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8 (목)

"세상에, 횡단보도 건너는데 제 손이 하늘거리데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뮤지컬 '프리실라' 女裝 연기 조성하

섬세한 손짓·흥겨운 몸짓 완벽 소화

"김희애·메릴 스트립 보며 연구해… 죽어라 노래했죠, 침대 누워서도"

공연이 있는 날마다 그는 몸에 꽉 끼는 코르셋을 입고 팔다리를 말끔하게 제모(除毛)한다. 간신히 붙인 커다란 속눈썹은 무거워서 자꾸만 처진다. 이런 생활이 벌써 한 달 넘게 이어졌다. 하지만 아침부터 잔뜩 긴장해 있다가도, 막상 공연이 시작되면 하이힐 신고 춤추며 여자 옷을 열네 번 갈아입는 동안 두 시간 반이 후딱 지나간다. "하도 경쾌하고 신이 나서 래프팅 한 번 좍 하고 내려온 것 같다니까요."

뮤지컬 '프리실라'의 트랜스젠더(성전환자) 버나뎃 역을 맡은 '신인' 뮤지컬 배우는 뜻밖에도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 영화 '황해' 등으로 친숙한 조성하(48)다. "절대 아니에요! 장난으로 여자 흉내를 낸 적도 없었어요." 평소 이런 역할을 원했던 것 아니냐고 묻자 그가 웃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엔 섭외를 피해서 도망 다녔어요. 그런데 대본을 보니 재미있기도 하고, 연기에도 도움이 될 것 같고…. 왜, 사람이 살다 보면 자기 맘대로 안 되는 것도 있잖습니까?"

조선일보

뮤지컬‘프리실라’에서 트랜스젠더 역으로 호평을 받은 조성하는“앞으로 아줌마나 왕비 역할 섭외가 들어올 것 같다”는 농담을 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그가 맡은 버나뎃은 우아한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선한 심성의 인물이다. "아우라가 강한 여자 배우들 연기를 공부했죠. 김희애씨나 메릴 스트립 같은 분들 말이에요." 거리에서 걸어가는 여성들을 보면 골반이 어떻게 움직이나 유심히 관찰했다. 연극엔 많이 출연했지만, 뮤지컬은 20여년 전 해적판 '캣츠'에서 바퀴벌레로 나온 것밖에는 없었다. "노래하고 춤을 죽어라 연습했죠. 집에선 침대에 누워서도 안 자고 부르고, 아내는 이러다 아파트에서 쫓겨난다고 말리고…. 박자 맞추기가 진짜 어렵더라고요."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가발과 드레스 차림으로 펼쳐지는 조성하의 '여자 연기'는 객석을 박장대소와 환호작약의 열기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에게서 상상할 수 없었던 여성스러운 섬세한 손짓과 가냘픈 비명, 1980~90년대 팝송에 맞춘 흥겨운 안무와 노래는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인터넷에선 '흥(興)성하' '흥언니'라는 별명까지 생겨났다. "공연 초반에 김혜수씨가 와서 '선배님! 너무 재밌게 봤어요'라고 소리지르더니 저를 와락 끌어안더라고요." 근데 포옹 도중에 퍼뜩 깨달았다. '어! 나 김혜수하고 잘 모르는 사인데?'

무대에서 '여자의 삶'을 살다 보니 평상시 의외의 행동을 할 때도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손을 드는데 저도 모르게 하늘거리면서 애교스러운 손짓을 하는 거예요. 앞차 운전자 아주머니가 입을 떡 벌리더라고요." 극중 게이 친구 두 명과 함께 호주 사막 여행을 떠나는 버나뎃에게선 세월을 겪은 사람의 의연함과 따뜻함이 간간이 드러나는데, 관객이 그 부분을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음 뮤지컬 계획요? 아유, 그런 거 없어요. 무리한 욕심을 내면 안 되죠."

▷'프리실라' 9월 28일까지(조성하는 9월 6일까지) LG아트센터, 1577-3363



[유석재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