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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칼 아닌 지도를 잡은 聖雄(성웅)… 고뇌하는 이순신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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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의 그곳

승전의 기억, 장수의 기록

벽파진(碧波津)으로 간다. 고려 삼별초의 최후 항전지이기도 한 이곳은 예부터 진도와 명량의 관문이다. 이순신이 명량에서의 싸움을 앞두고 16일간 머물렀다. 포구 뒤편 낮은 돌산 꼭대기에 이충무공전첩비가 서 있다. 비석을 거북이 떠받치고 있다. 비문에 "예서 머무른 16일 동안 사흘은 비 내리고 나흘은 바람 불며 맏아들 회와 함께 배 위에 앉아 눈물도 지으셨고…"라 적혀 있다. 달밤 섬 그늘을 따라 침범해온 왜군을 향해 지자총통이 불을 뿜은 이곳은 지금 시멘트로 단장한 얌전한 포구다. 정면에 떠있는 감부도의 화창한 낯빛이 한가롭다.

점심 무렵, 진도밥상을 받는다. 진도 시내 남도한정식으로 유명한 '기와섬'으로 간다. 1인당 2만5000원을 내니 우럭과 전복, 꼬막, 광어회까지 각종 해산물이 한 상 가득인데, 미역에 유독 눈이 간다. 생전의 이순신이 좋아한 찬이다. 전투 중엔 미역을 그냥 밥에 비벼먹었다 전해진다. 칼로 썬 미역을 한 점 씹는다. 단단한 육질이 이에 깊이 박힌다.

조선일보

17일 오전, 칠천도 앞바다에 어선 3척이 묶여 출렁이고 있다. 명량 이전에 칠천량이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유일한 패전지다. 전술도 리더십도 온데간데없었다. 지금의 평화를 되찾는 데는 이순신의 표현대로‘천행(天幸)’이 필요했다. / 거제=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오후 4시, 물때가 다시 바뀐다. 진도대교를 다시 건넌다. 해남이다. 동네가 온통 감격에 젖어 있다. 문내면 학동리 동네 골목에 '명량대첩비'가 있다. 보물 제503호로, 대제학이었던 이민서가 비문을 지었고 윗부분은 서포 김만중의 글씨다. 1942년 일제에 의해 서울 경복궁 근처로 옮겨져 방치됐던 것을 해방 이후 이 지역 주민들이 다시 옮겨와 3년 전 원래 자리에 다시 세웠다. 도보 15분 거리에 '우수영 국민관광지'가 있다. 입구에서 강강술래가 펼쳐진다.

이순신은 군사 수를 많아 보이게 하기 위해 부녀자들에게 군복을 입혀 산허리를 돌게 했다. 입구를 지나자 기다란 성벽을 따라 '수영정'과 '명량정'이 서 있다. 최근에 세운 정자다. 앉아 울돌목을 바라본다. 이곳에도 이순신 동상이 있다. 2008년 세워진 이 동상은 갑옷 아닌 동다리를 입고, 칼 대신 지도를 쥐었다. 밀물엔 동상 발목에 물이 찬다. 이름하여 '고뇌하는 성웅 이순신'. 해가 진다. 오후 7시, 울돌목이 다시 맹렬히 울기 시작한다.

패전의 바다에서 명량을 보다

명량을 떠난다. 시간을 거슬러 다시 칠천량이다. 칠천량은 거제시 하청면 실전리와 어온리 사이의 해협을 말한다. 임진왜란 중 조선 수군의 유일한 패전지다. 2시간쯤 뒤 광양에 있는 이순신 대교를 지난다. 영화 속 전투신 대부분이 이곳 중마 일반부두에서 촬영됐다. 넓고, 일반인의 출입이 자유롭지 않아 촬영이 용이했기 때문인데, 세트장은 이미 철거돼 휑하다.

명량이 대역전극이라면 칠천량은 난맥 그 자체였다. 원균은 이순신을 모함해 쫓아내고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르지만, 등 떠밀려 부산포 진격을 감행하다 풍랑과 식수 부족, 왜병의 기습에 허물어져 170여 척에 달하는 선박을 잃었다. 원균은 알몸으로 왜검에 목이 잘렸다.

새벽 4시쯤, 거제 칠천교를 건너 하청면 어온리에 닿는다. 백의종군하듯 흰색 어선 몇 척이 캄캄한 물 위에 흔들린다. 치욕의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2010년 칠천교 끝자락에 칠천량해전 기념비가 세워졌다. 작년엔 칠천량해전기념관과 공원이 들어섰다. '영화 명량에 나오는 통곡의 패전지!'라는 기묘한 홍보 현수막을 지나 기념관 옆 전망대에 오른다. 기적을 기다리는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는다. 배 12척이 남아 있었다. 곧 아침이 온다. 해가 한바탕 휘둘러 쓸어버리니, 산하가 물든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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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진도 '기와섬<사진>' 남도 한정식으로 유명하다. 4인 이상일 경우 1인당 2만원. 그 이하는 2만5000~3만원. (061)543-5900

그 외 즐길 거리 우수영 국민관광지 입장료 1000원. 울돌목과 더불어, 명량대첩 유물전시관에서 거북선·판옥선 모형과 천자총통 등 조선시대 화포도 구경할 수 있다. 10월 9~12일엔 명량대첩축제도 열린다. (061)530-5541 오전 9시~오후 6시.

울돌목 거북배 터미널 오전 11시, 오후 2시, 4시에 총 18명이 모이면 1시간에 걸쳐 '울돌목 거북선'을 탈 수 있다. 유람선은 해남 우수영을 출발해 녹진항과 벽파진을 돌고 온다. 매주 월요일 휴항. 성인 1만5000원. (061)535-0653

칠천량해전 기념전시관 오전 9시~오후 6시. 설날·추석 당일과 매주 월요일 휴관. 성인 2000원. (055)639-8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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