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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토목은 금녀의 영역?…"사막에서도 해냈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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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다비로 간 삼성물산 女 신입사원 4인방…"후배들, 무조건 와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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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임지숙(25), 임인아(27), 임서희(27), 한은솔(25) 사원. /사진제공=삼성물산


비 내리는 날에도 한낮 최고기온이 30도를 웃도는 한여름 무더위가 이어진다. 이 시간 중동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는 최저기온 30도, 최고기온 40도를 웃돈다. 여름에 한창 더울 때는 50도에 육박한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나는 곳이다.

1년여 전 아부다비 사막 건설현장에 20대 중반의 여성 신입사원 4인방이 안전모를 쓰고 나타났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에 갓 들어온 임서희(27)·임인아(27)·임지숙(25)·한은솔(25) 사원이다.

이들의 주요 역할은 시원한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는 일이 아니다. 지하 30m의 깊은 곳 하수터널 현장에서 공사진행을 확인, 필요한 자재들을 파악해 조달하고 발주처의 요구사항을 해결해주는 일이다.

여성이라서 불편한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토목이란 분야가 금녀의 영역이란 인식이 강했던 만큼 여성을 위한 편익시설은 거의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불편한 것은 화장실. 한은솔 사원은 "터널에 들어가서는 최소한의 물만 마신다"며 "독해져야 한다"고 털어놨다.

언어의 장벽도 크다.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적지 않았건만 한국인의 영어와 인도인의 영어, 폴란드인의 영어는 달라도 너무 달라서다. 임서희 사원은 "글로벌 현장이다보니 인종이 상당히 다양한데 특히 발음문제가 답답했다"며 "현장에 온 첫날 폴란드인이 친절하게 2시간 넘게 업무를 설명해줬는데 그 2시간이 살아오면서 가장 긴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한은솔 사원도 "같은 영어단어인데도 영국인이 쓰는 말이나 필리핀, 인도인들이 쓰는 말의 뜻이 달라 당황한 적이 있다"며 "좋은 의미인 줄 알고 썼는데 아닌 경우가 있어 지금은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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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주처 직원과 현장 업무 협의를 하고 있는 임지숙, 임서희, 임인아 사원(왼쪽부터). /사진제공=삼성물산


초기 현지에서의 외로움은 뼈에 사무칠 정도. '시집은 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임인아 사원과 임서희 사원은 해외현장 적응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 '외로움'을 꼽았다. 하지만 현장에 있는 또래 직원들끼리 더욱 돈독해지는 계기도 됐다.

이곳에서 특이한 경험으로 '라마단' 기간(올해는 6월29일~7월27일)을 빼놓을 수 없다. 이슬람교도들은 라마단 기간에 해가 떠있는 낮시간에는 음식과 물을 먹지 않는다.

한은솔 사원이 처음 현장에 왔을 때 이 라마단 기간과 겹치면서 현장 적응 신고식을 독하게 치렀다. 주위 무슬림직원들을 배려하느라 한낮 50도 넘는 폭염 속에서도 물을 마시지 못했다. 아침과 점심은 자동 금식, 저녁에는 폭풍흡입하는 생활이 한 달간 이어졌다.

현장 적응 초기엔 이렇게 좌충우돌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1년여 만에 이들의 생각과 일처리 속도는 훌쩍 성장했다. 동기나 후배들에게 현장근무를 적극 권할 정도다. 임서희 사원은 "1년간 낯선 중동땅과 외국인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찾았다"며 "'어디에서든 나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사람을 대하는 자세도 바뀌었다. 한은솔 사원은 "이곳 사람들은 어느 순간 사라져 찾아보면 기도하고 있는가 하면 라마단 기간에는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해서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나라 문화를 존중하게 됐는데 그러다보니 서로 존중해주면서 업무효율도 높아지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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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업무를 시작하기 전, 현장 근로자들과 아침 안전조회를 하고 있는 임지숙 사원(왼쪽 두번째). /사진제공=삼성물산


임지숙 사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임지숙 사원은 "하루는 급한 자재가 있어서 기다리고 있는데 오기로 한 시간이 넘어도 안와서 재촉했더니 운전기사가 무슬림인데 기도를 하고 오느라 늦었다고 했다"며 "'처음엔 급해죽겠는데'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곳 문화며 종교적 신념이니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빨리 귀국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임서희 사원은 "적어도 3~4년 정도는 생활해야 그 나라에서 살아봤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곳 문화나 사람들에 대해 아직 모르는 것이 많은데 더 머무를 수 있다면 중동에 더 있고 싶다"고 했다.

임인아 사원도 "앞으로 1~2년 정도 더 해외현장에서 배우고 경험을 쌓고 싶다"며 "일적으로 힘에 부치는 점 말고는 해외생활이 잘 맞는 것같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해외생활의 장점 중 하나는 국내보다 많은 월급"이라며 "덕분에 인생의 첫 (중고)차를 마련해 여행을 하면서 점점 더 스스로를 단단하고 강인한 사람으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귀띔했다.

임서희 사원은 아부다비로 와보고 싶다는 동기와 후배들에게 "무조건 와보라"고 추천했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에 도전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다.

한은솔 사원은 "해외 현장에 나온 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선택이었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을 때마다 준비가 덜 됐단 생각에 슬럼프도 있었지만 그만큼 더 성장할 수 있었다"며 활짝 웃었다.

이들은 꿈도 야무지다. 임서희 사원은 삼성물산의 첫 여성소장이 되겠다고 밝혔다. 임인아 사원은 엔지니어를 꿈꾸는 여성 후배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는 길을 터주는 선배가 되고 싶단다. 한은솔 사원은 최고의 지하토목 전문가가 되는 게 목표다. 임지숙 사원은 최고의 엔지니어이자 사랑스런 아내가 되고 싶다고 답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게 많아서인지 이들은 먹고 싶은 것도 많다. 귀국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을 묻자 여성 신입사원 4인방이 일제히 먹거리를 꼽았다. 임서희 사원은 가족과 막창먹기, 임인아 사원은 한강에서 돗자리펴고 치킨먹기, 한은솔 사원은 엄마가 해주신 밥먹기, 임지숙 사원은 동기들과 새벽에 감자탕 먹기.

김유경기자 yu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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