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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한 달 1000만원 ‘항암제 값’에 더 아픈 희귀암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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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평원, 비소세포폐암 항암제 ‘잴코리’에 또 비급여 판정

의료계 “경제성보다 사회적 합의로 급여화 문제 풀어야”

신경덕씨(72)는 지난해 2월 비소세포폐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암세포가 너무 퍼져 수술도 불가능했다. 항암제로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신씨는 자신에게 맞는 약을 찾을 수 있었다. ‘잴코리’라는 이름의 약이다. 전체 비소세포폐암 환자 중 3~5%인 ALK유전자 이상이 있는 환자만 쓸 수 있는 항암제다.

ALK 양성 비소세포폐암은 국내에서 연간 200~300건 정도밖에 발생하지 않는 병이다. 희귀병이라 약값도 비싸다. 신씨는 한 알에 16만원 하는 약을 하루에 2차례 먹어야 한다. 약값으로만 한 달에 1000만원이 나간다. 신씨는 약값을 대려고 아파트까지 처분했다. 하지만 1년이 넘도록 잴코리를 먹어 돈도 다 떨어졌다. 신경안정제와 항우울제도 함께 먹는다. 잴코리 값 걱정 때문이다. 신씨는 “한 달 약값으로 나가는 1000만원 돈뭉치가 내 뒤통수를 대패처럼 밀고 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 10일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잴코리에 대해 비급여 판정을 내렸다. 2012년 11월에 이어 2번째다. 비용-효과성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평가원 관계자는 “잴코리의 생명연장 효과는 인정이 됐지만 효과 차이가 기존 항암제와의 가격차보다 크다는 근거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도 잴코리는 비싸다. 한 달 60알 기준 70만엔(약 700만원)이다. 하지만 급여화돼 환자는 약값의 10%만 부담하면 된다.

잴코리 같은 희귀의약품은 비용-효과성 평가를 더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생명공학사 젠자임코리아의 김성주 연구원은 최근 낸 논문에서 “희귀질환은 특성상 경제성 평가에 필요한 임상 근거를 갖추는 데 한계가 있어 다른 의약품과 같은 잣대로 평가하기 어렵다. 희귀의약품은 사회적 필요성 같은 요소도 두루 살펴야 한다”고 했다.

다국적 제약기업 화이자가 만드는 잴코리는 2012년 1월 세계 2번째로 국내에 출시됐다. 잴코리 임상시험에 참여한 서울대병원 김동완 교수는 “잴코리를 복용하면 평균 8개월을 더 살 수가 있다. 환자 1명을 한 달 더 살게 하는 데 1000만원이 들어간다. 그 돈을 국가에서 부담할 수 있느냐는 사회적으로 합의할 문제”라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안명주 교수는 “치료제가 눈앞에 있는데도 돈 때문에 삶을 포기해야 되는 환자를 보면 안타깝다”고 했다.

고가 치료제 급여화 문제는 오랜 논란거리다. 자이티가(전립선암)·미팩트주(골육종)·얼비툭스(대장암)·레블리미드(다발골수종) 등 4대 중증질환 관련 40여 의약품 중 보험급여를 받는 치료제는 얼비툭스, 레블리미드 등 소수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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