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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가족 다섯명 전원 시복·시성(諡福·諡聖)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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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순교 정약용 형 정약종家… 다음 달 16일 교황이 방한해 집전

"정약종 할아버님 덕분에 나주 정씨 집안에 천주교 신앙이 내려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복자(福者)가 되시는 것을 계기로 그분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졌으면 합니다."

30일 경기도 남양주시 능내리의 천주교 마재 성지 성당에서 정규혁(87)씨와 정호영(56)씨가 함께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집전하는 시복식(諡福式)에서 복자로 추대되는 순교자 124위 중 하나인 정약종(丁若鐘·1760~1801)의 후손이다. 규혁씨는 정약종의 방계 4대손이고, 호영씨는 정약종의 동생인 다산 정약용의 7대 종손이다. 정약종은 부인과 두 아들 및 딸까지 모두 순교해 더는 후손이 없다.

호영씨는 "어릴 때 집안에서 제사를 거의 드리지 않아서 할아버지께 이유를 여쭤봤는데 '(어른들이) 간소하게 하라고 했다'고 말해주셨다"며 "예전 집안 어른들이 박해나 주변 시선 때문에 드러내놓진 못해도 꾸준히 천주교 신앙을 이어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그는 "어른들로부터 정약용 할아버님도 돌아가시기 전에 유방제 신부로부터 종부 성사를 받고 신앙을 찾으셨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정약용은 신유박해(1801년) 때 배교(背敎)한 뒤 다시 천주교를 믿었다는 공식 기록은 없다.

규혁씨는 "조상님들이 신앙 때문에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고 어렵게 살았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며 "족보에 정약종 할아버님의 이름을 올린 것도 1961년일 정도로 오랫동안 쉬쉬하면서 살았다"고 말했다. 정약종의 부인(유조이)과 차남(하상), 딸(정혜)은 이미 1984년 성인에 추대됐지만, 정작 그들보다 먼저 천주교를 믿은 정약종은 그동안 복자에도 오르지 못했다. 규혁씨는 "1993년 고(故) 김수환 추기경님이 마재 성지에 오셨을 때 정약종 할아버님의 복자 추대를 건의했다"고 말했다.

한국 천주교는 정약종과 그의 장남 정철상 등에 관한 기록을 발굴해 2001년 교황청에 시복 청원을 했고, 이번 교황 방한과 맞물려 시복식이 이뤄지게 됐다. 규혁씨와 호영씨는 정약종의 후손 대표로 시복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번 시복으로 정약종 집안 가족 5명이 모두 시복·시성 됐습니다.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일 겁니다. 그런 신앙의 마음을 소중히 이어가고 싶습니다."



[남양주=권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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