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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여행] 40년만에 열린 하늘목장 해무, 낙조 비경도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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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추석을 열흘 앞두고 냉기가 감돌기 시작한 동해 바다와 육지에 남은 늦여름 열기가 만들어낸 수증기 군단이 백두대간을 넘기가 버겁자, 만만한 대관령을 택한다. 북쪽의 오대산과 의병의 호국정신이 충만한 대공산성은 어림없고, 이 일대에서 비교적 얕은 새봉과 사태골, 돼지밭골을 통해 평창과 서울을 탐한다.

대관령 하늘목장에서 바라본 해무(海霧)의 서진(西進)은 장관이었다. 백두대간의 지류를 형성하는 곳곳의 봉우리가 해무에 둘러싸인 섬이 되고, 구름은 ‘바다위의 바다’가 된다. 바람에 풀은 눕지만, 해무를 맞는 초원은 눕지 않는다. 만만하기 때문이다. 서울을 동경하는 해무의 대관령 점령 작전은 비장하고 저돌적이지만 애처롭기도 했다. 대관령을 넘으면 다시 따뜻한 봉평의 온기속에 쉽사리 무장을 해제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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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륙한 해무와 ‘텔레토비 동산’ 낙조의 감동

낙조(落照)때의 대관령은 또 어떤가. 대관령을 어렵사리 넘어 둥실 떠가는 뭉게구름, 양떼구름, 산봉우리로 넘어가는 붉은 노을은 또 하나의 동양화를 만들어 낸다.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외로이 서울길로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친정을 뒤로하고 한양 북촌으로 향하는 신사임당의 헛헛한 마음도 구름과 낙조가 벗이 되어 달래주었으리라. 백두대간에 가로막힌 벽지 강릉 근무를 마치고, 한양 근처 한 단계 높은 곳으로 이임하는 사또의 기쁨은 갈 길 바쁜 단원 김홍도 조차 지필묵을 꺼내들었던 이곳에서, 화룡점정을 찍었을 것이다.

대관령(832m)은 북쪽으로는 오대산(1563m), 남쪽으로는 발왕산(1458m). 서쪽으로는 황병산(1407m) 등 키 큰 형들 사이에 둘러싸인 분지로, 남쪽 백봉령(780m), 북쪽 한계령(1004m), 진부령(526m)와 함께 백두대간 동쪽의 동해를 영서와 서울로 이어주고 있다. 키가 작은 대신 몸집이 비교적 큰 대관령은 키 크고 몸집이 호리호리한 선자령(1157m)과는 붙어 사는 친구이다.

▶대관령이 국민에게 준 다섯가지 혜택 중 으뜸은...

대관령은 우리에게 5가지 혜택을 주었다. 동해를 육지로 이어주었고, 수많은 산성과 의병의 거점지역으로 각종 외침때 최후의 보루가 되었다. 바다가 보이는 백두대간의 막내로서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하고 최근 들어서는 풍력발전의 거점으로서 친환경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무엇보다 소중한 혜택은 바로 ‘제2식량’의 보고라는 점이다. 1970년대 초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던 국민이 적지 않던 시절 고(故) 박정희 대통령은 부족한 곡류를 보충할 대체 식량으로 ‘우유’를 정하고 생계가 막막한 소외층들을 모아 대관령일대 숲을 초원으로 바꾸는 작업을 벌인다. ‘거지왕 김춘삼’과 그를 따르는 부랑인 300여명이 이곳을 개척한 뒤 밑천을 마련해 새 삶을 일궜던 터전이 바로 대관령 하늘목장과 삼양목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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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은둔 벗고, 일반에 공개된 하늘목장

횡계IC 7㎞쯤 떨어진 곳에 삼양목장을 ‘V자’형으로 감싸면서 동쪽은 1단지, 서쪽은 2단지로 조성된 곳이 대관령 하늘목장이다.

1단지에서 왼쪽길로 들어서서 1㎞남짓 오르면 로봇 착유시스템을 갖춘 젖소 수용시설과 하늘목장의 주인인 한일산업 대관령 사무실이 나온다. 로봇 착유시스템은 소의 움직임과 젖 부위를 자동 감지해 젖을 물리고 짠 뒤, 1차살균 및 소독, 젖꼭지의 세척 등을 사람 손 보다 더 잘 처리한다. 삼양목장이 관광자원화를 선택했던 2001년, 하늘목장은 박 전 대통령의 뜻을 잇기 위해 ‘축산과학’의 기치를 더 높이 들어올린 것이다.

대관령의 마지막 오지(奧地)로 40년간 은둔해 있던 대관령 하늘목장이 9월부터 문을 열었다. 1일 경기도 성남에 사는 장주경(63)씨가 첫 입장해 ‘평생 무료입장권’을 받는 행운을 누렸다. 한달동안은 무료개방하고, 여느 목장처럼 유료 개방 시기는 올 가을 중 신중한 검토를 거쳐 정할 계획이다.

▶‘여인의 변덕’같은 대관령 기상 변화는 무죄

평지는 화창한데, 하늘목장의 7부능선쯤에 올랐을 무렵 안개가 자욱하다. 이곳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던 사진작가 이종호(53)씨는 “구름이 쉬어가는 중이라, 금방 걷힐 것”이라면서 횡계읍내 라이브카페 ‘아폴론’의 주인이자 섹소폰 연주자인 김현민(53)씨와 음악과 미술이 어우러진 작품활동을 계속 이어갔다. 안개 자욱한 초원에서 울려퍼지는 연주와 베테랑 작가의 셔터 소리는 그야말로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한폭의 그림이다.

성미 급한 여행자들은 혼자 말 타는 외승자에게만 허용되는 2단지로 향했지만 오스트리아의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를 닮은 동산 주변엔 조금전 1단지를 뒤덮은 안개가 이동해 봉긋한 연초록색 무인도에 온 기분이다.

과연 대관령의 하늘은 괴테가 말한 ‘여인의 변덕’ 만큼 변화무쌍했다. 다시 찾은 1단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쾌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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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다가가도 겁 없는 젖소부인, 겁 많은 말

하늘목장 내 가축의 울타리 안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다. 처음엔 이방인을 보고 피하던 양들은 이내 평온을 되찾는다. 염소 한 마리가 무리에서 튀는 행동을 하지만, 양들은 내치지 않는다. 젖소들은 우리내로 진입한 촬영팀을 그야말로 ‘소 닭 보듯’ 한다. 선자령 등산객들의 트레킹이 이어지던 곳이라, 그리 경계하지 않았다. 겁은 말들이 많았다. 주변의 기척이라도 있으면 놀라며 무리 주변을 빙빙돌았고, 주인말만 따른다. 승마객이 늘면서 말들도 젖소처럼 되리라.

해발 1100m ‘하늘마루 전망대’에 이르자 동해안 임지에서 고생하던 한양 선비와 강릉으로 시집갔던 평창 며느리들이 왜 지난날의 고초를 잊었는지 알 것 같다.

▶‘웰컴투 동막골’ 주 촬영지…산책길 폭포수 마음 정화



낮의 열기를 머금고 오후 3시부터 시작된 해무의 상륙, 오후 7시부터 서쪽하늘을 주황에서 자줏빛으로 까지 물들이는 낙조 변색은 하늘목장에서만 누리는 혜택이다. 초원파도는 덤이다.

또 어느 목장보다도 고랭지 생태가 잘 보존돼 트레킹 길목 곳곳에 투구꽃, 노루귀, 벌깨덩굴, 앵초, 얼레지, 홀아비 바람꽃 등 400여종의 희귀 식물이 반긴다. 숲속 여울길옆엔 아직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폭포가 여행자의 속을 시원하게 해준다.

국내 최초의 건초더미로 만든 놀이시설은 시범공개 기간에 완공된다. 법규상 농기구외에 차가 다닐수 없기 때문에 목장 전망대까지 트랙터가 끄는 32인승짜리 대형 포장마차가 운행된다.

하늘목장은 영화 ‘웰컴투 동막골’의 주 촬영지였다. 강혜정이 초원 미끄럼을 타는 장면, 임하룡이 멧돼지와 쫓고 쫓기는 장면은 볼 수 없지만, 이젠 관광객들이 그 주인공이다. 영화속 추락한 전투기 잔해는 지금도 만날 수 있다. 지금 세상밖으로 나온 대관령 하늘목장은 희망과 힐링, 재잘거림으로 들썩인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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