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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현장에서] 유병언 유언비어와 무신불립(無信不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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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헤럴드경제=김기훈 기자] 무신불립(無信不立),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는 뜻이다. 공자는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바로 서지 못한다”며 무신불립을 강조했다.

이 해묵은 지혜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유병언 씨에 대한 DNA 감식 결과 발표에도 신뢰는 곤두박질하고 온갖 설(說)이 들끓는다.

결국 경찰은 유 씨의 사망과 관련,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악성 게시글에 대해 수사를 벌이기로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방침이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불신의 배경에는 초동수사를 부실히 한 경찰 책임도 있다. 또 세월호 사고 당시 단 한 명도 구조해내지 못한 정부의 무능이, 불신이라는 괴물을 만들었다는 목소리도 높다.

물론 경찰로서는 억울한 면도 있다. 경찰은 변사체의 신원이 유 씨로 확인되자 초동수사의 잘못을 시인했다. “실수는 인정하되 조작이나 은폐는 없었다”는 게 경찰의 입장이다. 또 일부 정치인의 막무가내식 의혹제기도 상식 선을 넘었다.

그럼에도 과연 강압적 수사로 유언비어를 잠재울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유언비어에 맞불을 놓을 수록 의혹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질 것이란 게 세간의 전망이다. 자칫 ‘뭔가를 감추기 위해 경찰이 선전전에 나선 것은 아닌가?’ 의심의 불길에 땔감을 던져넣을 수도 있다.

또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경찰 수사가 과연 법적 실효성이 있는 지도 의아하다. 경찰청이나 국과수와 같은 국가기관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은 다툴 수 없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물론 경찰이 내사에 착수할 순 있지만 그저 엄포성에 그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편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은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국과수는 감정기관이고 감정 결과로 말할 뿐이다. 명예훼손으로 인한 고소 등은 우리가 할 일 아니다”라고 명쾌히 선을 그었다.

과학적 사실은 불변하며 이를 소리 높여 다툴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이 ‘수사’라는 칼을 빼 드는 것 자체가 유언비어에 휘둘리며 과학마저도 불신하는 풍토를 만들 수도 있다.

정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경찰은 결정적 순간마다 국민에게 불신을 심어줬다. 오늘날 이 불신의 상황이 왜 도래했는지, 어떻게 신뢰를 회복할 것인지 경찰 수뇌부의 차분한 고민이 필요하다.

kih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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