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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일본, 미군기지 이전 강행… ‘긴장의 오키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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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노코 연안 지질조사 10년 만에 재개… 총리관저가 지휘

주민들 해상시위 이어 주말 대규모 집회 예고… 충돌 우려

지난 18일 일본 오키나와(沖繩)현 나고(名護)시 헤노코(邊野古) 연안에서 일본 방위성 오키나와방위국이 해저를 시추해 지반의 강도 등을 알아보는 조사를 전격 개시했다. 헤노코 연안은 같은 현 기노완(宜野灣)시에 있는 주일 미군 후텐마(普天間) 기지(비행장) 이전 예정지로 정해진 곳이다. 2004년 9월 일본 정부가 이 일대에서 비슷한 내용의 조사를 하려다 반대 시위에 막혀 중단된 이후 10년 만에 이뤄지는 조사다. 방위성은 오는 11월 말까지 16개 지점에서 조사를 실시한 뒤 그 결과를 토대로 시설설계 및 매립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경향신문

오키나와 지역 신문인 류큐(琉球)신보는 지난 19일 방위성의 조사 개시 소식을 전하면서 정부의 미군기지 이전 추진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헤노코 연안의 주일 미군부대 ‘캠프 슈워브’ 정문 앞에는 기지 이전을 반대하는 주민 100여명이 모여 반대 시위를 벌였다. 특히 방위성이 굴착을 통한 조사 작업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들은 “시추를 당장 멈춰라” “정부의 조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구호를 외치며 목청을 높였다.

오후에 들어서면서 시위대의 규모가 더욱 커졌다. 조사 강행 소식에 분노한 주민들이 오키나와현 곳곳에서 대형 버스를 타고 몰려들면서 시위 참가자는 400여명으로 늘어났다. 일부 시민들은 카누를 타고 정부의 조사 작업 현장으로 나가 해상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정부의 조사 작업을 좌절시켰던 10년 전의 해상시위만큼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일본 정부가 지난 14일부터 헤노코 연안 일대에 외부인 출입금지를 표시하는 부표를 설치하고 해상보안청 대원들을 대거 동원, 반대 주민들의 조사 작업 현장 진입을 철저하게 차단했기 때문이다.

10년 전 조사에 실패하면서 기지 이전 작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던 일본 정부는 이번만큼은 반드시 기지 이전을 마무리짓겠다며 강경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조사 작업을 총리관저가 직접 지휘하고 있는 것도 정부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산케이신문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을 중심으로 (시위대의) 방해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

일본 정부는 이번 조사가 끝나면 이후 5년간 매립공사를 한 뒤 2022년까지 후텐마 기지를 이곳으로 옮김으로써 기지 이전 작업을 끝낸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일본 내 미군기지의 76%가 오키나와현에 몰려 있는 상태에서 후텐마 기지를 다시 현 내의 헤노코 연안으로 이전하는 방안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주민들은 후텐마 기지를 현 밖의 다른 지역으로 옮겨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의 강경 방침을 접한 주민들은 투쟁 강도를 높이기로 했다. 주민들은 오는 23일 캠프 슈워브 앞에서 대규모 반대 집회를 열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표출하기로 했다. 1000~2000명의 주민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는 이날 집회에서는 시위대와 정부 측이 충돌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나카소네 사토루(仲宗根悟) 오키나와현 의원은 “현민의 70% 이상이 기지 이전을 반대하고 있는데도 정부가 조사 작업을 강행하고 있다”며 “헤노코 연안의 새 기지는 절대로 만들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마이니치신문에 말했다.

미·일 양국은 도심 주택가 한가운데에 있는 후텐마 기지 인근에서 미군 병사의 성폭행 사건과 미군 헬기 추락사고 등 각종 사건·사고가 속출하자 1996년 기지를 오키나와현 내 다른 곳으로 이전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18년 동안 합의를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도쿄 | 윤희일 특파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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