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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청와대 아래 골목 귀퉁이 ‘사진가들의 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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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문화‘랑’] 문화공간, 그곳

(22) 서울 통의동 ‘류가헌갤러리

4년전 한옥 두채 개조해 시작

전시공간 앞마당엔 뜨락 카페

사진책도서관도 큰 자랑거리

“신뢰·교감 네트워크 가장 소중”


한 시절이 노래처럼 흐르는 집이 있다. 잔돌 깔린 깊은 마당과 전시장이 있는 한옥집 뜨락이다. 그 집에서는 누구든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함께 흐르게 된다.

이 넉넉한 풍경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사는 청와대 아래 서울 통의동 한옥동네 구석에서 시도 때도 없이 펼쳐진다. ‘사진 위주’ 갤러리 류가헌(流歌軒)이란 곳이다. 여기를 가려면 경복궁역에서 십분여, 녹음 가득한 경복궁 옆 효자동 길을 청와대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옛 보안여관 못미처 왼쪽 골목으로 틀고 소담한 한옥집들 사이를 걸어가면, ‘사진위주 갤러리 류가헌’ 간판을 단 한옥 귀퉁이가 보인다. 그 옆 골목으로 꺾어, 길 끝 대문을 지나면 류가헌의 왁자한 이야기들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흐르면서 노래하는 집’이라는 뜻의 류가헌은 최근 수년 사이 사진동네의 대표 사랑방으로 자리를 굳혔다. ‘사진 위주’란 부제 또한 사진을 중심에 놓되 다른 작품들과 사람들 풍경을 내보인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래서, 여느 화랑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작품도 보여주지만, 문화예술인들이 언제든 찾아가 관심사를 논의하고 정보를 나누는 소통마당의 성격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30일 류가헌을 찾아갔다. 개발 위기에 직면한 서해 굴업도의 자연을 찍은 사진가 이수범씨의 ‘섬을 찾는 사람들’전(8월22일까지)이 차려져 있다. 20여평의 좁은 전시장이지만,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과 민병훈 필름이 만든 사진가 김중만 주연의 다큐영화 <너를 부르마>도 볼 수 있다. 더욱 솔깃한 건 앞 마당공간의 매혹이다. 잔돌을 깔고 사이 디딤돌 놓아 전시장으로 이어지는 고즈넉한 마당과 옆 뜨락을 관객들은 쉬이 떠나지 못한다. 차를 마시고 누군가와 담소하거나 책 보는 게 어색하지 않다. 게다가 이갑철, 성남훈, 강운구, 육명심씨 등 사진계 유명 작가들이 수시로 얼굴을 비춘다. 그들은 일반인, 예비작가들과 거리낌없이 이야기하고 조언해주곤 한다.

신기어린 이 땅의 풍경을 찍어온 이갑철 사진가는 류가헌을 “다른 전시장과 공간의 공기감이 다르다”고 짚어준다. 70년 넘은 ㄷ자 한옥 두채가 맞붙은 류가헌은 안쪽채인 전시실에서 이어지는 다른 한채 공간이 소통과 사색의 장소 구실을 한다. 들머리 카페를 넘어 안쪽 다른 한채로 들어가면, ‘사진가의 서재’라고 이름 붙인 공간이 나타난다. 주요 사진가들의 책 서재와 애장품을 두달간 옮겨와 그들의 작업이 나온 인문적 배경을 엿볼 수 있게 했다. 캄보디아 사진집을 최근 출간한 사진가 임종진씨의 서재가 관객들을 맞고 있다. 조금 더 안쪽 방에는 류가헌의 가장 큰 자랑인 사진책도서관이 있다. 2011년부터 류가헌이 벌여온 사진집 판매행사인 포토북페어를 기반으로 출판사와 작가들로부터 기증받은 사진집 1200여권을 비치해놓았다. 다른 도서관, 서점에서 볼 수 없는 국내외 사진가들의 작품집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다. 사유와 이미지가 흐르는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소통의 틈새를 놓은 배려가 느껴진다.

류가헌의 열린 공간들을 만든 주역은 스스로를 실무자라 부르는 세 사람이다. 폐가 같았던 한옥집을 여섯달 동안 공들여 리모델링한 사진가 이한구(47) 대표와 그의 부인인 프리랜서 작가 박미경(46) 관장, 이 공간의 디자인을 총괄하는 디자이너 박광자(51)씨다. “2009년 류가헌 옆 한옥을 빌려 작업실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쓸수록 공간을 과소비한다는 생각이 들어 젊은 사진가들의 첫 전시 공간으로 쓰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때 류가헌 옛집 소유주께서 자기네 집을 써보는 게 어떠냐고 해서 무릎을 탁 쳤죠. 그때부터 세 사람이 모여 생각 흘러가는 대로 즐겁게 전시 만들고 기획하다 보니 4년을 넘겼어요.”(이한구)

2010년 3월 사진가 6인의 기획전 ‘봄봄’으로 시작한 류가헌 전시는 150건을 넘어섰다. 기획전과 초대전 등 한해에만 40여차례 전시를 꼬박꼬박 치렀다. 박 관장은 모든 전시 홍보자료를 일일이 취재해 쓴다. 박광자씨는 신문판형의 용지에 큰 사진과 큰 활자를 담아 전시정보를 펼쳐볼 수 있게 했다. 그렇게 만든 소식지 <뷰스페이퍼>는 류가헌을 상징하는 매체가 됐고, 수집가들이 생겨났을 정도다. 외면받는 사회적 다큐사진들을 적극 수용한 기획전 또한 성가가 높다. 특히 7월 밀양 송전탑 투쟁 현장에서 작가 18명이 찍은 사진들을 모은 ‘밀양’전은 울림이 컸다. 1000명 이상 찾았고, 200만원 넘는 지원금까지 모았다.

류가헌은 이윤을 좇지 않는다. 월 1000만원의 운영비는 세 실무자가 각자 추렴한 돈과 책 판매 등의 작은 수익 등을 통해 근근이 조달한다. 사진에 얽힌 디자인, 사진, 글 작업을 하면서 각자 쌓은 애정과 일 하나하나를 즐겁게 한다는 생각들이 모여 류가헌의 4년을 행복하게 이끌어왔다고 그들은 입을 모은다. 강운구, 구본창 같은 중견 사진가들 생일잔치가 ‘핑계’ 등의 색다른 테마로 발전하고, 두 연인 작가가 함께 마련한 전시회에서 결혼식을 올린 일화 등은 류가헌에 대한 사진계의 믿음을 상징하는 풍경들이다. 박미경 관장은 “자발적으로 작가들이 사진집과 책을 기증하고 철마다 과일과 채소 등을 갖다주는 교감의 네트워크가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며 “일반인을 위한 사진집 짓기 같은 대중적 기획들로 공간의 내연을 넓히고 싶다”고 말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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