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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일·가정 병행하라더니…시간선택제 ‘눈칫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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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신한은행 ‘시간제 텔러’ 근무 들여다보니

낮12시~오후4시반 근무 말로만

전일제 직원 자리에 대체투입

눈치보여 칼퇴근 못하기 일쑤

연장근무 해도 시간외수당 없어

복지도 절반…승진기간은 2배

“어느정도 일하다 나가라는 소리”


최근 신한은행에 ‘시간선택제 텔러’로 채용된 ㄱ씨는 오후 4시50분이 되면 울리도록 알람을 맞춰놨다. 지점장 등에게 퇴근 시각의 ‘마지노선’이 됐다는 걸 인지시키기 위해서다. ‘경력단절 여성’(경단녀)이 일과 아이 돌보기를 동시에 할 수 있게 낮 12시~오후 4시30분까지 근무한다기에 지원했지만 4시30분 ‘칼퇴근’은 커녕 5시를 넘기기 일쑤여서 고민하다 내놓은 대안이었다.

ㄱ씨는 “유치원생 아이를 맞이하려면 5시 반까지는 집에 도착해야 하는데 계속 늦춰지다보니 매일 쩔쩔매다 은행 유니폼 입은 채로 달려가고 있다”면서 “일반 직원들이 ‘우리 중에 칼퇴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말하는데, 눈 딱 감고 나오면서도 눈치가 너무 보인다”고 말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의 재취업 대안으로 제시되며, 은행권에서 앞다퉈 채용에 나서고 있지만, 애초 내세운 계획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뒤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주요 고용정책 가운데 하나로 추진하며, “여성들이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통해서 가정을 잘 돌보면서도 일을 하며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었다. 신한은행이 지난 3월 220명을 처음 채용했을 때, 경쟁률이 100대1에 이를 정도로 ‘경단녀’들의 호응이 뜨거웠다.

가장 큰 갈등은 애초 선택한대로 근무 시간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출산 뒤 은행을 그만둔 ㄱ씨는 주부로 지내다 ‘12시~4시30분 근무’ 공고를 보고 퇴근 뒤 아이 마중이 가능하겠다 싶어 지원했다. 그는 “그런데 손님이 다 나가도 은행 마감 업무가 있어서, 혼자만 나오는 게 쉽지가 않다. 기존 직원들은 ‘유치원에 돈 좀 더 주고 애 오는 시간을 좀 늦추라’고 하는데 그럴거면 왜 시간선택제로 일을 구했겠냐”고 말했다. 그는 “정규직이라고 알고 들어왔는데 정확히는 무기계약직이었으며, (규정)시간 외로 일해도 추가 수당을 받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처음 계획과 달리 기존 전일제 직원의 대체자로 시간선택제 직원이 투입된 곳들이 있어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애초 은행은 업무량이 집중되는 시간대, 바쁜 지점에 ‘추가 배치’를 목적으로 내세웠는데, ㄱ씨를 비롯해 전일제 직원 자리를 메운 경우가 적잖았다.

40대 ㄴ씨도 그랬다. 그는 “막상 가보니 바쁜 시간대에 ‘추가’된 게 아니라 전일제 텔러분이 다른데로 가고 대신 온거더라. 본점에서 보기에 고객수가 적다고 봐서 그리 조치했는지 모르겠는데 기존 직원들은 반쪽자리인 제가 와서 업무만 늘었다며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은행 쪽은 애초 ‘기존 전일제 직원과 동등한 수준의 복리후생 적용’이라고 홍보했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차별’이 존재한다. 신한은행은 시간선택제 텔러에 대해 자녀 학자금 등 복지 비용을 ‘절반’만 지급한다. 승진하는데는 전일제 텔러의 2배인 14년이 걸린다. 노동조합 가입 대상도 아니다.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고 다른 직장에 전일로 근무하다 은행 공고를 본 뒤 시간선택제로 옮긴 ㄷ씨는 “14년 있어야 승진이 된다는 건 창구업무 어느 정도 하다 나가라는 소리”라고 말했다. 그의 이달 급여 통장엔 세금과 연금 등을 제외하고 실수령액으로 92만원이 찍혔다고 한다.

ㄹ씨는 “200만원대 월급의 전일제로 일하다 육아와 병행을 못한 나쁜 엄마를 더는 하기 싫어 시간선택제로 이직했다”며 “은행 마감 업무하기, 직원별 실적내기 등 의무에서는 정규직으로 여겨지면서 급여, 복지 등은 다른 직군으로 차별받는데다가, 근무시간이 정확하고 짧다는 시간선택제의 이점도 살리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쪽은 “기존 직원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시간에 비례해 복지는 절반, 승진 연도는 두배를 적용하고 있으며 이는 정부의 시간선택제 고용자들도 마찬가지다. 연봉은 1800만원 수준이다”고 말했다. 현재 신한은행을 비롯해 아이비케이(IBK)기업은행, 우리은행 등이 시간선택제로 경력단절 여성을 채용하고 있으며 향후 채용을 늘려갈 예정이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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