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부처님 진신사리, 한국에 오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부천 석왕사, 스리랑카 정부가 공인한 2과 기증 받아 2일 봉안법회

스리랑카 정부가 출처, 유래 등을 공인한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 2과가 한국 석왕사(경기 부천)에 봉안된다.

석왕사(주지 영담 스님)가 스리랑카의 수부티 사원과 마힌다 라자팍세 스리랑카 대통령으로부터 기증받은 것이다. 지난 27일 오전 7시30분, 스리랑카 콜롬보의 수부티 사원. 스리랑카에서 한국으로의 진신사리 이운법회가 예정된 사원 마당에선 흰옷을 차려입은 200여명의 아이들이 노란 꽃을 들고 영담 스님을 비롯한 스님들과 신도, 석왕사 관계자 등 한국 손님들을 맞이했다. 이운법회는 석왕사의 국제구호봉사단체인 ‘하얀코끼리’의 사물놀이, 스리랑카의 전통 문화공연이 연이어 펼쳐진 후 시작됐다.

경향신문

지난 27일(현지시간) 스리랑카 수부티 사원의 주지 마힌다완사 스님(왼쪽)과 석왕사 주지 영담 스님이 진신사리탑을 맞잡고 있다.


먼저 진신사리를 친견했다. 금색의 사리탑을 열자 연한 황토색에 새끼손톱만한 크기의 진신사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스님, 신도들의 탄성이 저절로 터져나왔다. 이 진신사리는 1898년 영국 고고학자 알렉산더 커닝햄 박사와 유적 발굴지 소유주인 펩페가 석가모니의 고향인 카필라성의 고대 불탑 유적에서 발굴한 것이다. 당시 진신사리는 석함에 든 5개 사리병에 봉안돼 있었다. 석함에는 옛 산스크리트어인 브라미어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매장 사리. 이 위업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배우자, 자식, 형제자매, 그리고 다른 가족들이 만든 것이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불교학계는 그 문장이 <열반경>에 기록된 ‘카필라성 출신의 석가족은 가장 거룩한 성인의 진신을 모실 불탑을 세우고 그 거룩함에 걸맞은 엄숙한 의식도 준비했다’는 내용과 일치한다고 본다. 당시 펩페는 사리에 관심이 없던 영국 정부로부터 진신사리의 외국 반출승인을 얻어 21과를 스리랑카의 수부티 큰스님에게 보냈다. 수부티스님은 이후 불탑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했다.

마힌다완사 수부티사원 주지스님은 대대로 봉안돼온 진신사리를 영담 스님에게 기증하며 “스리랑카에서 진신사리는 부처님과 같다. 진신사리를 통해 한국과 스리랑카의 문화교류가 증진되고, 불교 발전도 이루어지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이튿날인 28일 오후 6시엔 스리랑카 대통령궁에서 또 다른 진신사리 기증식이 개최됐다. 50여명의 양국 스님들과 신도들이 보리수 나무 아래에 자리한 가운데 마힌다 라자팍세 스리랑카 대통령이 직접 영담 스님에게 진신사리 1과를 기증했다. 이 진신사리는 스리랑카 최초의 왕국인 싱할라 왕국을 이은 루후누 왕국 초기부터 전해져온 것으로, 갈레 지역의 텐네콘 가문이 1625년부터 가보로 봉안해왔다.

경향신문

스리랑카 수부티 사원과 마힌다 라자팍세 대통령으로부터 기증받은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


마힌다 라자팍세 대통령은 기증식에서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며 “희생된 분들의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진신사리가 그분들께 힘이 됐으면 한다. 희생된 분들이 열반에 들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영담 스님은 “스리랑카를 한국에 잘 알려 스리랑카 사람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고, 사람들 사이에 신뢰가 쌓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스리랑카의 진신사리 기증은 영담 스님과 스리랑카 사이의 오랜 인연으로 가능했다. 영담 스님은 1980년대 후반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방한한 스리랑카의 해천 스님과 20여년 교류하며 1990년에는 두 스님이 한국-스리랑카불교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영담 스님은 또 1995년 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을 세우고 스리랑카 노동자 등 외국인 노동자들의 권익보호에도 힘을 썼다. 마힌다 라자팍세 대통령은 이에 대한 감사 표시로 2008년에도 영담 스님을 대통령궁에 초청, 백불상(白佛像)을 기증하기도 했다.

영담 스님은 “이번 진신사리 기증은 종교도 민간 차원의 외교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스리랑카 사절단이 참석한 가운데 2일 오전 석왕사에서 진신사리 봉안 법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석왕사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불탑이 아니라 사리함·사리닫집에 봉안하고, 해마다 한번씩 친견 법회를 열 예정이다.

불교계에서는 스리랑카 정부가 공인한 이번 진신사리 이운에 큰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고산문화재단 이용성 이사는 “스리랑카 등 외국에서 진신사리를 기증받은 사례의 대부분은 양국 스님들간 친분에 의한 것으로 진위 논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석왕사가 기증받은 진신사리는 스리랑카 정부가 공인했다는 점에서 기존 사례와 다르다”고 밝혔다.

<콜롬보(스리랑카) | 글·사진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