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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넌 푸틴의 서방 제재 대응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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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점차 서방진영으로부터 '왕따'가 돼가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나 홀로 행보가 계속되고 있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다는 분석마저 제기되고 있다.

지난 17일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 MH17편이 우크라이나 영공에서 격추됐을 때만 해도 서방은 이 사건이 푸틴 대통령의 마음을 우크라이나 친러 분리주의 반군으로부터 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MH17편 피격의 책임이 우크라이나 반군에 있다며 추가 제재를 무기로 푸틴 대통령에게 선긋기를 요구했다. 러나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한동안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입을 열지 않던 푸틴 대통령은 지난 22일 "사고기 조사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우크라이나 반군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겠다"고 말했다. 서방진영이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듣길 원했던 발언은 이것이 전부였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벌어진 교전에 대해 반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이 정부군에게만 비난을 가했다. 아울러 러시아 언론을 활용해 서방에 대한 비판에 집중하는 한편 서방의 제재를 의식한 듯 방위산업 분야에서 서방부품의 사용을 줄여야 함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스스로를 코너에 몰아넣은 채 새로운 상황 타개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라는 분석을 내놨지만 여론조사 결과는 이런 분석과 결을 달리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센터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4%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책임이 러시아가 아닌 서방에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63%는 이번 사태와 관련한 러시아 언론의 보도가 객관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우크라이나 반군으로부터 등을 돌린다고 해도 푸틴 대통령이 특별히 정치적인 이익을 거두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런 계산은 MH17편이 격추되기 전까지는 얼추 들어맞았다. 러시아는 그간 수많은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 의혹에도 불구하고 적절히 흔적을 잘 지워가면서 친러 반군을 지원해왔다. 제재 또한 경제 전반에 걸친 것보다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돕거나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인사들, 이에 관여한 기업들에 국한돼 있었다.

그러나 MH17편 피격에 분노한 미국과 EU가 대규모 제재안 마련에 박차를 가하면서 이런 예상은 빗나가기 시작했다.

정치평론가인 니콜라이 페트로프는 뉴욕타임스를 통해 "MH17편 격추 전까지 푸틴 대통령의 계산은 꽤 잘 맞아떨어지며 전략 싸움에서 우위를 보였다"며 "그러나 이후 서방이 보인 급진적인 제재 움직임은 러시아가 예상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의 강경 노선은 2조달러(약 2050조원) 규모의 러시아 경제가 이미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점과 지난 2분기에 제로성장을 보인 점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

그는 자문단 회의 후 "어떤 위기가 닥치더라도 솔직히 지금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본다. 서방이 우리의 생산능력 향상에 필요한 장려책을 내놓기 전까지 충분히 우리만의 장점을 활용하면 된다"며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서방의 경제제재로 인한 추가적인 경제 붕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생각처럼 작지 않다. 레바다센터 여론조사에서 서방의 경제제재가 우려된다고 응답한 비율은 61%에 달한다.

특히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알렉세이 쿠드린 전 재무장관은 "우크라이나 사태는 우리가 특별히 세계 최고수준의 군사훈련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려줬다"며 "그러나 이 때문에 러시아는 국가발전에 저해가 될 서방과의 역사적인 대립국면에 돌입했다"고 지적했다.푸틴으로부터의 보복에서 다소 자유로운 쿠드린 전 장관 뿐 아니라 러시아 경제계도 발 빠르게 대응책 마련에 나서기 시작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지난 25일 추가 제재로 인한 자본이탈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0.5%p 인상했다. 러시아의 최대 국영 석유기업인 로스네프트도 제재로 인한 부작용에 대비하는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장 상황은 좋지 않다. 올해 초 시험적으로 러시아 금융시장으로 돌아왔던 외국 주식·채권 투자자들은 다시 보유 지분을 줄이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오는 2018년 대선에서 4선에 도전하는 푸틴 대통령의 딜레마가 발생한다.푸틴 대통령은 지난 3월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합병하면서 국수주의적인 국민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러나 서방의 제재로 인해 러시아 경제가 흔들린다면 지난 2000년과 2004년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했던 도시계층민들의 민심 이반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보리스 비슈네프스키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의원은 "앞선 제재들이 푸틴 대통령의 측근들에게만 고통을 줬다면 앞으로 올 추가 제재는 러시아의 경제와 생활수준을 흔들어 모든 러시아 국민들을 힘들게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제 뿐 아니라 정치에서도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전 에너지부 장관 역임했던 야권의 블라디미르 밀로프 의원은 "정치적인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 단지 전쟁에 반대하는 세력이 아직 푸틴 대통령을 실질적으로 압박할 도구를 갖추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라며 지각 변동을 예고했다.

러시아 정치평론가인 알렉산더 모로조프는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반군으로부터 거리를 두기를 원하는 서방의 요구를 피해왔다"며 "이제는 시기를 놓쳤기 때문에 방향을 바꿀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경제를 살리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 확보를 위해 어떠한 움직임을 보일 지 주목된다.
(서울=뉴스1)이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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