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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담뱃세 인상 카드, '건강' 명분에 '세수'는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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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와 협의 필요...국회 심의과정에서 논란 예상

연합뉴스

정부, 담뱃값 인상 추진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보건복지부가 국민건강 보호 차원에서 담배가격을 2천원 정도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 상점에서 담배를 고르는 시민.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오수진 기자 =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2일 국민 건강 보호 차원에서 지난 2004년 이후 약 10년동안 2천500원에 묶여 있는 담뱃값(담뱃세)을 올리겠다는 의지를 다시 밝혔다.

더구나 추진 목표로 제시된 조정 폭이 2천원으로, 국회를 거쳐 실행될 경우 인상률은 무려 80%에 이른다.

아직 다른 부처와 협의가 더 필요하지만, 해외 사례로 미뤄 담뱃값(담뱃세) 인상이 세수 확보에 일반적으로 도움이 되는 만큼 기획재정부나 여당이 동조한다면 범정부 차원에서 담뱃세 인상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 OECD 흡연율 2위에 담뱃값은 가장 싸…연간 1조7천억 진료비 '흡연 탓' 추정

우선 담뱃세 인상은 국민 건강·보건 측면에서 명분이 충분하다. 우리나라는 주요 선진국 가운데 1·2위를 다투는 세계적 '흡연 대국'인데다, 담배 가격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엄청 싸기 때문에 '흡연정책 후진국'의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복지부가 7월초 공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건강통계(Health Data 2014)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성 흡연율(15세 이상 매일 담배 피우는 사람 비율)은 37.6%로, 그리스(43.7%)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회원국 평균(24.9%)을 12%포인트(P) 이상 웃도는 수준이다.

반면 2012년 9월 현재 유럽연합(EU)산하 담배규제위원회가 OECD 22개국의 현재 담배가격(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의 담뱃값은 2천500원으로 가장 쌌다. 2014년 현재 역시 이 순위에는 변함이 없다.

물가를 고려해도 마찬가지이다. '더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2010년 기준 세계 빅맥 가격 통계에 조사값이 존재하는 OECD 9개국 가운데 담배가 빅맥보다 싼 나라는 한국(담배 2.11달러, 빅맥 2.82달러)과 일본(3.47달러, 3.67달러) 뿐이었다.

더구나 현재 우리나라 담배가격 가운데 담뱃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62% 정도로 WHO 권고값(70%)을 크게 밑돌고 있다. 현재 국내 담배가격을 구성하는 항목별 비중은 ▲ 유통마진 및 제조원가 39%(950원) ▲ 담배소비세 25.6%(641원) ▲ 국민건강증진부담금 14.2%(354원) ▲ 지방교육세 12.8%(320원) ▲ 부가가치세 9.1%(227원) ▲ 폐기물 부담금 0.3%(7원) 등이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담배 피우기 좋은 환경' 탓에 흡연에 따른 건강 피해 규모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선하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건강보험공단의 진료통계 빅데이터(약 130만명)를 활용해 길게는 19년동안 흡연의 건강·의료비 영향을 추적·분석한 결과, 담배를 피우면 후두암·폐암·췌장암 등 여러 종류의 암에 걸릴 확률이 최대 7배 정도까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는, 남성의 경우 흡연자의 후두암 발생위험 정도가 비흡연자의 6.5배에 달했고, 폐암과 식도암 위험 역시 각각 4.6배, 3.6배까지 컸다. 여성 흡연자의 후두암, 췌장암, 결장암 위험도 각각 담배를 피우지 않는 여성의 5.5배, 3.6배, 2.9배 수준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추정된 '흡연에 따른' 건강보험 진료비 지출은 2011년 기준 1조6천914억원에 이르렀다.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 46조원의 3.7%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다.

◇ 2004년 500원 인상에 흡연율 13%p 이상 떨어져…해외도 비슷

그렇다면 과연 담뱃값(담뱃세) 인상으로 흡연율을 떨어뜨릴 수 있을까. 정부와 학계에서는 "충분히 효과가 있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복지부는 우선 지난 2004년말 담뱃세를 500원 올리자 57.8%에 이르던 성인 남성의 흡연율(2004년 9월)이 44.1%(2006년 12월)까지 13%포인트(p)이상 떨어졌다는 사실을 가장 확실한 근거로 강조하고 있다. 특히 구매력이 약해 가격 변화에 민감한 청소년 흡연율을 낮추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설명이다.

복지부가 조사한 해외 사례에서도 담뱃값(담뱃세) 인상에 따른 담배 소비 또는 흡연율 감소 현상이 확인됐다.

남아공은 1993년 1.46란드(R)에 불과했던 담배 소비세를 2009년 6.98란드로 인상하는 등 전체 담뱃값 가운데 세금 비중을 32%에서 52%까지 늘려왔고, 이에 따라 담뱃값이 같은 기간 6.69란드에서 20.82란드로 올랐다. 가격 부담 때문에 16년(1993~2009년) 사이 연간 담배 판매량은 30%(18억갑→12억갑)나 줄었고, 1993년 32%였던 성인 흡연율도 2008년 20.5%로 떨어졌다.

영국의 담배가격은 1992년부터 2011년까지 200% 인상됐다. '물가 연동제'에 따라 담배 소비세가 계속 늘어 2011년 현재 세금이 담배 소비자가격의 82%를 차지할 정도이다. 20년간 영국의 담배 판매량을 살펴보면, 담배 소비는 857억개비에서 420억개비로 반토막(51% 감소)이 났다. 성인 흡연율의 경우 2000년까지 큰 변화가 없다가 2000년 밀수담배 추적제도 도입 등 포괄적 금연정책이 함께 추진되면서 가파르게 내리막을 걸었다. 2000년 27%였던 영국 성인흡연율은 2010년 현재 20%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에서는 담뱃세 인상의 단기 효과도 뚜렷했다. 2009년 연방 담배 소비세가 61.66센트 늘어 담배가격이 22% 정도 오르자, 담배 판매가 곧바로 1년 사이 11% 줄었다. 성인 흡연율도 2008년 20.6%에서 2010년 19.3%로 떨어졌고, 특히 청소년 흡연율이 1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 남아공·영국·미국 담뱃세 올리자 세금수입도 늘어…한국도 '기대'

이처럼 담배 소비는 줄었지만, 소비량 감소를 메울 만큼 담뱃세가 올랐기 때문에 세금은 오히려 더 많이 걷혔다.

앞서 남아공 사례에서 1993년부터 2008년까지 담배 관련 세금 수입은 10억란드에서 무려 9배인 90억란드까지 급증했다. 영국 역시 1992년부터 2011년까지 20년간 담배 세수가 59억파운드에서 85억파운드로 44%나 증가했다. 미국에서도 징수된 담배 세금이 2배이상(2009년 68억달러·2010년 155억달러)으로 불었다.

현재 전반적으로 세수가 부족한데다 기초연금, 4대 중증질환 건강보험 보장 등 굵직한 복지 정책들의 재원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부로서는 주목할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다만, 담뱃값 인상이 실제로 이뤄지면 상대적으로 '물가 충격'을 서민층이 더 체감하게 된다는 점은 정부로서 부담이다.

따라서 정부나 국회에서 구체적 인상 폭 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논란과 진통이 예상된다. 담뱃세 인상은 건강증진법(복지부 소관)·담배사업법(기획재정부) 등을 손봐야 하는 만큼 국회 심의·의결을 거쳐야 한다.

문형표 장관은 "(건강증진부담금이나 담뱃세 등을 올리려면) 건강증진법, 담배사업법과 관련해 기획재정부 등과 협의해야 한다"며 "담뱃세 인상을 정부 입법으로 추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으로, 정기 국회를 목표로 하려면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shk999@yna.co.kr, sujin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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