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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기운 전봇대 곳곳에… 생사람 잡을라 ‘아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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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부식 상태에 통신 케이블 등 다닥다닥 하중 쏠려

한전선 유지보수 비용 축소 국감 지적 불구 관리 소홀

길고 가느다란 콘크리트 전봇대에 육중한 변압기 3개가 매달려 있다. 두껍게 엉킨 통신용 케이블은 줄다리기를 하듯 전봇대 기둥을 한쪽으로 팽팽하게 당긴다. 꼿꼿이 서야 할 전봇대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기울었다. 전봇대 아래로 학교를 마친 초등학생들이 웃으며 오갔다.

지난 30일 서울 은평구 갈현1동 한 주택가 전봇대 주변의 풍경은 위태로웠다. 이날 은평구 갈현동·대조동, 마포구 노고산동, 서대문구 홍제동 관내 전봇대 70여개 중 20여개에서 크고 작은 기울음을 발견했다. 이 중 7개는 10도 안팎으로 기울어 육안으로 보기에도 아찔했다. 낡아서 밑부분의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간 전봇대도 여럿이었다.

경향신문

서울 갈현 1동 주택가에 쓰러질 듯 서 있는 전봇대 옆을 한 주민이 지나고 있다. |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통신용 케이블을 많이 매단 ‘과적 전봇대’, 콘크리트가 부식한 ‘노후 전봇대’는 서울 전역에서 찾을 수 있다. 서울시가 2011~2012년 관내 전봇대들의 기울기, 휨, 부식 등을 조사한 결과 1075개의 전봇대에서 안전 위협요인을 발견했다. 2013년 이후 지금까지 위험 전봇대 조사는 없었다. 이 위험 전봇대는 언제든 쓰러질 수 있다. 지난 27일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인근 도로에 서 있던 14m 높이 전봇대가 쓰러져 택시 두 대를 덮쳤다. 택시에 타고 있던 승객은 크게 다쳐 병원에 실려갔다. 전선이 끊어지면서 일대 주택 500여가구가 2시간 동안 정전됐다. 지난 5월에도 송파구 한 주택가의 전봇대가 갑자기 기울어 주민들이 황급히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특히여름이 되면 강풍에 쓰러질 수 있는 과적·노후 전봇대 문제점은 여러 해에 걸쳐 지적받았지만 실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위험 전봇대는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맹목적 ‘이윤과 속도’ 추구, 안전 무시의 문제를 보여준다. 전봇대 안전은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취약해졌다. 통신 케이블 설치가 크게 늘어나며 과적 전봇대를 양산했기 때문이다. 전봇대에 많은 케이블을 매달면 하중이 쏠리며 지지대가 약해진다. 언제든지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건설 규정을 지키지 않는 것도 문제다. 대한전기협회에선 콘크리트 전봇대를 가설할 때 길이 15m를 초과하면 2.5m 이상을 묻게 하는 규정을 마련해놓았다. 하지만 비용 절감과 작업속도 향상을 핑계로 현장에선 규정을 어길 때가 많다고 전국건설노동조합 관계자는 전했다.

전봇대 관리 주체인 한전은 2008~2012년 국정감사에서 배전 유지보수 비용 축소 같은 관리 소홀을 지적받았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최근까지 배전설비 건설 노동자들이 한전 등에 노후 전봇대 보수나 이설을 물어보면, 한전 측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위험 전봇대는 여름이 되면 잠재적 위험이 된다.2년 전 태풍 ‘볼라벤’이 왔을 때 전국의 전봇대 4700여개가 쓰러져 200만가구가 정전됐고 화재 등 2차 피해도 속출했다. 제12호 태풍 나크리는 현재 한반도를 향해 북상하고 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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