 했다. '허삼관 매혈기'는 한 평생 가족을 위해 피를 팔아야 하는 한 아버지의 이야기.

이날 말로만 들었던 스탠딩 배우의 활약과 쓰임새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준비 상황을 일일이 점검해야 하는 감독 하정우를 대신해 그와 신체 조건이 비슷한 30대 배우가 조명, 카메라 세팅 때마다 프레임 인, 아웃을 반복하는 모습이 꽤나 이채로웠다.

헤어스타일은 물론이고 의상까지 비슷하게 맞춰 입은 스탠딩 배우가 하정우 연기 포지션에 위치해 있다가 슛이 들어가기 직전 빠지고 그 자리에 실제 하정우가 들어가 연기하는 식이었다. 현장에서 “주환이”로 불린 이 스탠딩 배우는 하정우의 대사는 물론이고 상대방 대사와 지문까지 완벽하게 외우느라 들고 다니던 콘티 북이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졌다.

한 연출부원은 “할리우드에선 스탠딩 배우의 활용도가 높지만 국내에선 아직 도입기”라며 “아무래도 카메라나 조명, 의상 세팅할 때 시간이 절감되고 주연 배우의 연기 집중도가 높아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허삼관’처럼 주연과 감독이 한 사람일 때는 선택이 아닌 필수 요건이라고 부연했다.

또 하나 궁금했던 건 과연 ‘컷을 누가 외칠까’였다. “레디 액션”과 “컷” 모두 조감독 담당일 거라 예상했지만 절반은 빗나갔다. “컷”은 하정우 감독 몫이었다. 하 감독은 모든 장면에서 상대 배우들과 콘티대로 연기한 뒤 1~2초 더 호흡을 가진 후 조용히 “컷”을 외쳤다. 연기 도중 NG가 나면 즉시 중단하고, 감정과 편집점 등을 고려해 감독이 직접 “컷” 사인을 내는 방식이었던 거다.

“처음엔 제가 연기한 뒤 제 입으로 컷을 하려니까 되게 어색한 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익숙해져서 괜찮아요.(웃음) 어떠셨어요? 처음엔 좀 낯설어 보이죠?”

이날 오전 허삼관 집에서의 촬영을 마친 옥란 역 하지원은 오후 일정이 없어 숙소로 돌아갔는데, 하정우의 삼고초려에 가까운 섭외 덕분에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하지원과 공연하고 싶었던 하정우는 중국 소설가 위화의 원작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하지원을 위해 여러 차례 시나리오를 고치며 그녀의 결정을 기다렸고, 이런 정성 덕분에 두 사람은 극중 부부가 될 수 있었다.

이날 식당 주인으로 출연한 배우 조선묵은 “하정우 하지원이 한때 배우마을이라는 기획사에 아주 잠깐 소속된 적이 있었는데 서로 마주칠 일이 없었던 두 사람이 그런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더라”며 파안대소 했다. 하지원은 영화 ‘진실게임’에 출연하기 전이고, 잠원동에 살던 하정우도 무명이던 신인 시절 얘기였다. 짧게나마 한 회사에 적을 뒀던 두 신인이 공히 대한민국 최고 배우로 성장한 뒤 극중 부부로 재회한 것이니 결코 가벼운 인연이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내친 김에 조선묵에게 슬쩍 물었다. “하정우 감독, 현장에서 어때요?” “군도에 이어 또 만나게 됐는데 옆에서 볼 때마다 감탄 그 자체죠. 일단 지치질 않아요.(웃음) 무엇보다 작품을 보는 눈이 정확하고 디테일하죠. 연기 뿐 아니라 연출력도 굉장한데 아마 ‘허삼관’ 개봉하면 다들 깜짝 놀라실 겁니다. 거기까지만 할게요.”

해가 옆으로 뉘엿뉘엿 눕기 시작한 오후 7시. 먼지 폴폴 날리던 시장 장날 36회차 촬영이 모두 끝나자 누군가 사온 빙과류 메로나, 비비빅이 현장의 활력소가 됐다. 하정우는 검정 비닐봉지에서 메로나를 하나씩 나눠주며 배우, 스태프들과 눈을 맞췄다. “감독님, 오늘도 고생하셨어요.” “뭔 소리?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날 뜨거운데 여러분이 힘드셨죠.” ‘감독 하정우’에서 ‘인간 하정우’로 시프트 되는 순간이었다.

‘롤러코스터’에 이어 하정우의 두 번째 연출작 ‘허삼관 매혈기’는 NEW의 배급으로 내년 1월 개봉될 예정이다. 현재까지 공정이라면 '베를린'을 함께 했던 류승완의 기대작 '베테랑'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게 된다.

bskim012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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