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8 (목)

추한 꼼수, 아파트를 울리다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김정덕 기자]
CBSi-더스쿠프

집이 사람들의 마음을 찢어놓고 있다. 어떤 이들은 집이 없어서, 어떤 이들은 집을 임대했다는 이유로, 어떤 이들은 집을 비싸게 사서 눈물을 흘린다. 언제까지 집 때문에 울어야 할까. 집이 문제일까. 아니다. 전문가들은 "건설사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1980년대 아파트가 많이 지어질 당시, 신문과 방송에는 가끔 이런 뉴스가 등장했다. '옆집에 살아도 몇년째 얼굴도 모르고 지내기 때문에 사람이 죽어도 시체가 썩어 냄새가 나기 전에는 알지도 못한다'는 거였다. 이렇게 아파트는 도심의 삭막함을 대변하곤 했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일부 아파트 주민은 다양한 커뮤니티를 통해 '부대끼며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냈지만 대다수 아파트는 그렇지 않다. 아파트는 여전히 삭막한 공간이고 입주민의 불화는 끊이지 않는다. 문제는 그 원인제공자가 건설업체라는 점이다.

문제 1 : 주민 잡는 할인분양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 입주민의 얘기를 들어보자. "내가 산 가격보다 훨씬 싸게, 그것도 산 지 몇달 지나지도 않았는데 할인분양으로 들어오면 기분이 좋을 리 있겠나. 전체 집값이 떨어지는 건 물론이고, 나만 손해를 봤다는 상실감도 크다." 그는 불과 몇달 전 5억원대에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하지만 건설사의 할인분양으로 가격이 4억원 초반대까지 떨어졌다. 그가 울분을 터뜨리는 이유다. "아파트 가격은 최소 수억원에 이르기 때문에 2000만~3000만원 하는 자동차 가격을 몇백만원씩 할인해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자연스레 집값이 떨어졌다면 이해하겠지만 건설사의 인위적인 조치로 몇달 새 분양가가 억대 이상 떨어진 건 명백한 사기 분양이다." 이 아파트 입주민들은 현재 의견을 모아 건설사의 할인분양을 반대하는 시위를 준비 중이다.

CBSi-더스쿠프

올해 6월 인천 영종도 H아파트에서는 한 입주자 대표가 할인분양 반대 시위를 하는 도중에 숨지는 사고까지 벌어졌다. 기존 입주자들이 건설사를 상대로 할인분양으로 인한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이 시위를 막기 위해 경찰이 투입됐다. 경찰이 들이닥치자 입주자 대표가 몸에 시너를 끼얹으며 경찰 진입을 저지하려 했다. 하지만 경찰은 전후 사정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진압에 몰두했다. 그 과정에서 입주자 대표의 손에 있던 라이터가 켜졌고, 몸에 불이 붙어 죽음에까지 이른 것이었다.

기존 분양 입주자들로선 할인분양 받은 이들이 미울 수밖에 없다. 때문에 각종 차별은 물론 왕따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의 한 아파트에 할인분양 혜택을 본 입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6억원대의 아파트를 30% 정도 할인받아 입주했다. 기존 주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걸 온몸으로 느낀다. 입주 후 석달이 지나도록 주민회의조차 참석하지 못했다. 불러주질 않아서다. 얼마 전 각 동마다 음식물쓰레기처리기계를 들여놨는데, 이런 일을 주민회의도 없이 그냥 진행했겠나. 어떻게 알았는지 차를 긁어 놓은 일도 있다. CCTV가 없는 사각지대에는 차를 세워 놓기도 불안하다. '할인분양 입주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는 것 같다. 다시 이사를 하려 해도 대출까지 받아 어렵게 마련한 집이라 딱히 방법도 없다."

할인분양을 받은 이들의 사정은 딱하지만, 제값에 분양을 받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하다. 한편에선 "자신이 투자한 집의 가격이 떨어졌다고 정부나 건설사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고 주장하지만 할인분양의 경우 가격이 떨어질 주식을 산 후 손해를 보전해 달라며 떼를 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현행 주택건설 방식 때문이다. 최근 건설사의 분양 방식은 예전처럼 집을 다 지어놓고 분양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일단 땅을 사놓고, 어떤 집을 지을지 정해서 모델하우스를 만든다. 그 모델하우스를 기초로 먼저 분양을 한다. 분양을 통해 일정한 돈이 모이면 건설사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으로 끌어들인 돈을 합쳐 집을 짓는다. 대부분의 주택건설이 이렇게 이뤄진다. 간단히 말하면 선분양을 받은 입주자들의 돈으로 집을 짓는다는 얘기다. 할인분양 입주자들이 선분양 입주자들의 돈으로 혜택을 본 셈이다. 선분양 입주자를 마냥 '잇속 챙기기에 혈안이 된 사람들'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할인분양자 왕따, 기존 주민 탓일까

그렇다면 건설사의 할인분양을 놔 둬도 괜찮은 걸까. 여기서 비롯되는 입주민의 갈등도 덮어둬야 하는 걸까.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근본적인 문제는 건설사에 있기 때문에 건설사가 바뀌어야 한다"며 말을 이었다. "건설사들은 큰돈이 없기 때문에 선분양 후시공은 어쩔 수 없다. 더구나 선시공 후분양은 건설사들의 부실화를 부를 수도 있다. 문제는 하청에 다시 하청을 주는 현행 구조에서는 건설비용과 아파트 가격에 거품이 낄 수밖에 없다는 거다. 건설사들이 쓸데없이 몸집을 불려 고정비용도 많이 나간다. 이 사업 저 사업 다 손을 대다보니 관리도 제대로 못한다. 1970~1980년대 건설사가 성장할 수 있었던 건 건설경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직접 시공과 철저한 관리가 뒷받침돼서다. 건설사가 귀찮은 걸 하지 않고 돈만 벌겠다는 심사을 버려야 한다."

할인분양의 원인부터 제거해야 한다는 얘기다. 건설사가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건전한 시공을 하면 적절한 가격이 형성된다. 그 결과, 전체 주택가격은 하락하겠지만 시장에는 신뢰가 생겨 가격이 안정화된다. 거품이 빠지면 더 이상 주택은 재테크 수단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 주택시장엔 실수요자만 남고, 건설사는 그 수요에 맞게 집을 지으면 된다. 할인분양을 할 이유가 사라지는 셈이다. 물론 건설사들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건설사 측은 "건설경기가 좋지 않으니 일부 손해를 보는 할인분양이라도 하지 않으면 막대한 이자비용 등을 감당할 수가 없다"며 "건설사의 할인분양에 법적인 하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손해를 보는 할인분양'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거의 없다.

CBSi-더스쿠프

건설사 관계자에 따르면 건설사들은 지난해 할인분양을 통해 미분양 물량을 대거 해소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미분양은 크게 줄어들었다. 할인분양을 하는 대형 건설사들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을 보면 지난해 1분기에 비해 적자폭이 줄거나(GS건설) 비슷(현대건설)했다. 영업이익이 2배가량 늘어난 곳(삼성물산)도 있다. '영업손실을 보고 있다'는 주장이 볼멘소리에 불과하다는 거다. 특히 일부 건설사는 할인분양 등 계약조건 변경시 기존 계약자에게도 혜택을 소급적용하는 분양가 안심보장제를 실시하고 있다. 할인분양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면 이런 정책이 가능할리 없다. 건설시장의 투명성이 할인분양을 뿌리뽑을 수 있다는 거다.

문제 2 : 임대 입주자 차별

주민간 불화의 원인은 할인분양만이 아니다. 분양 입주자들과 임대 입주자들 간에도 불화가 끊이질 않는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주상복합 아파트 메세나폴리스(GS 자이) 전체 3동 중 한동에만 임대 입주민 전용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다. 이 동의 특정층(4 ~10층)에만 임대 입주민들이 살기 때문인데, 분양 입주민들이 이들과 섞이는 걸 싫어해 건설사가 엘리베이터를 따로 설치했다. 게다가 분양 입주민들은 임대 입주민들이 헬스장, 카페, 게스트룸 등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없도록 막아 놨다.

이 아파트에 임대해 있는 한 주민은 "사실 엘리베이터를 따로 이용하기 때문에 부딪힐 일이 없으니 직접적인 차별은 못 느낀다"며 "하지만 뭔가를 결정할 때는 철저하게 배제되고, 같은 건물에 있는 편의시설들을 이용할 수 없다는 건 억울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입주한 이후 주민회의를 한다는 소식조차 접해본 일이 없다. 크기에 따라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고급아파트에 임대 입주민이 함께 들어가게 된 건 '소형주택 의무비율제도' 때문이다. 주택재개발 사업을 할 때 의무적으로 60㎡(약 18평) 이하의 소형주택을 함께 짓도록 한 제도다. 소형주택 공급 비중 확대를 위해 1978년 도입됐다가 건설경기와 재건축사업 경기에 따라 폐지와 부활을 반복하다 2009년 최종 부활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의무적으로 임대 주택을 짓도록 해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을 돕겠다는 게 이 제도의 취지다. 이른바 '소셜믹스'다.

문제는 대부분의 건설사들이 임대 주택을 단지나 동으로 떼 내거나 일부 층에 몰아넣는 방식으로 짓는다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분양이 더딜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임대 주택을 어떻게 지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이 없어서다. 애초부터 차별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고급 브랜드 아파트의 경우 이런 차별은 더 심각하다. 일부 고급 아파트에선 다 같이 쓰는 지하주차장까지도 분양 입주자들이 특정 지역을 정해 놓고 임대 입주자들은 그곳에만 주차를 하라고 강요하기도 한다. 때문에 한동안 임대 입주자들은 "우리 수준에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게 더 낫다"며 소셜믹스 정책에 반발했다. 임대 물량이 분양 물량에 비해 잘 소진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임대주택 건설 가이드라인 필요

공공주택을 짓는 LH공사와 SH공사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SH공사의 한 관계자는 "어느 지구라고 할 것도 없이 거의 모든 아파트가 임대 물량은 단지나 동을 달리해 별도로 짓는다"며 말을 이었다. "사실 임대 주택은 저소득층이 주로 들어오고, 이에 따라 주택 가격이 영향을 받는다. 어떤 분양 입주자들이 가격이 떨어지는 걸 좋아하겠나. 갈등이 생긴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분양 물량을 털어내려면 어쩔 수 없다." 아파트 입주민들 사이에서 '분양과 임대'라는 갈등의 중심에는 여지없이 '건설사의 이익 추구'가 끼어들어가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런 아파트들은 주민협의회도 분양과 임대가 별도로 구분돼 있다.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이 재건축 심의 과정에서 실질적인 '소셜믹스'를 도입하도록 유도하겠다고 강조한 것은 이 때문이다. 임대 주택의 구조와 마감재를 분양과 차별화되지 않도록 하고, 임대 물량이 있는 곳을 단지 내 최적의 입지에 두도록 했다. 더 중요한 건 임대 물량을 별도로 구분 짓지 않고 한 동에 뒤섞이도록 한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소셜믹스가 진행된 몇몇 아파트에서는 임대 입주자들이 대거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분양과 임대 입주민들 사이의 갈등을 쭉 지켜본 한 공인중개업자는 "가령 하자보수 하나만 놓고도 입장 차이가 분명하다"며 "임대 입주민은 하자보수에만 신경을 써 이를 공론화하려 하겠지만, 분양 입주민은 집값을 고려해 일부러 조용히 일을 마무리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간단한 문제 하나에서도 분양과 임대의 입장차가 있어 주민협의회 과정에서 다 드러나지 않겠냐는 거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일단은 차별이 뻔히 드러나도록 특정한 동에 임대 물량을 짓지 못하도록 건설사를 강제할 만한 제도가 필요하다"며 "뉴욕 맨해튼에서도 주택의 20%를 서민용 임대아파트로 짓도록 하고 있지만, 누가 임대로 들어왔는지 알 수 있게 지으면 건설사가 법적으로 처벌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또 "제대로 된 소셜믹스는 차별을 막는 최적의 시스템이고, 실제 분양과 임대가 섞여 있는 은평뉴타운의 경우 만족도가 꽤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며 "운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세심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CBSi-더스쿠프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