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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늘어나는 유통업체 PB…깊어가는 제조업체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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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대형마트 3사 PB상품 1만여개

전체 매출의 25% 비중 차지

저가·프리미엄 등 골고루 갖춰

제조업체에는 ‘계륵’과도 같아

안하자니 시장 점유율 깎이고

하자니 단가 낮아 이익 줄고

“연구개발역량·기획력도 지원을”


“제조업체에 유통업체 자체 상표(PB) 상품 제조는 ‘계륵’ 같은 존재예요. 안 하자니 다른 업체가 해서 시장을 차지하고, 하자니 낮은 단가 탓에 자사 상표(NB) 상품보다 적은 이익을 감수해야 하죠.”

대형마트·편의점 등 유통업체들이 자체 상표 상품 비중을 점차 확대하고 있어 제조업체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매대에‘자사 제조 상품’은 늘어나면서도‘자사 브랜드 제품’은 줄어드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까닭이다.

24일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현재 대형마트 3사의 자체 상표 상품수는 1만2000~1만8000여개에 이른다. 매출 비중은 전체의 25%에 달한다. 식품·생활용품 등 각 분야에서 저가형·프리미엄 제품군을 고루 갖추며 외형을 정비하고 성장하고 있다. 편의점의 경우 상품 종류는 500여개 정도로 마트보다 적지만,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마트와 비슷하다. 세븐일레븐의 경우는 자체 상표 제품의 매출 비중이 30%를 넘는다.

유통업체에 자체 상표 확대는 중요한 성장전략이다. 경기 불황에 영업 규제·출점 제한 등으로 외형을 키우며 자체적으로 성장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업체간 ‘고객 끌어오기’ 경쟁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우리 점포에만 있는’ 자체 상표 상품은 유통업체의 수익성을 높이고‘충성 고객’을 유치하는 주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유통업체들은 자체 상표 상품이 제조업체와 소비자에게도 득이 된다고 주장한다. 신규·중소 제조업체에게는 시장 진출 기회를 주고, 기존 업체들에게는 신규 투자 없이 판로가 확보된 상태에서 안정적으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에게는 좋은 품질의 물건을 더 싸게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돼 이득이라는 논리다. 이마트는 “제조업체 상품과 유통업체 상품이 경쟁하며 시장 전체적으로 가격이 합리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조업체들은 유통업체 상표 확대가‘썩 달갑진 않지만 제조업체가 나서서 막을 힘은 없다고 말한다. 제조업체들은 중소 규모 업체에 시장 진출의 기회가 된다는 점은 인정한다. 기술력은 있지만 마케팅 비용이 없어 시장 진출을 못하던 분야를 유통사가 함께 개척할 경우 ‘좋은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가를 낮춰 잘 나가는 상품과 비슷한 상품’을 만들도록 주문하는 현재의 방식은 “업체 수익에도 산업 발전에도 도움이 안된다”고 입을 모은다. 수익성이 떨어질뿐만 아니라 단가가 정해진 탓에 같은 재료를 쓰더라도 자사 제품보다 더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 생활용품 업체 관계자는 “유통업체 상표 주방세제를 제조한 적이 있는데, 비슷한 품질의 다른 업체들이 돌아가면서‘행사’를 하니 그 제품들이 더 쌌다. 결국 출시 1년도 안 돼 단종이 됐고 재고가 쌓여 유통사와 우리회사 모두에 부담이 됐다”고 말했다.

유통업체 상표 제품을 제조하고 있는 업체들은 유통사가 제조사의‘연구개발역량’과‘기획력’도 끌어내야 좋은 상품이 나올 것이라고 제언한다. 중소 생활용품 업체 관계자는 “유통사에서 기존 방식과는 달리 제조사 마진을 일정 정도 보장해주고 ‘어느 정도 수준까지 품질을 끌어올릴 수 있겠냐’고 열린 제안을 한 경우가 있었다. 여러 시험을 거쳐 자사 제품군 중 가장 고급품과 동일한 품질의 상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장 점유율이 높은 제조업체들은 유통업체 상표 제품 제조 참가에“브랜드 깎아먹는 일”이라며 여전히 회의적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유통업체 상표 상품이 60~70%에 이르면 상위 몇몇 제조업체만 살아남고 나머지 업체는 유통사의 주문자상품부착생산업체(OEM)로 전락할 가능성마저 있다”고 말했다. 그는“유통업체가 자사 상품으로 매대를 채울 경우 저가를 유지할 이유도 사라지지 않겠냐”며 물가 안정 논리에도 의문을 표시했다. 이런 업체들은 유통업체의 자체 상표 싱품 확대 대응책으로“마케팅과 연구·개발을 통해 자사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을 꼽는다.

김효진 기자 ju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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