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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임종률의 스포츠레터]LG 김기태-맨유 감독 사퇴, 그 슬픈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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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

'자진 사퇴와 경질' 지난 23일 대구 삼성 원정을 끝으로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 김기태 LG 감독(오른쪽)과 22일 경질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자료사진=LG, 맨유 트위터)


김기태 LG 감독이 3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LG는 23일 삼성과 대구 원정에 불참한 김 감독이 자진 사퇴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국내외 스포츠계는 어제, 그제 굵직한 감독 사퇴 소식이 들렸습니다. 김 감독의 사퇴 하루 전 세계 최고 인기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을 경질했습니다. 그날은 K리그 성남 박종환 감독의 자진 사퇴도 있었습니다.

잔인한 4월이 스포츠계에도 찾아들었다는 생각 한편으로 김기태 감독과 모예스 감독 사이에는 무언가 연결 고리가 있으면서도 분명한 차이점이 느껴지더군요. (박 감독의 사퇴는 성격이 달라 논외로 하겠습니다.)

일단 두 감독의 사퇴 배경에는 팀 성적 부진이 깔려 있습니다. LG는 올 시즌 6연패와 4연패를 포함해 4승1무13패, 최하위에 처져 있습니다. 맨유는 프리미어리그 7위로 우승은 물론 올 시즌 8강에서 탈락한 유럽 챔피언스리그의 다음 시즌 출전도 좌절됐습니다. FA컵과 리그컵도 조기에 접었습니다.

▲김기태 감독 사퇴, 타 구단 팬들도 반대

하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차이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팬들이 원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겁니다.

LG 트윈스 홈페이지는 "납치를 해서라도 감독님 다시 모셔오세요" "이렇게는 못 보내, 제발 잡아주세요" 의 글과 구단 프런트에 대한 성토가 도배하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의 댓글과 야구 관련 사이트 게시판에는 잠실 라이벌 두산 팬들까지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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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습 다시 볼 수 있을까요' 김기태 감독은 더그아웃에서 항상 밝은 표정으로 선수단 분위기를 이끌었다.(자료사진=LG 트윈스)


지난 2011시즌 뒤 부임한 김 감독은 숱한 시련을 겪어왔습니다. 2012시즌을 앞두고 박현준, 김성현 등 선발 자원들이 승부 조작으로 영구 제명된 데다 포수 조인성(SK), 외야수 이택근, 불펜 송신영(이상 넥센) 등이 FA(자유계약선수)로 이적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LG는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전력에도 정규리그 2위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선수들도 잘 했지만 LG가 11년 만의 가을야구를 하게 된 데는 선수단을 똘똘 뭉치게 한 김 감독의 세심한 '형님 리더십'이 깔려 있었습니다. 팬들이 한 목소리로 김 감독의 사퇴를 반대하는 이유입니다.

반면 모예스 감독의 사퇴는 팬들이 원했던 바였습니다. 첫 시즌부터 전임 사령탑인 전설의 명장 알렉스 퍼거슨 감독만큼은 바라지 않았지만 기대에 너무나 못 미쳤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지역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 팬들은 제발 모예스 감독이 남아 있어 달라는 응원까지 펼쳤습니다. 인터넷에는 모예스 감독의 사퇴로 기뻐하는 맨유 팬들과 울거나 낙담해하는 첼시, 리버풀, 아스널 등 라이벌 팀 팬들의 대조적인 사진이 돌고 있습니다.

▲LG-맨유, 구단 지원 천양지차

구단의 지원도 차이가 적지 않았습니다. 김 감독의 미비한 구단의 도움에도 선수단을 이끌어왔다면 모예스 감독은 상대적으로 풍족한 서포트를 받으면서도 성적을 내지 못했습니다.

LG는 지난 시즌 뒤 이렇다 할 전력 보강이 없었습니다. 역대 최고액이 경신됐던 FA 시장에서 LG는 잠잠했습니다. 오히려 이대형을 KIA에 내줬습니다. 특히 에이스 리즈를 대체할 만한 외국인 선수를 찾지 못했습니다. 리즈가 급작스럽게 메이저리그행을 택하기도 했지만 소극적인 구단 투자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LG의 올 시즌 부진은 연패 스토퍼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로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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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감독으로서 마지막 악수' 김기태 감독(왼쪽)은 23일 대구 삼성 원정에 불참한 뒤 경기 후 구단의 자진 사퇴 발표가 나왔다. 사진은 22일 경기 전 류중일 삼성 감독과 악수를 나누는 모습.(자료사진=삼성 라이온즈)


사실 LG는 지난 2012시즌 뒤 엄격한 그룹 감사가 이뤄져 전폭적인 지원은 사실상 어려웠다는 게 야구계의 중론입니다. 10년 동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던 흑역사에 대해 강도높은 감사가 진행돼 구단 프런트에도 대대적인 개편이 있었습니다.

지원은 부족했지만 김 감독에 대한 간섭은 여전했다는 지적은 되새겨볼 만합니다. 구단이 현장의 요구에 귀를 닫고 있다가 선수 영입의 적기를 놓치거나 선수 운용에 입김을 넣었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특히 지난해 팀 평균자책점 1위(3.72)를 이끈 차명석 투수코치의 재계약 불발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반면 모예스 감독은 지난해 5월 6년의 파격적인 계약 기간을 보장받았습니다. 코치진 구성에서도 퍼거슨 감독의 만류에도 이전 코치들을 배제하고 자신이 원하는 인물들로 채웠습니다. 여기에 시즌 전 2750만 파운드(약 479억 원)에 미루앙 펠라이니를 데려왔고, 시즌 중에는 맨유 역대 최고 이적료인 3710만 파운드(약 649억원)에 후안 마타를 첼시에서 영입했습니다. 그럼에도 한 시즌도 못 돼 등 떠밀려 맨유를 떠나게 된 겁니다.

선수단 구성과 전력도 차이는 있었네요. LG는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10년 동안 하위권에 머물렀고, 맨유는 최근 21시즌 동안 13번의 리그 우승과 5번의 준우승 등 단 한번도 3위 밖으로 물러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랬기에 모예스 감독의 경질이 설득력을 얻는 겁니다. 반면 LG는 최하위권이 낯설지는 않았는데...그 책임을 왜 김 감독만 져야 하는 걸까요?

p.s-김기태 감독과는 개인적으로 지난 시즌 초반 잠실구장에서 첫 인사를 나눴던 때가 기억이 납니다. 당시 3년 만에 야구 담당으로 복귀한 제 명함을 받고 김 감독은 "아! 임 기자, 전부터 기사 잘 보고 있었습니다"고 말하더군요. 예전 야구 담당일 때, 김 감독의 코치 시절 서로 안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인사는 처음이었을 텐데요. 당시 취재진 등 주위 사람들에게 제 면을 세워준 김 감독의 배려, 그때도 따뜻하게 와닿았지만 지금은 마음 한 구석에서 조금은 쓰라리게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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