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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250년 전 조선통신사 살인사건… 일본작가의 작품으로 재현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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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미디어시티서울' 개막

#1. 1764년 조선통신사 수행원 최천종이 오사카에서 살해당했다. 범인은 통역을 맡았던 하급무사 스즈키 덴조. 흉기에는 '일본제 식칼 15㎝, 세키(関)시 대장장이 제작'이라는 정보가 남아 있었다. 스즈키는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던 이 사건은 '세와료리스즈키보초'라는 제목의 가부키로 만들어졌다.

#2. 250년이 지난 2014년 9월, 서울시립미술관 1층 전시장 한편에 당시의 법정 장면이 재현됐다. 바닥엔 흰색으로 '대법정(大法廷)'이라고 쓰여 있고 재판석과 방청석 의자까지 놓였다. 전시된 식칼은 작가가 세키시의 장인에게 의뢰해 새로 제작한 것. 두 개의 화면에는 가부키 공연 장면과 함께 작가가 쓰시마에서 농어를 낚아 그 칼로 손질하는 영상이 돌아간다. 일본 작가 다무라 유이치로(37)의 미디어아트 작품 '세와료리스즈키보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주최하는 미디어아트 비엔날레 '2014 미디어시티서울'이 1일 개막했다. 17개국 42명(팀) 참여 작가 중 다무라의 작품이 단연 눈에 띈다. 전시가 열리는 서울시립미술관은 1928년 조선총독부가 세운 고등재판소 건물이 있던 자리다. 작가는 250년 전의 조선통신사 살해 사건을 끌어들여 일제강점기 재판소의 모습을 재현했다.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민중은 그걸 소재로 풍자적 연극을 만든다. 삶을 이어가는 하나의 기술, 극복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한·일 관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다무라)

조선일보

다무라가 세키시의 장인을 찾아 제작한 칼.


미디어 작가 박찬경(49)씨가 예술 감독을 맡은 올해의 주제는 아시아. 제목이 '귀신 간첩 할머니'다. 귀신은 아시아의 잊힌 역사와 전통, 간첩은 식민과 냉전의 기억, 할머니는 귀신·간첩의 시대를 견뎌낸 여성의 시간을 의미한다. 박찬경 감독은 "셋의 공통점은 보이지 않거나 보여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것"이라며 "이번 전시는 귀신·간첩·할머니가 많은 숲, 섬 같은 장소 개념으로 봐도 좋고, 주술·암호·방언 같은 언어 개념으로 봐도 좋다"고 했다.

1층 입구에 설치된 양혜규의 '소리 나는 조각'이 관람객을 맞는다. 수많은 방울이 움직임이나 바람에 따라 쇳소리를 내는 신작이다. 3층 단독 방에선 그리스 출신 작가 미카일 카리키스가 포착한 '해녀'를 보고 들을 수 있다. 휘이-휘이, 얼핏 돌고래 울음 같은 해녀의 숨비소리에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가 섞인다. 해녀들이 바다에서 숨을 참았다 내뿜을 때 내는 절박한 소리. 작가가 2012년 제주도에서 석 달간 머무르며 영상과 소리를 담았다. 전시는 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함께 열린다. 11월 23일까지. 관람료 무료. (02)2124-8988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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