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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아이들은 쉬고 싶은데… ‘9시 등교’ 지각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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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교육청의 ‘9시 등교’ 방침에 교총 및 일부 학부모 단체가 반발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전북·충북·제주ㆍ서울 등 다른 시·도교육청이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학부모, 교사, 학생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해법은 아이들 말 속에 있다. “공부든 휴식이든 강압 없이 마음 편하게 좀 해주세요”

“작년 급훈이 ‘네 성적에 잠이 오냐’였어요. 볼 때마다 생각했죠. ‘잠은 성적이 높건 낮건 상관 없이 잠을 푹 자야 안 오는 거잖아’라고요.”

고등학교 1학년 김미현양(16·가명)은 성적도 좋았고 잠도 많았다. 고등학교 비평준화 지역인 경기도 용인시에 사는 김양은 중학교 3학년이던 지난해를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멍해져 온다. “자칫 잘못하면 안 좋은 학교 간다고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하루 종일 시달리다 보면 정작 쉴 때가 돼도 항상 초조해요. 뭘 더 해야 될 것 같고, 그래서 잠이 들어도 든 것 같지가 않았어요.” 높은 성적으로 목표했던 고등학교에 들어갔지만 잠이 많은 김양의 아침은 여전히 힘들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넘치는 학교에서 경쟁은 더 치열해지게 마련이다.

‘네 성적에 잠이 오냐’가 급훈인 학교

‘9시 등교’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김양도 설렜다. 매일 아침 ‘10분만 더 잤으면’ 하던 바람이 이뤄지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학교에 다니는 동네 언니의 말을 듣고는 반쯤 기대를 접었다. 학부모들 목소리가 큰 학교니만큼 교육청의 정책을 고분고분 따르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였다. “위에서 뭐라 그래도 어차피 등교시간은 교장이 정하기 나름이라면서요? 괜히 기대했다 실망하지 않으려고요.” 개학 첫주인데도 수행평가 준비 때문에 오전 2시에 잠자리에 들었다는 김양의 눈은 충혈돼 있었다.

경기도교육청이 관내 초·중·고교의 등교시간을 9시로 늦추기로 한 방침을 발표하면서 등교시간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적극적으로 시행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데 비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와 일부 학부모 단체는 이에 반발하며 맞서고 있다. 여기에 전북·충북·제주에 이어 서울까지 시·도교육청 차원에서 등교시간을 늦추기로 나섰거나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논쟁의 구도는 찬반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의 속내는 더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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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김영민 기자


맞벌이 부모, 아이 두고 출근할 일 걱정

청소년기의 치기 어린 주장이라고 치부할 법도 하지만, 등교시간 논란에서 성적 경쟁의 문제를 찾아내는 학생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공부할 시간이 줄고 성적도 떨어진다고 쳐요. 근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예요?” 오후 10시, ‘야자’를 마치고 하교하던 고등학교 2학년 김필주군(18)은 점차 목소리가 높아졌다. “경쟁에서 밀리면 굶어죽을 거라고 겁주는 말은 사람 부려먹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할 말이죠. 솔직히 나는 경쟁에서 밀려나는 것보다 잠 못 자고 놀 시간 없는 게 더 괴로워요.”

김군이 다니는 학교는 8시까지 등교해야 한다. 김군이 이날 하루 학교에서 보낸 시간은 14시간이다. 아침은 걸렀고, 점심과 저녁은 학교에서 먹었다. 집에 오면 밥 한 끼 먹고, 씻고 잘 준비만 해도 자정이 된다. 잠자리에 누워서 친구랑 ‘카톡’ 좀 하다 스마트폰 게임 몇 판 하고 나면 오전 1시를 훌쩍 넘기고서야 잠이 든다. 오전 7시에 겨우 일어나면 또 아침은 거르게 되고 오전 수업 2~3 시간은 그냥 졸다가 넘기는 일과가 반복된다. “따로 쉬는 시간이 없잖아요. 야자 안 하는 날은 학원 가야죠. 학원 가는 날은 더 늦게 집에 와요.”

“일단 등교시간을 늦추는 것 자체는 좋긴 한데…”라며 말을 꺼낸 고등학생 안윤상군(17)도 9시 등교 정책만 가지고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조삼모사’잖아요. 학교 끝나는 시간도 똑같이 한 시간 밀리니까.” 학교에서 보내는 전체 시간을 줄이지 않으면 무슨 변화가 있느냐는 말이다. 안군은 수업 시수는 물론 야간자율학습이나 방과후 학교 등으로 보내는 시간까지 줄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일하는 시간이 세계 최고라면서요. 만날 야근하고 휴일에도 출근하고, 그런 문제는 고치자는 말 나오는데 학생들 학교에 붙어 있는 시간 좀 줄여달라고 하는 얘기는 왜 뉴스에 안 나와요?”

하지만 안군의 부모님은 안군과 생각이 다르다. 안군의 부모님은 자영업 때문에 둘 다 가게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자녀를 자주 돌보기 어렵기 때문에 그나마 아침에 식사를 함께하고 있지만 등교시간이 늦춰지면 그마저도 힘들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지금은 같이 아침 먹고 같이 집에서 나가는데, 등교시간 바뀌면 내가 늦게 일어나서 아침밥 같이 못 먹지 않느냐고 하시더라고요.” 안군은 솔직한 심정대로라면 아침밥 대신 아침잠을 택하겠지만 차마 그렇게 말하지는 못했다.

가정 안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입장이 갈리는 이유는 대체로 각자의 입장 차이 때문이었다. 자녀에게 아침을 먹이거나, 적어도 깨워서는 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부모 역시 대부분 출근시간에 매여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과 5학년 자녀를 둔 유현상씨(45)는 저학년인 둘째가 걱정이다. “5학년짜리 맏이는 깨워놓기만 하면 학교 가는 거야 제가 알아서 가지만, 막내는 나가는 것까지 봐야 안심이 된다. 근데 등교시간이 30분 늦춰지면 나랑 아내는 회사 어떡하란 말인지.” 맞벌이 부모를 둔 학생들을 위해선 ‘방과 전 학교’ 프로그램이 운영될 예정이지만 유씨는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럼 실제로는 맞벌이집 애들이랑 아닌 집 애들 등교시간이 달라지는 것 아닌가. 애들도 다른 애들보다 억지로 일찍 등교하는 모양새가 될 텐데 말이다.”

교사들 “수업시수 수술 안 하면 해결 안 돼”

현장의 교사들이 지적하는 문제점도 이 점이다. 초·중·고교 각각 학생들의 일과와 학부모의 개입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보다 유연한 방안이 나와야 서로 다른 학교현장의 특성을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지역 공립중학교에 재직 중인 최모 교사(33)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만 해도 실정이 다르다. 야자를 안 하는 중학생들은 잠이 부족한 이유가 학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서가 아니라 사교육의 책임이 크다. 그런데 이 문제는 등교시간 변동만으로 풀 수 없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교사들 출근시간이 안 바뀌면 일하는 시간만 늘어날 거라고 걱정하는 동료도 많고, 개별 학교 권한이 없어진다고 교장·교감선생님들 걱정도 많다. 근데 그런 걱정도 틀린 건 아니겠지만 교육청이나 일선 교사나 학생들을 ‘대상’으로만 보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교육청의 입장도 어쨌든 이렇게 저렇게 학생들을 관리하겠다는 생각으로밖에 안 보이니까.” 최 교사는 수업 시수 자체에 손을 대지 않는 이상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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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수업을 마친 한 중학생이 밤 늦게 귀가하고 있다./정지윤 기자


수면시간 어른들보다 2시간이나 적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장시간 노동으로는 1·2위를 다투는 한국인의 위상은 청소년기부터 길러진다. 한국의 청소년은 성인에 비해서도 수면·휴식시간이 짧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가 서울지역 중·고등학생 291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 청소년들의 평일 평균 수면시간은 5시간48분으로 성인들의 평균 수면시간 6시간53분보다 1시간 이상 짧았다. 휴식시간 역시 성인 평균인 3시간 18분에 비해 54분 짧은 2시간24분으로 나타났다.

성인에 비해 2시간가량 짧은 수면·휴식시간을 청소년들은 대체로 학업으로 채우고 있었다. 고용노동부의 올해 1분기 사업체 노동력 조사에서 집계된 노동자의 일 평균 노동시간은 8시간24분이다. 반면 평균 등교시각인 오전 7시46분부터 평균 하교시각 오후 5시15분까지, 중·고등학생들은 9시간33분을 학교에서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들이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에 비해 더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것이다. 게다가 여기엔 사교육이나 개인 공부에 들이는 시간은 들어가 있지 않다. 자는 시간 줄여가며 공부에 매달리는 현실은 학부모 세대의 학창시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교육부와 질병관리본부가 해마다 실시하는 청소년 건강행태 온라인조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사 결과를 보면 2013년 한국의 일반고 학생 평균 수면시간은 5.6시간에 불과했다. 가까운 일본이 6.5시간, 미국이 7.2시간인 것과 비교하면 1시간 안팎의 차이가 있다. 미국 국립수면재단이 제시하는 청소년기 권고 수면시간 8.5~9.25시간에 비하면 한국의 학생들은 최소 권고수준에 비해서도 3분의 2(65.8%) 수준밖에 잠을 자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일주일간 잠을 잔 시간이 피로회복에 ‘매우 충분’했거나 ‘충분’했다고 판단한 인원의 비율인 주관적 수면 충족률을 봐도 2013년 기준 한국 청소년의 25.5%만이 충분한 잠을 자고 있다고 응답했다. 게다가 주관적 수면 충족률은 2011년 29.9%를 기록한 이래 최근 3년간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추세다.

휴식 원하는 학생들 의견 정책 반영 마땅

교육감 선거가 포함된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던 지난 5월 ‘인권친화적학교+너머운동본부’가 전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제안한 10대 교육정책 중 가장 첫 번째로 올라온 정책이 바로 ‘9시 등교’ 정책이다. 설문조사의 응답 지지율대로 만들어진 정책 제안 가운데는 1위였던 ‘9시 등교’ 정책을 비롯해 3위인 학생 휴가(공결)제, 6위 휴일 보장 등 휴식을 요구하는 안건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운동본부 관계자는 “학생들이 최우선적으로 요구하는 정책이 ‘조금 더 여유 있는 생활’에 집중돼 있는 것은 그만큼 학생들이 과중한 학업 스트레스에 노출된 현실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휴식을 요구하는 목소리 못지않게 학생들이 필요하다고 요구한 정책이 학생 의견을 반영하는 교육행정이었던 만큼 교육감들은 ‘9시 등교’ 논란 자체도 누구보다 학생들의 의사가 그대로 반영되는 방향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덜란드에서는 몇 년 전에 학생들이 오후 4시까지 의무수업한다고 시위를 벌였더라고요. 더 놀란 건 걔들이 비교한 나라가 독일인데 거긴 오후 1시에 끝난대요.” 김미현양의 말처럼 서구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고등학생의 하교시간도 오후 3시를 넘기지 않는다. 김양이 말을 이었다. “그것까진 안 바라죠. 한국 학생들은, 아니 나라도 시위하기보다는 공부하러 들어갈 테니까. 다만 공부를 할 때나 쉴 때나 강압 없이 불안감 안 느끼고 마음 편하게 할 수만 있음 좋겠어요.”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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