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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폭행과 고문·성적 학대… 구소련 강제노동수용소서 살아남은 사람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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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스티븐 F. 코언 지음/김윤경 옮김/글항아리/1만5000원


돌아온 희생자들/스티븐 F. 코언 지음/김윤경 옮김/글항아리/1만5000원


“소비에트 비밀경찰의 문서를 읽는 일은 영혼을 어둠으로, 몸을 납으로 채우는 일이다. 특히 내 어머니의 ‘사건’ 기록을 읽을 때는….”(러시아 작가 바실리 악쇼노프)

극단적 폭력이 휩쓸었던 지난 세기는 세계 곳곳에 ‘끝나지 않은 역사’들을 남겼다. 그중 1930년대부터 1950년대 초까지 소비에트 연방에 1200만∼2000만명으로 추산되는 희생자를 만든 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의 공포정치는 그 잔인성에 비해 전 세계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역사 중 하나다.

책은 당시 악명 높은 강제노동수용소 ‘굴라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 초점을 맞춘다.

‘대공포시대’의 폭력은 오랜 기간 광범위하게 이뤄졌기에 스탈린 사후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살아남아 풀려났는지 아직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주요 대상이 소비에트 체제의 고위 계층이었다는 통념과 달리 희생자의 70% 이상은 공산당원도, 엘리트 계층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무자비한 폭행과 고문, 비인간적인 성적 학대를 당하며 거짓 자백을 토해냈다.

견디고 버틴 이들은 결국 폭력의 터널을 헤쳐나왔다. 그러나 생존은 또 다른 고통이 됐다. 어떤 사람들은 튼튼한 체력과 불굴의 의지, 또는 덜 고된 노동에 배정된 행운 덕분에 살아남았다. 다른 사람들은 밀고자가 되거나 성상납을 하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수용소 간부에게 협조함으로써 생존할 수 있었다.

생존자들이 스탈린 사망 직후 바로 귀환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통치자를 평가하는 국가의 태도가 귀환을 더디게도 하고 재촉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최근 심상치 않은 러시아 내부의 분위기에 주목한다. 1990년대 초,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 러시아는 자유시장 자본주의로의 빠른 전환을 시도했으나 급격한 경제적 붕괴를 체험했다. 이후 소비에트 시대에 대한 향수가 해일처럼 높이 치솟았다.

이런 스탈린주의의 부활은 신성했던 희생자들의 지위를 무참히 무너뜨렸다. 저자는 이런 분위기를 짚어나가면서 스탈린 시대의 역사적 범죄는 정치상의 공소시효가 없기 때문에 오늘날 러시아 정치의 주요 화두로 분명 다시 떠오를 것이라고 단언한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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