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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푸틴 돈줄에 묶인 EU… 네덜란드도 제재 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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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機 피격 배후' 러 제재 수위 놓고 엇갈린 유럽]

네덜란드, 러 투자자산 9조원

佛은 1조원대 군함 수출 계약

英, 2000억원 무기수출 진행

여객기 피격 이후에도… 러, 친러 반군에 무기 공급

말레이시아항공 17편 피격 사건의 배후로 서방국가들이 러시아를 지목했지만, 나라마다 이해관계가 엇갈려 대(對)러 제재에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EU) 국가들 사이에선 제재 수위를 놓고 감정 섞인 비난까지 나왔다. 러시아와 경제적으로 밀착해있는 나라가 많기 때문이다.

우선 영국과 프랑스가 설전을 벌이고 있다. 먼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미스트랄급 상륙함 2척을 러시아에 12억유로(약 1조7000억원)에 수출하는 계약을 진행 중인 프랑스에 대해 "우리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21일 비판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22일 "위약금만 11억유로(1조5000억원)"라며 강행의지를 밝혔다. 영국도 러시아를 상대로 헬기와 통신장비, 저격수용 소총 등 1억3200만파운드(약 2300억원)의 무기수출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23일 하원 보고서를 통해 알려지면서 "캐머런은 위선자"라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도 러시아에 대한 광범위한 경제제재와 무기 금수 조치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21일 "각국 지도자의 자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독일 기업 6200개가 러시아에서 진행 중인 투자액이 200억유로(약 28조원)에 이르고, 일자리 약 30만개가 러시아와의 교역에 달렸다"고 보도했다. 현실적으로 제재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자국민 193명이 희생된 네덜란드조차 러시아와의 관계 설정을 고민 중이다. 네덜란드 최대기업인 에너지회사 로열더치셸이 시베리아 유전을 포함해 러시아에서 보유한 자산만 67억달러(약 9조원)에 달한다. 러시아를 제재하면 자국 기업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러시아 방송 RT는 "러시아와 EU의 교역 규모가 3300억달러(약 340조원)로 미국의 10배나 되기 때문에 EU의 러시아 제재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혼선을 틈타 푸틴은 '마이 웨이'다. 시신 수습과 블랙박스 회수에 협조해 비난 여론을 가라앉힌 뒤, 우크라이나 동부에 대한 영향력은 계속 유지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푸틴은 "이번 참사를 이기적인 정치 목적 달성을 위해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자국이 제공한 무기로 우크라이나 친러 반군이 여객기를 격추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이들에게 무기를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 정보기관 관계자를 인용해 "여객기 피격 이후에도 탱크와 로켓 발사기 등이 러시아에서 반군에 전달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

유럽이 갈래갈래 찢기는데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격추 사건 이후 세 차례 성명을 내고, 외국 정상들과 연쇄 전화통화를 가졌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오는 11월 미 중간선거를 앞두고 서부에서 열리는 자금모금 행사에 참석하는 오바마의 행보에 대해서는 EU 동맹국들조차 냉소적이다.

하지만 백악관 측은 오바마의 '로 키(low key)' 전략은 EU가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하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한다. '로 키 행보'란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현안을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유럽이 자발적으로 러시아 제재 조치에 나서는 방안을 미국이 내심 바란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럽과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 제재가 불가능하다는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워싱턴=윤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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