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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J Report] 이공계·역사·애사심 … 대기업 문 여는 큼직한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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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공채 시장 필승 전략

스펙보다는 애사심 더 높게 평가

직무 경험 자소서에 자세히 써야

기업들 '역사관 뚜렷한 인재' 선호

금융권, 내달 18일 동시 시험 예상

지난달 29일 현대자동차 입사설명회가 열린 서울 도곡동 힐스테이트 갤러리. 취업준비생(취준생) 3000여 명이 모여 북새통을 이뤘다. 행사장 입구에서 배부한 2000여 부가량의 입사 가이드북은 설명회가 시작한 지 1시간도 안되 모두 동났다. 이 회사 전략지원팀에 입사를 희망하는 이정섭(28·중앙대학교 경제학과)씨는 인턴십 같은 대외 활동과 ‘현대맨’으로서 포부를 담은 스케치북을 들고 4.9㎡(약 1.5평) 남짓한 ‘5분 PR’ 부스에 들어섰다.

그는 “남들과 차별화를 위해 지난 공채에 합격한 선배뿐만 아니라 실무자들을 직접 만나 조언을 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에 대한 ‘로열티(충성심)’을 얼마나 잘 보여줄 수 있느냐가 합격 여부를 가늠할 것이라는 인사담당자의 조언에 따라 자신의 PR를 준비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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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하반기 대졸 신입 공채가 이달 1일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취준생들은 올해도 ‘바늘구멍’을 뚫어야 한다. 인문계 출신 학생을 신입사원 중 전체의 20% 정도밖에 뽑지 않는 ‘2대 8’ 구도는 올 하반기에도 굳건히 유지될 전망이다. SK하이닉스의 이공계 채용 비중은 95%에 달했다. 삼성도 올 상반기에 신입사원의 80~90%를 이공계 출신으로 뽑았다. 현대자동차와 LG도 80% 이상을 이공계 전공자로 채웠다.

여기에 중요한 요소가 몇 가지 더 늘었다. ‘스펙(취업을 위해 준비하는 수상 경력, 학점·어학 점수, 각종 자격증 등을 지칭)’을 대신해 지원자들이 갖는 회사에 대한 ‘로열티’를 평가하고, 사회성을 평가할 목적으로 지원자의 역사관을 집중적으로 측정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곳이 LG그룹이다. 올 하반기 공채부터 LG는 입사지원서에 어학성적·자격증·수상경력·어학연수·인턴·봉사활동 같은 스펙 관련 입력란을 아예 없앴다. 대신 자기소개서에 회사에 대한 관심, 희망 직무에 대한 열정, 관련 경험, 역량 등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표현하는데 중점을 뒀다. 자신이 왜 LG에 입사해야 하는지에 대해 분명하게 설명해 달라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2000년 이래 계열사 별 채용을 진행했던 LG는 14년 만인 올 하반기부터 지원 창구를 일원화하는 등 사실상 그룹 공채를 부활시켰다. 대신 지원자들이 LG 계열사 중 1~3순위를 정할 수 있도록 했다.

LG 인사팀 관계자는 “‘어디든 붙고 보자’는 묻지마식 지원을 하는 취준생의 경우 탈락할 수밖에 없다”면서 “개인적으로는 우리 회사에나 해당 직무에 왜 지원했는지 이유를 많이 보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도 면접 단계에서 국가관·역사관과 함께 애사심 등 ‘진정성’을 많이 묻는다.

역사도 올 하반기 공채에서 주요 전형 요소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이 역사 에세이를 처음 실시하고, 올 상반기 삼성·SK·GS그룹이 입사 인·적성 검사에서 역사 문제를 늘렸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하반기 공채에서 1문항 당 700자 이내로 기술하는 방식으로 역사 문제를 출제했다. 문항은 ▶세종대왕이 과거시험에 출제했던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 구별법’이라는 문제를 21세기의 자신이 받는다면 어떻게 답하겠는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 유산 두 개를 골라 그 이유를 쓰시오 ▶역사 속 인물의 발명품 중 자신이 생각하는 ‘공학도의 자질’과 연관 있는 발명품을 선택한 뒤 그 이유를 쓰시오 등이었다.

장혜림 현대차 인재채용팀장은 “평소에 역사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자신이 가진 철학을 녹이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이공계 우선’이라는 기존 틀 안에서 역사관이 뚜렷한 인재를 뽑는 게 대기업 채용 시장의 새 키워드가 된 셈이다.

다만 인문학적 지식은 KB국민은행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요구하는 곳이 없기 때문에 역사 위주로 공부하면 인·적성 평가나 면접에서 특별히 어려움을 겪진 않을 전망이다. 변지성 잡코리아 커뮤니케이션팀장은 “A기업에선 ‘융복합적 인재’, B기업에선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 등 기업마다 제각기 표현이 달라 지원자 입장에서는 헷갈릴수도 있다”면서도 “정확히 기업이 원하는 건 올바른 역사관과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글로벌 시장에서 대한민국을 대표로 하는 기업의 일원이라면 대한민국이 어떻게 형성됐는지에 대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올 하반기에도 ‘눈치 작전’을 잘 세우는 것이 취업에 성공하는 한 가지 팁이 될 수 있다. 예전부터 각 기업들의 입사 시험이 겹치는 날, ‘전략적 선택’을 바탕으로 보다 쉽게 취직에 성공하는 구직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삼성과 현대차의 인·적성평가일이 겹쳤을 때에는 삼성 대신 현대차를 택한 학생들이 혜택을 봤다. 삼성이 10만 명을 대상으로 시험을 치르는 사이, 현대차는 서류를 통과한 9600명을 대상으로만 입사 시험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올 하반기에는 SK그룹과 GS그룹의 대표 계열사인 GS칼텍스, CJ그룹이 모두 다음 달 19일에 인성·적성 평가(인적성 평가)를 실시한다. 특히 문과 출신 구직자라면 다음 달 19일 SK그룹 인적성 평가는 큰 기대를 하기 어려울 것 같다. SK그룹의 경우 대졸 신입 사원(1000명) 중 70% 정도를 이공계 학생으로 선발하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채용 담당자는 “SK는 반도체 회사인 SK하이닉스에서 인력 수요가 높기 때문에 인문계 학생에 대한 수요는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라며 “차라리 전통적으로 문과생을 많이 뽑는 CJ그룹에 지원하는게 성공률이 더 높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CJ그룹은 올 하반기 900명가량을 대졸 신입 사원으로 선발하며, GS는 그룹 전체에서 400명가량을 뽑는다.

또 취업 시장에서 절대적 약세에 놓인 인문계 학생들이 유리한 곳도 있다. 롯데백화점은 상반기 신입사원 90%를 인문계 출신으로 선발했다. 신세계그룹도 매년 채용 때마다 문과 출신 지원자가 60~70% 정도가 뽑힌다. 한편 계열사 구조개편 작업과 금융 계열사 구조조정이 한창인 삼성그룹은 지난해 상반기와 동일하게 채용 전형을 실시할 계획이다.

은행권은 사정이 다소 낫다. 국민·우리·신한·하나 등 시중 은행들은 하반기 공채 규모를 지난해 같은 기간(1008명)보다 18% 정도 늘어난 1190명 정도 선발할 계획이다. 지난 상반기 공채에선 농협은행이 400명, 신한은행이 100명, 총 500명만 신규 행원으로 선발됐을 뿐이었다. 이들 은행권은 상경계열 중심으로 문과 출신을 상대적으로 많이 뽑아온 곳이다. 특히 은행마다 차별화된 ‘채용 포인트’를 살피는 게 취준생 입장에서만 바람직하다. 예를 들면 기업은행은 채용 담당팀이 전체 2만 명에 이르는 지원자들의 자소서를 빠짐없이 읽는다. 신한은행은 은행권 중 가장 강도높은 면접을 실시하는 곳으로 하루 종일 ‘대면 면접→프리젠테이션(PT)면접→토론면접’ 순으로 면접이 진행된다.

일반 지원자뿐만 아니라 공인회계사(CPA) 자격증 소지자, 석사 학위자까지 몰려 ‘금융고시’로 불리는 금융공공기관 빅매치는 10월 18일이다. 한국은행이 10월 18일 신입사원 시험 일정을 잡으면서 여타 금융공공기관도 같은 날 시험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한국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는 아직 신입사원 공고를 하지 않았지만, 통상 같은 날 시험을 치른 만큼 10월 18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금융 공기업들 채용 규모는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다소 줄어들 전망이다. 지난해 40명이었던 수출입은행은 상반기 21명을 뽑았지만 하반기 채용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산업은행은 지난해와 비슷한 70명을 뽑을 예정이다.

김영민 기자

김영민 기자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com/center/v2010/power_reporter.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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