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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취재파일] 교황 시복식 왜 광화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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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오는 14일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4박5일 동안 다양한 행사에 참석합니다. 많은 일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는 124위 순교자 시복식(諡福式)입니다. 교황의 방한이 발표된 뒤에 시복식의 초점은 행사 장소였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모이는 시복식을 어디에서 할지를 놓고 의견을 일치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정부와 한국 천주교회, 그리고 교황청은 광화문에서 시복식을 하기로 최종 결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게 될 광화문 앞부터 서울시청까지 적게는 30만 명, 많게는 100만 명의 인파가 대로를 가득 메울 전망입니다.

정부는 당초 광화문 시복식을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안전 문제였습니다. 특히 교황에 대한 경호는 통상 다른 국가원수보다 더 삼엄한데 고층 빌딩이 많은 광화문은 경호 상 최악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종교와 형평성도 고려됐습니다. 지금까지 특정 종교 행사가 대한민국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광화문에서 열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한강 둔치와 성남 서울공항 등을 대안으로 검토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천주교회의 입장은 단호했습니다. 순교자 집안에서 태어났고 두 동생도 사제의 길을 걷고 있는 염수정 추기경의 의지가 워낙 강했습니다. 시복식을 포함해 교황 방한 행사를 주관하는 한국 천주교회의 주장을 정부가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 한국 천주교회는 왜 시복식 장소로 광화문을 강력하게 요구했을까요?

첫째 이유는 순교 역사에서 광화문 인근 지역이 갖는 특수성입니다.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순교자의 상당수는 조선시대 형조, 의금부, 우포도청에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참혹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신앙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광화문 사거리(세종대로 사거리)를 기준으로 요즘으로 치면 법무부 격인 형조는 300m쯤 떨어진 세종문화회관 앞에 있었습니다. 검찰과 법원에 해당하는 의금부는 500m 정도 거리인 현재 지하철 1호선 종각역 1번 출구 쪽에 있었습니다. 경찰청 격인 우포도청은 100m도 채 안되는 동아일보 사옥 앞에 있었습니다. 이들의 처형 장소였던 서소문 순교 성지도 광화문 사거리에서 1.5km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시복되는 124위 가운데 27위가 서소문에서 순교했습니다. 순교의 역사성을 고려하면 시복식 장소로 광화문만한 곳이 없다는 게 설득력을 갖는 대목입니다.

둘째 이유는 광화문이 갖는 상징성입니다. 중국 수도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처럼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광화문은 국가 권력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광화문은 조선시대 국왕의 궁궐이었던 경복궁의 정문입니다. 그 뒤에는 일제 시대 총독부였던 중앙청이 있었고 지금도 그 뒤에는 ‘권부’인 청와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순교자들은 단지 천주교를 믿었다는 죄목으로 참수형, 군문효수 같은 극형을 받았습니다. 국가 권력의 폭력에 의해 희생된 것입니다. 124위 시복식은 국가의 죄인이었던 순교자들이 교황청에 의해 공식적으로 ‘복자’(福者)로 바뀌는 일종의 ‘신원 의식’(伸寃 儀式)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홍보 효과의 극대화입니다. 광화문은 사통팔달의 교통망으로 대규모 군중이 모이기 쉬운 곳입니다. 한강 둔치나 서울공항과는 접근성에서 상대가 안 될 정도로 뛰어납니다. 수도 서울의 한복판이라는 지리적 장점도 막대해 대형 행사를 개최했을 경우 그 파급력이 엄청나 국내는 물론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습니다. 광화문에서 서울시청까지 프란치스코 교황이 카퍼레이드를 할 경우 100만 명의 인파와 함께 그야말로 장관을 이룰 것으로 예상됩니다. 홍보 효과를 생각하면 광화문이 최적의 장소임에 틀림없습니다.

시복식 장소가 광화문으로 결정된 뒤 한국 천주교회와 경찰청은 만일의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행사 시간(오전 10시부터 12시30분)이 상당히 길기 때문에 폭염으로 노약자들의 건강에 이상이 생길 것에 대비해 응급 의료소 25곳을 운영합니다. 또 갑작스런 폭우로 안전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인근 건물로 긴급 대피할 계획도 마련했습니다. 1984년 5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주례한 103위 순교자 시성식은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100만 명이 모인 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됐습니다. 한 세대, 꼭 30년이 지난 2014년 8월의 124위 순교자 시복식은 한국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 지 자못 궁금합니다.

[권종오 기자 kj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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