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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사공 많은 통화정책… 흔들리는 금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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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인사 “금통위 권한 존중”

돌아서면 “금리 내려야” 압박

세계일보

통화정책은 중앙은행 고유 업무다. 법적으로 정치권력과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한국은행법(제3조)은 ‘통화신용정책은 중립적으로 수립되고 자율적으로 집행되도록 하여야 하며, 한국은행의 자주성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중앙은행의 중립성·독립성이다. 법으로 이를 보장한 것은 정치권력과 정부의 간섭을 배제한 중립적·독립적 통화정책이 정책실패 가능성을 줄여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할 것이란 믿음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입법 취지와 이상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박근혜정부 실세인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취임을 계기로 다시 시작된 간섭은 7·30 재보선 열기를 타고 증폭되는 양상이다. 취임 전후만 해도 “기준금리 결정은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고유 권한”이라며 절제하던 최 부총리는 차츰 발언 수위를 높여 노골적으로 금리인하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지난 28일 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선 “한은과 정부는 양적완화가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며 “(한은 금통위가) 그에 기반한 결정을 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선거전에 뛰어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이례적으로 금리인하 주문을 쏟아내고 있다. 같은 날 김 대표는 경기도 평택의 한 유세장에서 “박근혜정부는 대대적으로 경기부양책을 실시하고 재정확대 정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금리인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25일 충남 서산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도 “과감한 재정정책뿐 아니라 금리인하 등 선제적 통화정책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은의 대응은 소극적이고 수세적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최 부총리가 기준금리는 금통위 결정 사항이라는 생각을 유지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7월18일 금융협의회)고 밝힌 이후 말이 없다. 이쯤 되면 통화정책을 한은이 하고 있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금리인하를 주문하는 외부세력의 목소리가 클수록 한은의 중립성·독립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한은 관계자는 29일 “8월 금통위에서 독립적 판단으로 기준금리를 내린다 해도 외압에 무릎 꿇은 것처럼 비치지 않을까”라고 걱정했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박근혜정권이 막 출범한 지난해 봄에도 금리인하 요구가 노골적이었다. 한은 금통위는 당시 4월에 버티고 5월에서야 내렸는데 후일 한 금통위원은 “한 번은 내려야 한다는 공감이 있었으나 4월엔 한은 독립성을 위해 버티고 지나갔다”고 말했다.

정책조율은 필요하다. 한은법은 중립성과 함께 ‘통화신용정책은 물가안정을 저해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정부의 경제정책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제4조)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조율이 아니라 압력인데,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권력과 정부가 한은을 흔들기 시작하면 통화정책의 신뢰가 무너지고 정책실패로 이어져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한 금통위원은 “지금 무조건 금리를 내려야 한다거나 절대 내리면 안 된다고 말하는 이들 모두 통화정책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변수들을 고민하고 검토하는 금통위의 의사결정 과정을 존중하는 풍토가 아쉽다”고 지적했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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