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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사랑한다는 말, 눈감을 때 하지 말고 평소에 자주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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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주 웰다잉 칼럼니스트 ‘이별 서약’ 펴내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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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주 웰다잉 칼럼니스트는 “환자를 앞에 두고도 얼굴 한 번 쳐다보지 않고 상처 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의사가 많다. 이런 의료문화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평소에는 전혀 표현하지 않던 무뚝뚝한 환자가 죽음을 앞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사랑한다’고 말해요. 가장 중요한 순간에 하고 싶은 말이 ‘사랑’이라는 말인데 왜 우리는 평소에 말하지 못하는 건지….”

2012년 8월부터 12월까지 ‘최철주의 삶과 죽음 이야기’를 본보에 연재했던 최철주 웰다잉 칼럼니스트(72)가 당시 연재물과 함께 유명인들의 마지막을 취재해 함께 실은 ‘이별 서약’이란 책을 펴냈다. 책에는 평생 노자와 장자를 연구한 철학자 최진석 서강대 교수가 말기 암으로 고통받는 모친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느낀 고통이 담겨 있고 고 최인호 작가와 가장 가까웠던 친구(정준명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의 입을 통해 듣는 고인의 마지막 투병 모습도 담겨 있다.

“최인호 작가는 2007년 암이 발견된 이후 점점 사람과 만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서는 자주 눈물도 흘렸습니다. 병원 복도에서 만난 환자들을 보면서 칼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을 느껴 울면서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고도 하는군요.”

고인의 글 욕심은 육체적 쇠약과는 반대로 더 커져갔다고 한다. 손톱이 빠진 손가락에 골무를 끼고 썼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진 사실. 고인이 가톨릭 서울주보에 쓴 글에도 이런 작가의 마음이 잘 담겨 있다. ‘아이고 어머니, 엄마. 저 글 쓰게 해주세요. 앙앙앙앙. 아드님 예수께 인호가 글 쫌 쓰게 해달라고 알려주세요. 엄마 오마니! 때가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아드님은 오마니의 부탁을 거절하지는 못하실 것입니다. 저를 포도주로 만들게 해주세요.’

한편 최진석 서강대 교수와의 인터뷰를 적은 대목에는 평생 삶과 죽음의 문제를 파고든 철학자가 막상 모친의 투병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당혹감과 고통이 담겨 있다. 책에 소개된 최 교수의 말이다. “다른 사람이 죽는 걸 보는 것과 내 어머니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다르더군요. 죽음이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일이고 우주 변화의 섭리라고 이해하지만 죽음이란 어떤 형식이 되었든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나는 죽음이 단절이 아니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치지만 나한테는 단절이라는 느낌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저자가 죽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암으로 딸과 아내를 모두 잃고 나면서부터다. 병원에서 매일매일 환자들을 접하면서 ‘사람답게, 존엄하게 죽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인 문제를 탐색하게 됐다.

병으로 가족을 떠나보내는 것도 안타깝지만 최근 우리 사회는 자살률이 높다. 높은 자살률에 대해 묻자 그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얼마 전 차를 운전하고 산길을 가는데, 쓰러질 듯 걸어가는 젊은 여자가 보였다는 것. 옷차림이나 근처에 화장터가 있는 것으로 짐작하건대 소중한 사람을 잃고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듯했다.

“너무나 위태로워 보여서 차에 태워 버스 정류장까지라도 데려다 줄까 고민했어요. 결국 한참을 고민했지만 말을 걸지 못하고 돌아왔지요. 집에 와서도 계속 후회스러워 며느리에게 ‘만약 그 아가씨라면 내 차를 탔겠느냐’고 묻자 며느리는 ‘절대 안 타죠!’라고 하더군요.”

그는 “세상이 흉흉하다 보니 다른 사람 일에 끼어들지 않는 게 당연시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소외된 사람들이 점점 더 소외되고 죽음을 택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나”라고 되물었다.

“죽음이 ‘한(恨)’이 아니라 행복한 이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라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존엄한 죽음에 대해 본인 스스로가 공부하고, 알아야 합니다. 저녁식사를 가족이 함께 할 때 가볍게 시사 이야기 꺼내듯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세요. 어색할 것 같다고요? 죽음을 정확히 알아야 지금 숨쉬고 있는 1분, 1초의 소중함을 더 절실히 느낍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손가인 인턴기자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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