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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4살부터 병원 신세…24시간 링거 맞는 21살 ‘홀로서기’ 안간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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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2014 나눔꽃 캠페인]

내가 전하는 한 송이 ‘나눔꽃’이 이웃과 사회를 밝고 행복하게 합니다. 나눔꽃 캠페인은 2009년부터 해마다 진행한 <한겨레>의 대표 사회공헌 프로그램입니다. 올해는 ‘바보의 나눔’ ‘세이브더칠드런’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세 단체와 함께 여섯번째 나눔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이번 나눔꽃은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과 함께 하는 ‘소외 없는 모든 생명을 위하여’입니다. ‘생명사랑·생명존중’이 목표입니다. 4대 중증질환(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희귀난치성질환)을 제외한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이웃이 주인공입니다. 가족 중 한 명이라도 아픈 사람이 있으면 모든 가족이 어렵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의료비 부담은 단단했던 처음의 마음을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이들이 외롭다고 느끼지 않도록, 다시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위로가 필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연이 실린 기사 속 계좌 또는 ARS로 성금을 보내시면 사연의 주인공에게 전달됩니다. 여러분의 기부로 당장의 위기를 넘기고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는 이들의 ‘보도 이후’ 모습은 다음 사연을 보도할 때 전해 드리겠습니다. 지금 눈물 흘리고 있는 이들이 여러분의 작은 기부로 웃음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한겨레>가 나눔꽃으로 함께 하겠습니다. 개인 기부는 나눔 문화의 뿌리입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박민아(21)씨는 그룹 제이와이제이(JYJ)의 10년 팬이다. 김준수를 특히 좋아한다. “표가 생겨서 8월에 준수가 나오는 뮤지컬을 보러 갈 거예요.”

22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박씨는 좋아하는 가수의 이야기를 하며 수줍게 웃었다. 환한 웃음 뒤로 긴 갈색머리가 어깨 위로 흘러내렸다. 파란색 매니큐어가 발가락 끝에서 반짝였다. 박씨는 음악 듣는 걸 좋아한다. 클래식을 주제로 한 일본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가 재밌어 최근에는 클래식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여느 20대와 다르지 않아 보이는 박씨가 말을 이어갔다. “저보다 더 많이 아프고 다친 사람들이 많으니까, 사람들이 절 보고 아픈 사람인 줄 몰라보는 건 당연해요.”

박씨는 어릴 적부터 장 움직임이 좋지 않았다. 병원을 집처럼 드나들었다. 신경과 근육 이상으로 장이 쉽게 딱딱해졌기 때문이다. 4살 때 진단 받은 병명은 ‘만성 가성 장폐색’이다. 일본에서는 10만명당 0.2명이 발병하고, 국내 발병률은 아예 보고가 없는 희귀병이다. 장이 아플 때면 구토를 할 만큼 속이 울렁거리고 복부 팽만감을 느꼈다. 음식을 먹기도, 먹은 음식을 소화하기도 힘들었다. 6살 작은 몸으로 대장을 잘라내는 수술을 2번이나 받았다.

학교 생활은 짧았고 병원 생활은 길어졌다. 초등학교가 박씨에게는 유일한 학교였다. 초등학교 때도 몸이 아파 등교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친구들이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 박씨의 장이 유착됐다. 배를 여는 큰 수술을 받은 뒤로 학교에 돌아가지 못했다. 소장만 조금 남았는데도 이 역시 잘 움직이지 않는다. 3년 전에는 위 절제술까지 받아 박씨의 위는 10%밖에 남지 않았다. 소화 기능은 더 떨어졌고 입으로 음식을 거의 못 먹게 됐다. 지금은 하루에 음식 100g을 채 먹지 못한다. 2009년에는 담석이 생겨 담낭을 절제하는 수술도 받았다.

장 딱딱해지는 희귀병 판정
수차례 대장·위 절제 수술뒤
밥 대신 정맥 영양주사로 끼니

텔레마케터 어머니 홀로 가장 노릇
약값·병원비 생활고에 빚만 1억
희귀난치병 지정 안돼 진료비 부담

고등 검정고시 목표로 병상 공부
“성인 됐는데…스스로 책임지고파”


박씨는 밥을 먹지 못해 팔에는 24시간 주사바늘이 꽂혀 있다. 움직임이 적은 밤 8시부터 오전 11시까지 1300~1400㎖의 영양제(TPN)를 정맥을 통해 공급한다. 박씨가 또 하루를 살아낼 1700㎉의 에너지다. 영양제를 오래 맞으면 간에 무리가 간다. 영양제를 맞지 않는 시간인 오전 11시부터 밤 8시까지는 수액과 항생제 등을 맞으며 간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장 운동이 약해 장에서 세균이 번식하기 쉽기 때문에 항생제가 꼭 필요하다.

“이제는 이거 없으면 허전하죠.” 자기보다 큰 주사액 걸이대(링거대)를 손으로 만지며 박씨가 말했다. 자신은 먹지 못하는 초콜릿이나 사탕을 링거대에 두는 건 병원에서 만나는 다른 환자들이나 간호사, 의사에게 건네기 위해서다.

친구들은 아직 학교에 다니거나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나이에 박씨의 걱정은 하나다. 바로 병원비다. 영양제 값만으로 한달에 100만원 정도가 든다. 몸 상태에 따라 약제 성분을 달리해야 하는데, 비타민이나 아연을 섞은 약은 120만원으로 더 비싸다. 퇴원해 있는 동안에도 집에서 매일 12시간씩 영양제 주사를 맞아야 한다. 박씨의 주치의인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고재성 교수는 “학회에서 희귀난치병 등록 요청을 하고 있지만 정부에서 아직 희귀난치병으로 지정하지 않아 진료비 감면을 못 받고 있다. 장기간 정맥영양주사를 맞아야 하기 때문에 치료비가 많이 든다”고 했다.

의료장비 값도 다달이 든다. 입원하지 않고 혼자 집에 있을 때 몸 관리는 고스란히 박씨의 몫이다. 박씨는 링거대에 매달고 다니는 영양제나 수액 등이 투입되는 속도와 양을 표시해주는 ‘인퓨전 펌프’를 따로 샀다. 의료용 주사바늘, 바늘을 고정하는 의료용 테이프, 의료용 거즈, 소독약품 등 일회용 의료용품을 매번 새로 사서 쓴다. 한 달에 한번꼴로 의료기 판매업체에 대량 주문하는데, 그 돈만도 한 달 평균 20만~30만원이 든다.

언제까지 이렇게 영양제를 투약하며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 현재로서는 치료법이 없기 때문이다. 박씨는 장이 마비되는 듯한 증상이 나타나면 스스로 통증을 완화하는 주사를 놓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토할 것만 같이 속이 울렁거리고, 배가 아파서 움직일 수조차 없어요.”

하루이틀 지나 상태가 나아지면 다행이지만, 호전되지 않으면 입원을 해야 한다. 운동을 자주 해야 장도 활발히 움직이는데, 오랜 투병으로 면역력과 체력이 약해져 움직이기도 쉽지 않다. 그렇게 2007년 10월부터 현재까지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가장 밝아야 할 10대의 절반을 병원에서 보냈다. 문제는 앞으로도 그렇게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갓 스무살을 넘긴 박씨의 약값과 병원비를 감당하기에는 가정 형편이 너무 좋지 않다. 어머니가 텔레마케터로 일하고 받는 월 140만원이 가족 4명 수입의 전부다. 아버지는 2009년 발병한 뇌졸중 후유증으로 일을 못한다. 올 8월에 학교를 졸업하는 오빠는 아직 취업을 하지 못했다. 만 18살 미만 환아의 경우 후원받을 곳이 많지만, 박씨 같은 성인 만성질환자들은 후원처를 찾기 어렵다.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50만원, 17평 빌라에 드리운 것은 생활고로 인한 불투명한 미래다. 병원비까지 겹쳐 빚만 1억원에 이른다.

박씨는 힘든 시간을 이겨내느라 철이 빨리 들었다. 몸이 아픈 자신이 주변 사람들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아픈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느라 가족들의 삶까지 세상에 공개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렇게 수년간 방송사 후원 프로그램의 방송 제의를 여러 차례 거절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용기를 냈다. 더 이상 가족들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아서다.

“앞으로도 병원비나 약값이 많이 들 거란 거 알아요. 이제 저도 성인이 됐는데, 계속 부모님이랑 오빠한테 의지하면서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빠가 이제 곧 취업을 하겠지만 제 인생은 제가 책임지고 싶어요.”

박씨는 요즘 다인실 병상에 앉아 공부를 한다. 중등 검정고시는 이미 통과했다. 내년 4월 고등학교 검정고시 통과를 목표로 공부를 하고 있다. 후원 재단에서 만난 자원봉사자가 1주일에 2시간씩 수학을 가르쳐 준다. 박씨도 자신과 같은 질환을 가진 11살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있다. 아픈 아이들을 보면 박씨가 어렵게 통과한 시간과 앞으로 지낼 시간이 떠올라 마음이 더 쓰인다고 했다.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걸 느꼈어요. 병원 생활을 오래 해서 성격이 조금 소심한 편인데, 앞으로는 성격도 조금 바꾸고 싶고요. 저처럼 아픈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고 싶어요.”

아직은 자신이 없다. 어떤 날은 박씨도 평범한 사람들처럼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퇴근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지만, 언제 아플지 모를 몸 때문에 평범한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박씨는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포기하지 않고 꿈을 꾸고 싶다. 기회가 되면 대학도 가고 싶다.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이름과 얼굴 공개를 바라지 않아 가명을 썼습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한겨레 나눔캠페인 참여하려면

박민아씨를 응원하고 싶은 분들은 계좌이체(기업은행 060-700-1226, 예금주: 바보의나눔)나 전화(ARS 060-700-1226, 한 통에 5000원)를 하면 된다.

박씨의 모금 목표액은 2500만원이다. 지난해 12월부터 7월 말 현재까지 내지 못한 대학병원 입원·진료비 1100만원과 정맥영양공급 등 약제비 800만원, 의료소모품 비용 240만원에 월세(50만원)와 교통비 등을 포함한 생계 유지비도 포함돼 있다. 처음으로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고 당당해지고 싶은 박씨의 꿈이 발 딛고 설 희망의 토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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