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유병언 사망 / 미스터리 풀리나] 뒷문으로 도망친 兪씨, 밤새 풀숲·水路·산길 헤맨 듯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추정 도주로 따라가보니

24일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의 행적이 마지막으로 확인된 전남 순천시 별장 '숲속의 추억'을 다시 찾았다. 별장 안팎에는 빈 플라스틱 생수통이 여러 개 흩어져 있었다. 유씨에게 많은 양의 생수가 필요했던 모양이라고 추정할 만한 '정황 증거'였다.

하지만 지난달 12일 이곳에서 2.5㎞ 떨어진 학구 삼거리 인근 매실밭에서 유씨 시신이 발견됐을 때, 그의 곁에는 물통 대신 오래된 막걸리병 하나와 소주병 2개가 있었다. 막걸리는 최근에 사서 마셨다고 보기엔 유통기한이 많이 지났고, 소주 한병은 2003년 단종된 제품이었다. 수사당국은 유씨가 도주 당시 주변에 널려 있는 물통을 챙겨가지 못한 채 급박하게 나갔다가 물통용으로 병을 모은 것 같다고 추정한다.

조선일보

검찰은 5월 25일 밤 11시 30분쯤 별장 압수 수색을 마쳤다고 밝혔다. 이보다 앞서 별장에서 500여m 떨어진 송치재 휴게소에서 유씨의 측근들이 검거됐다. 따라서 유씨가 별장 정문으로 나와 휴게소 쪽으로 걸어가기보다는 뒷문으로 나와 풀숲을 헤치면서 도망쳤을 것이라는 게 유력한 가설이다. 실제 유씨 별장 뒷문에서부터 풀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10여분 정도 걸어 올라가자, 폭 1.5m가량의 평평한 수로(水路)가 나왔다. 또 수로를 따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자 17번 국도 아래로 난 샛길이 등장했다. 이 길을 이용하면 멀리 산을 타고 돌아가거나 1.2m 높이의 중앙분리대를 넘는 수고를 하지 않더라도 쉽게 국도를 건널 수 있다.

유씨는 길 건너편에서 방향을 정반대로 틀어 학구 삼거리 쪽으로 향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바로 앞을 가로막은 산은 정면으로 넘어가기엔 몹시 가파르고 산책로도 나 있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고령인 유씨가 혼자서 가파른 산을 기어올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아예 멀리 돌아갔거나, 도로 쪽에 바짝 붙어 이동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송치재 휴게소(하행)에서부터 시신이 발견된 매실밭까지는 비교적 이동이 쉬운 편이었다. 17번 국도 옆쪽에는 과거에 사용했던 폭 2m 정도의 길이 있는데, 국도보다 약간 아래쪽에 있는 데다가 나무에 가려져 있었다. 또 이 부근 산에는 완만한 농로(農路)·산책로가 많았다. 이를 이용하면 경찰 검문소가 있었던 학구 삼거리까지 가더라도 경찰과 마주치지 않고 길을 건널 수 있다.

본지 기자가 걸어가 본 유씨의 예상 도주로 곳곳에선 온종일 경찰들이 막대기 등으로 풀숲을 헤치며 유씨의 '흔적'을 정밀하게 수색하고 있었다. 이 중 한 무리가 24일 별장에서 1㎞, 매실밭에서 1.5㎞ 정도 떨어진 풀숲에서 검은색 뿔테 안경 하나를 발견했다. 다만 경찰은 "안경 상태가 매우 깨끗한 데다가, 돋보기가 아닌 난시 시력보정용 안경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순천=조홍복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