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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종교가 사악해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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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오강남 교수의 아하!

중국 도가 사상의 고전 <장자> 첫머리에 보면 ‘붕’(鵬)이라는 새 이야기가 나온다. 북쪽 깊은 바다에 ‘곤’이라는 물고기가 살았는데, 이 물고기가 변하여 등 길이가 몇 천 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큰 ‘붕’이라는 새가 되었다고 한다. 이 새는 기운을 모아 하늘에 오르게 되면 그 날개가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았다. 바다 기운을 받아 ‘하늘 못’(天池)이라는 남쪽 깊은 바다로 날아간다.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거의 상징적·은유적임을 고려할 때 이 이야기에 나오는 붕새는 엄청난 변화의 가능성을 실현한 인간을, 그리고 그 거침없는 비상(飛翔)은 이런 변화를 실현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초월을 상징한다고 보아야 한다. <장자> 첫머리는 이처럼 인간이 생래적으로 지니고 있는 실존적 한계를 초월하여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와 같은 변화와 초월, 그리고 이에 따르는 자유는 세계 여러 종교의 심층에서 한결같이 권장하고 있는 기본적 가르침이다. 예수님이 말하는 ‘자유’, 부처님도 가르치는 ‘해탈’, 공자님이 언급한 ‘불유구’(不踰矩)의 경지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것은 종교의 이런 기본 가르침과는 상관없이 종교를 오로지 개인과 집단의 욕망을 부추기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표층 종교가 현실 종교계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버드대에서 비교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찰스 킴볼 교수가 쓴 책으로 <종교가 사악해질 때>라는 것이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종교가 사람을 구원할 수 있기도 하지만, 어느 종교든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증상을 보일 때는 사람을 망치는 사악한 괴물로 둔갑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한다. 그 다섯 가지란 첫째 자기들의 종교만 절대적인 종교라고 주장할 때, 둘째 맹목적인 순종을 강요할 때, 셋째 “이상적인” 시간을 정해놓을 때, 넷째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주장할 때, 다섯째 신의 이름으로 성전을 선포할 때라는 것이다.

가만히 우리 주위에 있는 종교를 살펴보라. 자기 종교만 진리이고 남의 종교는 모두 거짓이라 주장하는 종교, 독립적인 사고와 이해 대신 자기 종교에서 가르치는 것이라면 덮어놓고 믿으라고 강요하는 종교, 세상 종말이 임박했다고 겁박하면서 재산을 모두 헌납하고 자기들을 따르라고 종용하는 종교, 자신들이 하는 일은 모두 정당한 일이니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성취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싸움도 불사해야 한다고 부추기는 종교-이런 태도가 요즘 물의를 일으키는 어느 한 종파만의 일인가?

대략 이런 태도를 견지하는 종교를 일반적으로 ‘근본주의 종교’라 한다. “근본주의 그룹은 실제로 살인을 하지 않고, 실제로 누군가를 치지도 않지만 그 자체로 폭력이다.” “근본주의자가 가진 정신적 구조는 신의 이름으로 행하는 폭력이다.”

지난달 한국을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이다. 새겨들어야 하지 않을까?

오강남 경계너머 아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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