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선박왕의 후손, 중일전쟁 때 일제에 뺏긴 선박 값 77년 만에 돌려받아

선박왕으로 불리던 천순퉁/중국 신민망

1937년 중·일 전쟁 당시 일본 해운사에 기선 2척을 빌려줬다 돌려받지 못한 중국 선박왕의 후손이 무려 77년 만에 일본 측으로부터 400억여원의 배상금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4일 보도했다.

중·일 전쟁 직전인 1936년, ‘선박왕’으로 불리던 천순퉁(陳順通)이 이끄는 중국 최대 선박회사 중웨이(中威)는 일본 다이도(大同)해운에 1년 기한으로 2척의 기선을 빌려줬다. 6000톤급의 순펑(順?)호와 5000톤급의 신타이핑(新太平)호였다. 하지만 이듬해 중·일 전쟁이 발발하면서 이 두 척의 배는 종적이 묘연해졌다. 중웨이는 1년 임대 기한이 만료된 뒤에도 배를 돌려받지 못했다.

이후 천순퉁이 백방으로 알아본 결과, 두 기선은 중·일 전쟁 과정에서 일본 해군에 압수됐고, 다이도해운이 다시 일본 해군으로부터 임대를 받아 운항하다 모두 침몰한 것으로 밝혀졌다. 천순퉁은 전 재산 같은 두 척의 배를 잃고 시름하다 1949년 상하이에서 병사했다.

그러나 천씨 가문은 포기하지 않았다. 천순퉁의 아들인 천차췬(陳洽群)은 홍콩으로 이주한 뒤, 부친의 유훈에 따라 1964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도쿄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다이도해운이 빌려간 두 기선이 일본 해군에 압수됐다는 점을 근거로, 일본정부에 배상을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도쿄지방법원은 1974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기한이 끝났다(시효 소멸)”는 이유로 천씨 일가의 청구를 기각했다.

바오산스틸 이모션호/미쓰이상선 홈페이지

천씨 일가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1988년 이번에는 다이도해운을 인수한 일본 나빅스(Navix)해운을 상대로 상하이 해사법원에 소송을 냈다. 이 소송은 지난 2007년까지 20년에 걸쳐 진행됐다. 소송 자격 등의 문제로 법정 개정과 심리 중단을 거듭했다. 그 사이 소송을 낸 천차췬이 사망하고, 그의 아들이자 천순퉁의 손자인 천윈(陳雲)과 천춘(陳春)이 소송을 맡게됐다. 피고 측도 나빅스해운이 미쓰이그룹에 인수되면서 이 그룹 계열사인 미쓰이OSK로 바뀌었다. 상하이해사법원은 2007년12월 긴 심리 끝에 미쓰이OSK가 원고인 천씨 일가에 29억엔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미쓰이는 항소했지만 중국 최고인민법원은 2010년 피고 측의 청구를 기각하고 원심을 최종 확정했다.

천씨 일가는 중국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긴 했지만, 이번엔 판결을 집행해 돈을 받는 문제가 남았다. 일본 정부는 1972년 중일공동성명 당시 중국 측이 모든 전쟁 배상 요구를 포기하기로 한 것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배상금 지급에 반대 입장을 보였다. 반면, 중국 측은 “전쟁 배상 문제가 아니라 개인 간 민사 소송”이라는 점을 들어 배상을 촉구했다. 미쓰이 측은 일본 정부의 강한 반대 입장 표명에 배상금 지급을 계속 미뤘다. 이 사건이 선례가 돼 민사소송 형태의 손해 배상 청구가 잇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배상금 지급을 둘러싼 양측 간 협상이 지지부진한 채 결렬되자 상하이 해사법원은 지난 19일 실력 행사에 들어갔다. 중국 국영 철강회사인 바오산스틸의 철강제품을 운송하기 위해 저장(浙江)성 주산(舟山)시 마지산(馬迹山)항에 정박 중인 미쓰이OSK의 22만6434톤급 화물선 ‘바오산스틸 이모션호’를 압류한 것이다. 미쓰이OSK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24일 중국 법원에 40억엔(약 405억원)의 공탁금을 납부했다. 법원과 계속 맞서다 자칫 중국 사업에 지장이 생길 것을 우려해 배상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40억엔에는 배상금 29억엔과 그동안의 지연 이자 등이 포함됐다고 SCMP는 전했다.

그러나 미쓰이 측은 배상금 지급 여부에 대한 확인을 거부했다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김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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