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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스테이크 썰다 ‘관세’ 불거질라… ‘미슐랭 별 셋’ 스시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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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오바마 스시집 초대 속사정

[동아일보]
동아일보

23일 오후 8시경 일본 도쿄(東京)의 번화가 긴자(銀座). 일본 경찰들이 친 바리케이드 너머에서 갑자기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이날 일본을 국빈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만찬을 하기 위해 차량에서 내려 손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들어간 곳은 빌딩 지하 1층에 있는 초밥집 ‘스키야바시 지로’. 기다리고 있던 아베 총리와 악수를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신조”라며 아베 총리의 이름을 불렀고, 아베 총리는 “How are you(안녕하세요)”라고 영어로 답했다. 이날 만찬은 오후 8시 반부터 10시경까지 약 1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아베 총리는 오바마 대통령과 사적인 친밀감을 쌓으려 공동의 취미인 골프 이야기부터 꺼낸 뒤 중국의 패권 확대 및 미일 동맹 강화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스키야바시 지로는 세계적 레스토랑 평가전문매체인 미슐랭가이드로부터 최고 등급인 별 세 개를 7년 연속 받은 곳. 1인당 최하 3만 엔(약 30만4000원)부터 요리사의 선택에 맡기는 코스 요리를 제공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만찬 장소로 초밥집을 정한 것이 ‘식탁 외교’의 일환이라고 이날 전했다.

애초 일본 정부는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사전에 “고베(神戶)산 쇠고기를 먹고 싶다”고 말했던 점을 감안해 쇠고기 레스토랑을 검토했다. 하지만 미일 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논의 중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관세 인하가 껄끄러운 문제여서 쇠고기 메뉴를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일본 정부는 오바마 대통령이 초밥을 즐긴다는 정보를 입수해 곧바로 초밥집을 만찬장으로 결정했다.

정상회담장에서 때론 격론이 오가기도 하지만 초청국이 만찬장에서 따뜻한 배려를 보여주면 회담 분위기가 부드러워진다. 이른바 식탁 외교 효과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는 18년 만에 일본을 국빈방문한 자리에서도 일본은 교섭을 유리하게 이끌고자 식탁 외교에 중점을 뒀다.

지난해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아베 총리는 상대방에 대해 “곧바로 업무 이야기로 들어가는 타입”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점심식사 때는 농담도 하고 꽤 부드러운 면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는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을 식탁 외교로 사로잡은 적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어릴 때 모친과 일본 가마쿠라(鎌倉)를 방문했을 때 말차(末茶·가루차)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었다는 사실을 알고 만찬 디저트로 이 아이스크림을 대접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크게 감동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식탁 외교로 상대 정상을 사로잡는 데 능하다. 2011년 10월 이명박 전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청한 오바마 대통령은 워싱턴 인근 한식당 ‘우래옥’에서 불고기 만찬을 대접하며 파격 의전을 선보였다.

일본 외교사에서 널리 회자되는 식탁 외교 일화는 1991년 포울 쉴테르 덴마크 총리와 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 일본 총리의 만찬이다. 당시 메인 요리는 닭고기였지만 가이후 총리는 급히 돼지고기로 바꾸도록 지시했다. 덴마크 돼지고기의 대(對)일본 수출 점유율이 2위로 떨어지자 덴마크를 응원하기 위해 돼지고기로 바꾼 것이다. 쉴테르 총리는 일본의 배려에 감동했고 정상회담도 부드럽게 이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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