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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유병언 사망 / 檢警 부실 수사] 매실밭서 스쿠알렌 먹는 노숙자?… 기본도 관심도 없었던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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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사체 처리, 최소한의 의심도 않고 "노숙자 시체"

검찰, 별장 수색을 압수수색하듯… '비밀 방' 놓쳐

전문가들 "그냥 하던대로… 매너리즘 빠져 헛발질"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의 은신처 수색 과정과 은신처 인근 밭에서 발견된 변사체 처리 과정에서 검찰과 경찰이 잇따라 헛발질을 한 사실이 알려지자, 검경이 타성에 젖어 수사의 기본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 5월 25일 유씨가 은신 중이던 순천 별장을 2시간 동안 수색하고도, 당시 유씨가 통나무 벽으로 위장된 비밀 방에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한 달 동안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또 이 별장 인근에서 변사체가 발견됐는데도 경찰과 검찰은 "노숙자로 보인다"는 이유로 건성건성 의례적인 조치만 취해 40일간 수사력을 낭비했다. 고검장 출신의 변호사는 "수사의 기본은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인데, 이번 사건에선 여러 단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의심하지 않고 넘어갔다"며 "기본을 지키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최소한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숨을 공간, 의심 한 번만 했더라도

검찰은 5월 25일 순천 '숲속의 추억' 별장에 유씨가 은신해 있다는 측근들 진술에 따라 압수 수색 영장을 서둘러 발부받아 밤 9시 30분부터 1시간 50분 정도 별장을 뒤졌지만 위장된 공간이 있을 것이란 의심은 전혀 하지 못했다. 한 경찰 고위 간부는 "땅을 파고 숨었거나, 다락방·벽장 등 보이지 않는 곳이 있는지 철저하게 살폈어야 하는데 의심을 전혀 안 한 것 같다"며 "검찰이 평소 하는 압수 수색은 증거를 주로 찾는 일이라 범인 잡는 수색과는 좀 다르고, 불러서 조사하는 '앉은뱅이 수사'에만 익숙하기 때문에 경찰이 함께 갔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강력 수사 경력 10년차 한 형사도 "수사를 하다 보면 에어컨 뒤에 문이 있는 경우, 변기를 통째로 들면 아래에 공간이 있는 경우도 있다"며 "이런 숨은 공간을 꼭 염두에 두었어야 하는데, 당시 현장팀이 경험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전직 검찰 간부는 "유병언 은신처로 출동할 때도 경찰에 지원을 요청해 별장 주변을 에워싸고, 밤새 현장을 지켰어야 한다"고 말했다.

변사체, 경찰은 대충 보고, 검사는 건성 지휘

6월 12일 순천 매실밭 주인 박모(77)씨로부터 변사체 발견 신고가 들어오자, 순천 경찰은 "신원 불상, 사인 미상"으로 보고하면서 그의 소지품과 특징으로 "스쿠알렌 빈 병, 콩 10알, 겨울 점퍼, 금니 10개, 반듯하게 누워 있음" 등을 적었다. 흰색 운동화는 발 주변에 벗겨져 있었지만, '흰색 운동화 착용'이라고 사실과 다르게 '대충' 적었다. 천 가방에 쓰여진 '꿈같은 사랑'이라는 문구나 점퍼 브랜드 같은 건 눈여겨보지도 않았다. "시신 부패가 심해 신원 확인이 안 되니, 변사자 수배하고 신원 확인 안 되면 행려병자로 처리하겠다"고 덧붙였다.

시신에서 떨어진 흰 머리카락과 뼛조각은 현장에서 수거도 안 되고 40일 넘게 방치됐다. 경찰은 변사 사건을 약식처리하는 관행대로 팩스로 자료를 검사에게 넘겼는데, 검사는 이 때문에 시신 사진을 흑백으로만 볼 수 있었다. 검사는 '스쿠알렌' '금니 10개' 등의 단서가 있었지만, 유병언이라는 의심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스쿠알렌은 세모그룹 계열사가 판매하는 대표 상품이다. 검사는 의례적으로 신원 확인과 사인 규명을 하라며 부검을 지시했을 뿐,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 전직 검찰 고위 간부는 "노숙자 변사는 도시에나 있는 것이고, 스쿠알렌을 먹는 노숙자는 더구나 없다"며 "유병언 사건이 없었어도 단순 변사보다는 타살 가능성을 의심했어야 하고, 유병언 도피 장소 바로 근처라면 검사가 경찰이 올린 변사 보고서에 그냥 사인을 해서는 안 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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