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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취재파일] 시신 옆에서 울부짖던 아이, " 문 열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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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 추정했지만 방치 못 막아

SBS

지난 29일, 경기도의 한 가정집에서 8살 아이가 발견됐습니다. 집 안에 있던 빨간 고무 통 안에선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시신 두 구가 발견됐습니다. 아이는 시신이 부패할 때까지, 집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때론 영화보다도 현실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이렇게, 벌어집니다.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보이는 시신 두 구, 의문점이 많지만 그보다는 아이가 방치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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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시신의 부패 상태로 보아 사망 시점이 적어도 2주전 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당시 출동한 소방 대원과 경찰의 말에 따르면, 집 안은 마치 쓰레기통을 연상 시킬 정도로 엉망이었다고 합니다. 무릎 높이까지 쓰레기가 쌓여 있었고, 침대를 제외한 공간은 사실상 거대한 쓰레기 더미와 같았다고 합니다. 쓰레기 상태로만 봐도 마치 '세상에 이런일이'에나 나올 법한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한쪽에선 시신이 부패하고 있었으니 악취도 상당했을 겁니다.

정황상 집안의 누군가가 쓰레기나 집기류를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호더스 증후군'을 앓았던 것으로 의심되는데, 아동 학대의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지난 4월에도 쓰레기로 뒤범벅된 가정의 사례가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엔 4남매가 오물구더미 속에 방치됐다가 경찰과 아동 보호기관에 의해 구조됐습니다. 부모와는 일시적으로 격리되기도 했죠.

악취는 이웃으로 번지지 않았을까. 주민들과 관할 주민센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 가정집의 출입문이 열리는 것을 쉽게 볼 수가 없었답니다. 주민센터나 아동복지기관에서 찾아가도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고, 인기척이나 방문 사실을 알려도 문은 열리지 않았답니다. 꽁꽁 닫힌 문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 이웃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아동은 초등학교 2학년 나이입니다. 초등학교를 다녔더라면 장기 결석하는 게 확인이 됐을 텐데, 왜 아무도 몰랐을가요? 석연치 않아 취재해보니, 이 아동은 초등학교 입학도 하지 않았습니다. 애초 2013년 입학해야 했지만, 한 차례 어머니가 입학연기 신청을 했습니다. 한 차례 입학 연기는 부모의 자필 소견만으로도 가능합니다. 의사의 진단서나 소견서가 없어도 관할 주민센터의 허락만 얻으면 되는 겁니다. 그렇게 1년이 흘렀습니다.

2014년, 올해는 어땠을까요? 자녀의 입학을 연기한 뒤, 이듬해에도 학교를 보내지 않으려면, 부모가 '유예' 신청을 해야합니다. 첫번째보다는 까다로워서 이번에는 학교의 심사를 거쳐야 합니다. 납득할만한 사유가 있어야 하는 만큼, 의사의 소견서나 진단서도 첨부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동의 어머니는 자필 신청서만 학교에 제출하고 연락이 거의 닿지 않았습니다. 진단서도 제출해야 한다고 학교에서 수차례 연락했지만, 답이 없었습니다.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보니, 아동보호기관에서도 이 가정을 주시하게 됩니다. 그게 지난 5월부텁니다. 주민센터와 초등학교 측에 자료를 요청하고, 이후 가정을 수차례 방문하기도 합니다.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밤늦게까지 집 앞에서 기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가 집 안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동보호기관은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권리가 없어서, 방문하고, 마냥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상황이 반복되자, 아동 보호기관에서는 7월 14일쯤 관계 기관(초등학교, 주민센터)을 통해 다시 한번 더 자료를 취합합니다. 아동 학대가 의심되는 만큼 경찰과 공조까지 염두에 두고 최종적으로 각종 정황을 정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후로 보름이 더 흘렀습니다. 그 보름 사이, 어떠한 조치도 없었습니다. 경찰이 적어도 2주동안 아이가 시신과 방치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만큼, 마지막으로 자료를 취합했던 7월 14일, 그때라도 조치했으면 어땠을까요. 경찰과 공조도 아쉬운 대목입니다.

일부에서 아이가 아사 직전 구조됐다고 보도하기도 했지만, 진단 결과 건강에 큰 이상은 없는 상탭니다. 탈수 증상도, 영양 실조 증상도 없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생각하듯- 건강의 이상 여부와 방치의 책임 문제는 별개입니다.

당분간은 안정이 중요하다는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아이는 아동보호기관의 보호 아래 병원에 머물면서 심리 치료를 받게 될 예정입니다. 모쪼록 아이가 건강한 웃음을 되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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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사건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아이 어머니를 뒤쫓고 있습니다만, 현재 어머니의 행적은 묘연합니다.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지만, 아이는 그래도 엄마가 필요한가 봅니다. 구조될 당시에도, 아이가 울부짖으며 찾은 건 엄마였다고 합니다.

[김아영 기자 nin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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