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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대형참사 막을 '안전白書' 펴보지도 않은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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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前 서해훼리호 사고 후 '구명장비 확인' 등 白書 작성…

세월호 때 아무것도 적용 안돼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대형 재난 예방과 사고 대응 과정에서 교과서 역할을 하는 '백서(白書)' 활용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비슷한 사고가 재발하고 수습 과정의 실책이 반복되는 이유가 과거의 실패에서 교훈을 못 얻고 있기 때문이다.

白書 안 따라 또'판박이 사고'

지난 1993년 292명이 사망한 서해훼리호 사고 수습이 끝난 뒤 전북도는 '위도 앞바다 서해훼리호'라는 제목의 백서를 냈다. 백서는 사고에 대해 '정부가 대형 사고 예방을 누차 강조했는데도 대책을 소홀히 해 유발된 인재(人災)'로 규정했다. 판박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구명 장비가 제 기능을 해야 한다' '승선자 명부를 철저하게 작성해야 한다'는 처방이 나왔다. 이후 21년 동안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 모두 '안전'을 강조해 왔지만 초보적인 수준의 안전 대책도 자리를 못 잡았고 결국 세월호 사고가 터졌다. 세월호의 경우 천막처럼 펼쳐져야 하는 구명보트 46개 중 제대로 펴진 건 1개뿐이었다. 승선 인원은 정부 발표 때마다 오락가락했다.

조선일보

사고 예방·대응을 위해 백서를 참고해 보려고 해도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예컨대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서 '사고 백서'를 검색어로 입력하면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 오염 사고 백서'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화재 사고 백서'가 뜨지만 모두 '온라인 미(未)제공' '내용에 따라 열람 제한'이라는 안내가 나온다. 백서를 아예 안 만드는 경우도 많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정으로 촛불 시위가 일어나 수개월 동안 무정부 상태에 가까운 상황이 지속됐지만 정부 차원에서 사태를 종합 분석한 백서는 여태 안 나왔다. 정부 관계자는 "백서를 제대로 만들면 책임 추궁의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공무원 입장에선 꺼리게 된다"고 했다.

영국 "백서, 안전에 대한 확신 줘야"

해양 대국 영국은 지난 1987년 193명이 사망한 여객선 헤럴드 오브 프리 엔터프라이즈호 사고 이후 백서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이 사고는 화물을 싣고 내리는 출입구가 열린 채 배가 출항해 발생한 전형적인 인재였다. 당시 백서는 사고 원인과 개선 대책을 밝힌 뒤 '국민에게 (안전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영국 정부는 모든 해난 사고 백서를 해난조사국(MAIB)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일본은 다른 나라 재난에 대한 백서까지 만든다. 지난 2003년 한국 대구지하철 방화 사건 후 전문가 17명에게 의뢰해 1년여 분석 끝에 백서를 냈다. 이를 토대로 도쿄도는 지하철 역사 내 화재 피난로를 양방향으로 만들고 승강장 매점 구조물까지 불연재(不燃材)로 바꾸게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2005년 1월 서울지하철 7호선 방화 사건 때까지 문제점을 제대로 개선하지 못했다.

[금원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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