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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그녀를 보내고 초라해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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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양윤옥 옮김
문학동네| 340쪽| 1만3800원

무라카미 하루키는 장편과 단편 소설 쓰기의 차이를 식물 가꾸기에 비유한 적이 있다. "장편 쓰기가 숲을 조성하는 것이라면, 단편 쓰기는 정원을 가꾸는 것"이라고 했다. 작가가 9년 만에 화초를 가꾸는 기분으로 낸 새 단편집이다. 독신 남성들의 이야기 7편을 모았다. 작가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여자를 떠나보낸 남자들, 혹은 떠나보내려는 남자들의 이야기"라고 밝혔다. 아내와 사별했거나, 이혼했거나, 여인을 곁에 두고도 의도적으로 멀리하는 남자들의 복잡한 심정이 담겨 있다. 그런 남자의 입장에서 남녀 사이의 미묘한 거리와 그 사이에서 흐르는 선율 혹은 떨림, 파장을 형상화했다. "남자와 여자가 관계를 맺는다는 건, 뭐랄까, 보다 총체적인 문제야. 더 애매하고, 더 제멋대로고, 더 서글픈 거야"라는 대사가 책의 주제를 대변한다.

하루키 소설에서 여자는 종종 초현실과 현실을 잇는 영매(靈媒) 역할을 해왔다. 이번 책에서도 여자란, '현실에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을 무효로 만드는 시간을 남자에게 제공하는 존재'로 표현된다. 그래서 여자 없는 남자란 환상을 상실했기에 초라하고 비루한 일상을 살아갈 뿐이다.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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