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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지진·아들의 자살 겪었지만… 비극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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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것' 펴낸 在日학자 강상중… 행복·삶 근본을 생각하게 하는 비극

세월호 사건으로 喪中인 한국도 사회 제도 등 정비하는 계기 삼아야

"고도성장이 끝나고 저출산·고령화가 진행되는 사회에서는 변화에 마음 설레는 일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시대에 사고나 재난으로 갑자기 죽음이 찾아오면 떠들썩함은 숨을 죽이고 숙연하게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행복이나 삶의 방식을 근본부터 돌이켜본다. 지금 한국이 그런 시기 아닌가?"

재일교포 정치학자 강상중(64) 일본 세이가쿠인(聖學院)대학 학장은 이메일 인터뷰에서 "세월호 사건은 국가적 재난이자 국민적 재난"이라며 이렇게 반문했다. 그는 곧 국내에 출간될 에세이 '사랑할 것'(이경덕 옮김, 지식의숲)에서 '일본인은 3·11 대지진을 기점으로 과거와 다른 삶을 살고 있고, 개인과 사회의 관계도 변하고 있다'고 썼다. 책에 실린 글을 쓰는 동안 강 교수에게도 비극이 덮쳤다. 아들이 정신질환을 앓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땅이 꺼지는 상실감 속에서 그는 "비극이 희극보다 위대하다"고 했다.

―왜 비극이 희극보다 위대한가?

"쓸데없는 잡담이나 억지스러운 이론, 거창한 말을 모두 봉쇄하기 때문이다. 시대의 병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 홀연히 삶을 죽음으로 만들 때 우리는 그저 침묵하고 옷깃을 여밀 수밖에 없다. 일본을 덮친 비극과 나를 덮친 비극 속에서 사회가 새롭게 태어나기를 꿈꿨다."

―세월호 사건으로 한국은 상중(喪中)이다.

"한국은 IMF 위기 때 광복 이후 처음으로 성장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다. 하지만 곧 V자 회복을 이루고 글로벌화를 진행시켰다. 국가와 국민 모두 효율과 경쟁, 이익을 추구했다. 그 사이 높은 자살률을 기록했고 이혼율도 급증했다. 재난이 알게 모르게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세월호 비극은 그것이 극적으로 드러난 결과다."

―한국 사회에 큰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남겼다.

"젊은이들이 산 채로 '수장'되었다고 생각하면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편으로 한국 사회는 젊은이의 자살, 노인의 고독사(孤獨死)에 익숙해져 그저 무의미한 숫자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았나 묻고 싶다. 세월호 참사는 그런 수많은 비극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력감과 불신을 어떻게 극복하나?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 이후 그 비극을 극복하고 빨리 부흥을 이뤄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일본은 지금 어떤가? 비극을 활용하지 못한 채 재난이 일어나기 전보다 더 고압적인 정치가 횡행하고, 원인을 찾아 해결하기보다는 빨리 잊고 마구잡이로 성장을 추구하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장치나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결정하며 군사 대국화에 나서고 있다.

"일본은 군사적·정치적으로는 '소국', 경제적으로는 '대국'이 되어 번영을 구가했다. 하지만 한·중의 급격한 대두, 미국의 패권 쇠퇴, 일본의 경제 답보가 가중되면서 입장을 바꿨다. 아베 내각이 정치나 안전 보장 측면에서도 '대국'을 지향하면 일본과 한국·중국의 거리는 점점 멀어질 것이다."

―한국도 격차 사회라서 당신이 말한 '르상티망(복수심)'이 커지고 있다. '용서할 수 없어'라는 감정, 깊은 고독감과 타인에 대한 불신은 어떻게 풀어야 하나?

"행복감과 충족감이 없기 때문에 남과 비교하며 자기의 처지를 확인할 수밖에 없는 사회가 지닌 비극이다. 두터운 중산층이 한국 사회의 주류가 될 수 있는 사회로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이 모래알처럼 고립되고 수평적인 네트워크가 사라지면 르상티망과 불신의 노예가 된다."

일본 잡지 '아에라'에 연재했던 칼럼을 바탕으로 엮은 책이다. 스마트폰 사용이 부른 거리감, 구직 못지않은 결혼 활동 등 다양한 고민이 담겨 있다. '고민하는 힘'의 저자인 강 교수는 '재일 한국인은 이국에서 차별받는 것보다 본국의 분단이 더 굴욕적'이라고 썼다. "남북통일이 된다면 '야생의 왕국' 비무장지대를 오토바이 타고 남에서 북으로 가로지를 것이다. 아들의 유해 일부를 비무장지대에 뿌리겠다. 아들도 하나 된 한반도를 보고 싶어했다."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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