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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요즘 공무원 보고서 함량 미달인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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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보고서'에 대한 보고서]길바닥위 세종 공무원들의 '질' 떨어지는 보고서]

머니투데이

# 산업통상자원부 A과장은 지난달 B사무관이 올린 정책 보고서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정책의 핵심내용이 엉터리인데다, 추진계획도 뒤죽박죽이었다. 심지어 가장 정확해야할 예산 관련 숫자마저 틀리는 등 곳곳에서 오탈자가 눈에 띄었다.

A과장은 B사무관을 불러놓고 잘못된 점을 지적하다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한 게 올 들어 3~4번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사무관이 과장으로부터 보고서 작성 요령을 배우고 '데스킹'을 받을 기회가 없으니 보고서가 제대로 나올 리가 없었다.

공무원들의 보고서가 망가지고 있다.

특히 세종시로 대부분의 정부부처가 이전하면서 잦은 출장으로 사무실을 비우고 길거리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공무원들이 늘어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보도자료도 마찬가지다. 함량미달 보도자료가 쏟아진다.

반면 '구두 보고' 능력은 예전보다 향상(?)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서로 얼굴을 볼 수 없는 탓에 전화 통화를 그만큼 많이 하다 보니 짧고 간략하게, 핵심만 말하는 능력이 생겼다는 거다.

A과장은 "기업 간담회와 국회의원실 방문, 세미나 등 서울 일정이 많다보니 주중에 세종청사에 머무는 날이 드물었다"며 "과천에 있을땐 사무관들을 옆에 앉혀놓고 이런 저런 업무 이야기도 하면서 함께 일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세종=뉴스1) 장수영 기자 29일 정부세종청사 하늘에 먹구름이 뒤덮혀 있다.<br><br>지난 16일 전남 진도해상에서 발생한 세월호 참사의 사고 수습 장기화와 늘어나는 희생자로 정부의 무능력함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14.4.29/뉴스1


25일 기획재정부와 산업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예전엔 과장급 혹은 고참 서기관들이 사무관들에게 업무 관련 조언을 수시로 했지만, 부처들이 세종에 내려오고 나선 공무원들끼리 서로 얼굴 볼 시간이 없어 이른바 '페이퍼 어드바이스'(보고서 작성요령)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제부처 C실장은 "대통령 업무보고에 들어가는 대책 관련 보고서에 적힌 수치가 이상해서 자세히 살펴보니, 전체 12자리 숫자 중에서 절반인 6자리 숫자가 틀렸다"며 "실·국장들을 비롯해 과장급 이상은 거의 서울에 있고, 서기관 이하 사무관들은 세종에 있다보니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그런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반면 '구두 보고' 능력은 예전보다 향상(?)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서로 얼굴을 볼 수 없는 탓에 전화 통화를 그만큼 많이 하다보니 짧고 간략하게, 핵심만 말하는 능력이 생겼다는거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장·차관과 실·국장들이 서울로 출장을 많이 가다보니 웬만한 보고는 전화로 하는 경우가 많다"며 "서로 바쁘기때문에 1분 내외로 핵심 사항만 추려서 보고하고, 지시하는게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의 이면엔 직원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탓도 있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 출퇴근 하는 직원들이 많다보니 부서 회식은 언감생신 꿈도 못꾼다. 부서원들 집이 서울, 경기, 대전 등 곳곳으로 나뉘다보니 회식은 주로 점심에 하는데 출장자가 많아 이마저도 쉽지 않다.

서로 얼굴도 보고 술잔을 기울이면서 속내를 터놓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다보니 사무실 분위기가 예전보다 삭막해졌다는 지적이다. 오후 6시가 가까워지면 여기저기서 통근 버스 시간에 맞춰 퇴근 준비에 바쁘다보니, 업무상 대화는 단절되기 쉽상이다.

산업부 고위관계자는 "부서원들과 편안한 자리에서 얘기를 하고 싶어서 저녁 회식을 잡으려고 봤더니 20여명 중에 참석 가능한 사람이 고작 7명 뿐이었다"며 "과천에 있을땐 직원들과 수시로 만나고, 정책 관련 토론도 많이 했지만 여기선 여건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부처는 장관들이 직접 나서 공무원들의 서울행을 막는다. 윤상직 산업부 장관을 비롯해 일부 장관들은 가급적 매주 일요일 저녁에 세종에 내려와 월요일과 화요일 업무를 세종청사에서 처리한다. 실·국장들에게도 간담회나 회의 일정은 가급적 세종에서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간부들이 자리를 지키며, 허술해진 조직 분위기를 잡으란 의미다.

정부 관계자는 "장·차관들이 직원들의 세종청사 정착을 위해 각종 회의 일정을 세종에서 잡는 경우가 많다"며 "공무원들의 서울 출장이 줄어들고 이러한 분위기가 잡히면 지금보다 업무 효율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정진우기자 econph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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