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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그 많은 ‘메뚜기떼’ 갑자기 어디서 왔을까…가장 유력한 원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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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마른장마설’ 설득력 높아…강수량 적어 대량 번식 가능

신라시대 때도 가뭄과 메뚜기떼의 상관관계 기록 있어


지난달 말 전남 해남군 산이면 덕호마을 앞 들녘을 습격한 뒤 1일 현재 4차례의 방제로 거의 박멸한 메뚜기 떼는 왜 출현했을까?

전문가들은 메뚜기(정확하게는 메뚜기과의 풀무치) 대량 번식이 올해 여름의 늦고 건조한 장마에 원인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풀무치 성충은 흙이나 모래 등에 산란을 해 장마철에 대부분 씻겨 내려감으로써 ‘적정한’ 수만 살아남는데 올해는 장마 기간 강수량이 적어 대량 번식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대규모 친환경 농업단지 조성과 까치 등 천적인 조류 개체수 감소 등도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유독 올해 메뚜기가 창궐했다는 점에서 ‘마른장마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신라시대 때에도 가뭄과 메뚜기떼 출현에 상관관계가 있었다. 대한지리학회가 발간하는 <대한지리학회지>(2009년)에 실린 논문(삼국사기를 통해 본 한국 고대의 자연재해와 가뭄 주기)을 보면, 신라시대 메뚜기 떼는 가뭄이 발생한 시기에 출현하는 빈도가 높았다. 저자인 윤순옥 경희대 지리학과 교수와 황상일 경북대 지리학과 교수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992년 간의 자연재해 통계를 50년 단위로 시기별 집계를 했다. 신라 1천년 역사에 가뭄은 모두 57회, 메뚜기 떼 출현은 18회가 있었다. 현대 기상학으로는 가뭄은 비가 오지 않는 날이 20일 이상 지속될 때를 가리킨다. 신라 때 평균 17년에 한번 가뭄이 든 것으로 기록된 것은 현대에 비해 가뭄이 적었던 것이 아니라 심한 가뭄만 기록을 남겼기 때문인 것으로 저자들은 해석했다. 메뚜기 떼 기록은 18회이지만 방제 기술이 없던 때여서 국지적이 아니라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윤 교수 등은 무엇보다 가뭄과 메뚜기 떼의 출현에 상관관계가 있음에 주목했다. 저자들은 논문의 결론 부분에서 “가뭄 발생 시기에서 특별한 주기성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메뚜기 떼의 출현이 홍수가 있었던 때보다 가뭄이 있었던 시기에 발생한 경우가 더 많았다”고 밝혔다.

올해 우리나라 주변의 기압 배치는 장마를 늦추고 강수량은 적게 만들었다. 6월 중순부터 바이칼호 동쪽에 발달한 고기압이 차폐벽 구실을 해 대기가 정체된 가운데 북쪽으로 찬 공기를 동반한 상층 공기가 남하해 장마전선이 북상하지 못함에 따라 남부와 중부지방에서 장마시작이 평년보다 늦어졌다. 게다가 7월에는 북태평양고기압이 서쪽으로 중국 남동부까지 확장하고 남쪽으로부터 우리나라로 수증기가 유입되기 어려운 기압계가 형성돼 장마전선이 활성화하지도 못했다. 그 결과 남부와 중부지방에서는 장마기간 강수량이 평년보다 적어 각각 145.9㎜, 145.4㎜에 머물렀다. 이는 1973년 전국적인 기상관측을 한 이래 장마기간 강수량 최저기준으로 중부지방은 역대 4위, 남부는 5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한편 <조선왕조실록>에도 ‘황충’(蝗蟲)이라 하여 해충의 피해에 대해 언급한 사례가 수백건에 이르고 있지만 모두 메뚜기 떼 기록은 아닌 것으로 분석됐다. 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황충은 풀무치”라고 돼 있듯이 통상적으로 황충을 메뚜기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서 언급한 황충은 메뚜기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나방류의 재해가 훨씬 많았다는 것이다.

국립농업과학원과 국립생물자원관 공동연구팀은 <한응곤지>(2010년)에 보고한 논문(조선왕조실록과 해괴제등록 분석을 통한 황충의 실체와 방제 역사)에서 “황충은 멸강나방, 벼멸구, 풀무치, 바구미 등을 두루 이르는 말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논문 저자들은 ‘비황’(飛蝗)이라고 표현한 경우는 정확히 풀무치를 의미하지만 중국의 옛 이야기 등을 언급한 경우를 빼면 조선왕조실록에서 풀무치를 적시해 서술한 것은 한건뿐이라고 밝혔다. 조선왕조실록 선조 37년(1604년) 6월24일치를 보면 “강원도 관찰사가 관내에 재해가 심해 구황 준비를 해야 함을 보고합니다. 6월3일에 크게 뇌성 치며 비가 내렸는데, 황흑색의 비황이 전답에 두루 깔려 남김없이 다 갉아 먹었으므로 며칠 동안에 전야가 불타버린 땅과 같게 되니, 온 경내의 노약자들이 하늘을 쳐다보며 울부짖고 있습니다”라고 돼 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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