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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이들은 어떻게 죽음을 맞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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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개한 의학때문에 병키워 죽고 암살 당하고, 방사능에 중독되고

역사적 인물들의 임종순간 재현

세계일보

파트릭 펠루 지음/양영란 옮김/갈라파고스/1만5000원


그 죽음들은 오래도록 지속된다/파트릭 펠루 지음/양영란 옮김/갈라파고스/1만5000원


중세 프랑스에서는 왕이 병에 걸려도 치료법은 단 두가지였다. 어떤 증세가 나타나든 정맥을 찔러 피를 뽑는 ‘자락’과 항문을 통해 직장으로 약물을 넣는 ‘관장’뿐이었다.

선천적 결핵 때문에 밤마다 식은땀을 흘리고 심한 기침과 각혈이 이어졌던 샤를 9세를 위해 의사들이 내린 처방은 자락이었다. 결국 샤를 9세는 심각한 폐혈증과 만성 빈혈로 인한 탈수증세, 폐 전체를 덮은 결핵균으로 인해 숨을 거뒀다. 루이 14세는 대식가이자 단 것이라면 사족을 못 썼는데, 그로 인해 당뇨와 통풍에 시달렸다. 이에 의사들이 관장을 하기 위해 쇠·구리·납 등으로 만든 소독되지 않은 주사기를 항문에 쑤셔 넣다 보니 염증이 생기고 종기가 났다. 거기에 자락까지 계속 당하다 보니 혈액이 부족해 다리에 부종이 생기고 괴저성 수포까지 생겨 결국 폐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신간 ‘그 죽음들은 오래도록 지속된다’는 예수부터 넬슨 제독, 볼테르,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까지 역사적 인물들이 죽음을 맞는 순간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저자인 파트릭 펠루는 프랑스 응급의사협회 회장을 지낸 50대 초반의 의사로, 프랑스의 여러 매체에 의학 칼럼을 쓰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 대해 “죽음과 죽음의 이유를 설명하는 의학서적”이라고 겸손해했지만, 실제는 죽음의 문화사에 가깝다. 역사 속 인물들이 맞이한 임종의 고통을 묘사하는 동시에 그들의 죽음과 연관된 정치, 경제, 문화적 맥락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20만년 전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상에 출현한 이후 지금까지 1000억명의 인간이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죽음은 평범한 자연현상으로,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나눠 갖는 공통분모이지만, 개별적인 죽음은 여전히 하나하나가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전하는 유명 인사들의 마지막 순간은 여간 흥미롭고 놀라운 게 아니다.

첫 인물인 예수부터 그렇다. 저자에 따르면 예수는 질식사했다. 십자가에 매달리며 호흡곤란이 촉발됐다는 것이다. 또 중동의 찌는 듯한 더위를 고려하면 예수의 시신은 금세 부패했을 것이고 죽은 지 12시간이나 지난 시신이 부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또 앙리 3세는 구멍 뚫린 의자에 앉아 대변을 보다 도미니크 수도회 수도사의 칼에 찔려 세상을 떠났다.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받은 마리 퀴리는 방사능의 위험을 모른 채 폴로늄과 라듐을 맨손으로 잡으며 연구에 매진하다 방사능 물질에 중독돼 숨을 거뒀다.

세계일보

신간 ‘그 죽음들은 오래도록 지속된다’의 저자는 역사적 인물의 마지막 순간을 생생히 재현하며, 죽음은 그 사람의 삶을 고스란히 반영한다고 강조한다. 갈라파고스 제공


저자는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그의 죽음이 말해준다”며 “죽음은 그 사람이 걸어온 삶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강조한다. 유대인인 드레퓌스 대위가 무죄임을 밝히는 ‘나는 고발한다’를 쓴 에밀 졸라는 반유대주의 성향 극우파의 공적이 됐다. 결국 그는 자신의 이 같은 정치적 신념 때문에 극우파 굴뚝공에게 교묘한 수법으로 살해당하고 만다.

스탈린은 측근이나 의사들에게 암살당할지도 모른다는 편집증적 의심이 극심했고, 잠자는 동안 침실에 들어오는 걸 철저히 금지했다. 그 때문에 고혈압으로 뇌혈관 계통에 문제가 생겨 쓰러진 스탈린은 20시간이 넘어서야 발견됐다. 또 숙청당할까봐 두려워한 의사들은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를 방치해버렸다. 저자는 서문에서 “나는 그저 위대한 인물들의 마지막 순간의 임상적 진실을 가장 가깝게 보여주고자 했을 뿐”이라고 했지만, 이 같은 이야기들을 통해 결국 죽음은 삶과 궤적을 같이 한다는 메시지가 읽혀진다.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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