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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떴다, '義警(의경)고시'… 구타 사라지자 인기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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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경 창설 32년 만에 20대1 역대 최고 경쟁률 행진]

대학가 스터디 모임 등장… 재수·3수 예사, 9수생까지

"30㎏ 감량" "전세계 首都 암기" 인터넷에 합격 후기 쏟아져

서울 중구 신당동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본부. 지난 1일 오후 이곳 대강당의 문을 열자 '훅' 하고 더운 김이 밀려왔다. 넓이 600㎡(약 180평) 강당 안에 웃통을 벗어젖힌 의무경찰 지원자 203명이 팔굽혀펴기·넓이뛰기를 하고, 배를 하늘로 향한 채 몸을 구부리는 유연성 테스트를 받고 있었다.

필기시험, 인성검사, 신체·체력검사 순으로 진행된 선발 시험 가운데에는 상의를 벗고 허벅지가 보이도록 바짓단을 걷어올리는 것도 있었다. 시민에게 위화감을 주는 문신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마지막 면접 순서. 면접관이 "여러 번 지원한 사람은 손들어보라. 그간 왜 떨어진 것 같으냐"고 물었다. 이번이 여섯 번째라는 지원자가 "그걸 물어보려고 다시 왔다"고 소리쳤다. 이곳에서는 6일째 오전·오후로 매일 같은 풍경이 벌어졌다. 이날 오전만 해도 248명이 시험을 치렀다. 시험은 이틀이나 더 이어졌다. 예전에는 한나절이면 끝날 시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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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본부 대강당에서 의무경찰 선발시험 응시자들이 줄을 맞춰 앉아 인·적성 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이번 322차 선발 시험의 경쟁률은 20대1을 웃돌아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김지호 기자


한 감독관은 "의경 창설 이래 한 기수 선발 시험을 8일에 걸쳐 치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1m60㎝ 수준이던 넓이뛰기 커트라인도 1m80㎝로 높아졌다"고 말했다. 20대1로 역대 최고 경쟁률을 기록한 322차 의무경찰 선발 시험이 빚은 진풍경이다.

창설 32년을 맞은 의경 지원율이 올해 사상 최고 행진을 벌이고 있다. 의경 선발 경쟁률은 6월 13.4대1을 시작으로 3개월 연속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7월 경쟁률이 19.3대1이었고, 현재 선발이 진행 중인 8월에는 1000여명 모집에 2만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 모병제로 운영되는 육군(기술행정병)·해군·공군 지원 경쟁률을 모두 합해도 의경에 미치지 못할 정도다.〈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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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률이 높아지면서 합격의 관문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대학가에서는 '의경고시(高試)'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대기업 입사시험이나 고시를 준비할 때나 나올 법한 스터디(공부모임)까지 만들어졌다. 재수·삼수는 예사다. 서울 용산경찰서에서 복무 중인 지윤용(22) 일경은 '장수생(長修生)' 출신이다. 2012년 10월부터 2013년 10월까지 의경 시험만 9차례 봤다. 서울대 재학 중 입대한 이기승(21) 일경은 "서울대는 한 번에 붙었는데 의경 시험은 삼수했다"고 말했다.

인터넷에는 '의경 합격 후기'가 올라온다. 송제우(21) 수경은 면접에서 '캐나다 수도가 어디냐'는 물음에 답을 못해 떨어졌다. 그다음 시험에선 200개국 수도를 모조리 외운 끝에 면접을 통과했다. 방배경찰서 방범순찰대 황우진(22) 상경은 체중이 108㎏으로 의경 지원이 불가능하자 6개월간 30㎏을 감량해 시험을 통과했다.

경찰은 구타·가혹 행위가 급감한 것을 의경 열풍의 원인으로 진단한다. 2011년 강원경찰청 소속 전투경찰 6명이 탈영해 가혹 행위를 신고한 사건이 계기였다. 당시 경찰청은 문제를 일으킨 부대 4개를 해체했다. 지방경찰청장급인 치안감이 "절대 신원을 보장할 테니 가혹 행위는 다 말해달라"면서 장병을 직접 상담토록 했다. 그해 1.7대1 수준이던 의경 경쟁률은 이듬해부터 치솟기 시작했다. 그게 지난해 8대1 수준이 됐다.

반면 서울 지역 의경부대의 구타·가혹 행위는 2006년 106건에서 2010년 81건, 2012년 20건으로 줄더니 지난해 8건, 올해는 7월 현재까지 2건으로 줄었다. 의경 경쟁률이 구타 건수와 정확히 반비례한 것이다.

올해의 경쟁률 신기록 행진을 두고는 경찰 관계자들은 "28사단 윤모 일병 구타 사망 사건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시험장에서 만난 지원자 대부분은 '윤 일병 사건'이 지원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유은성(20)씨는 "원래는 의경 지원할 생각이 없었는데 윤 일병 사건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고 말했다. 김지현(22)씨는 "28사단에서 상병으로 복무 중인 친구가 '윤 일병 사건 같은 일이 적잖다'고 해 무조건 육군은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도시에서 근무하며, 자주 외출할 수 있고, 자기 계발 시간도 가질 수 있다는 의경만의 장점도 경쟁률을 뒷받침하는 요소로 꼽힌다.

[김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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