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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눈썹 아래 점은요?" … 검시관은 가만히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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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끊는 울음 가득찬 팽목항

또 한 명의 아이가 실려왔다

엄마 아빠들 모두 달려왔다

부둣가엔 아이 명찰 단 부모들

"거기 있니 내 새끼, 얼마나 춥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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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바다 쪽에서 불었다. 바닷속에 갇힌 아이의 마지막 기별일까. 마흔 줄의 부모 여남은 사람이 전남 진도군 팽목항 부둣가에 쪼그리고 앉았다. 부모들은 바다를 바라보며 조그맣게 울었다. 보드라운 봄바람이 뺨을 어루만졌다.

“거기 있는 거니? 내 새끼…. 얼마나 추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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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체육관은 침묵의 바다다. 모니터만 주시하고 있다. 희망을 놓지 않은 채. 하지만 아직 구조소식은 없다. 23일 실종자 가족이 팽목항으로 옮겨진 희생자 신체 특징을 모니터로 본 뒤 뛰어나가고 있다. [박종근 기자]


한 엄마가 흐느꼈다. 나지막한 울음소리가 순식간에 커졌다. 쪼그려 앉은 부모들이 부둥켜안고 울었다. 목에 걸린, 아이 이름이 적힌 명찰이 팔랑거렸다. 명찰 뒤편에는 손바닥만 한 아이 사진도 있었다. 부모들이 흐느낄 때 사진 속 아이들이 함께 흔들렸다. 한 엄마는 아이 사진에 얼굴을 비비며 울었다. “OO아, 마지막이라도 좋으니 엄마가 딱 한 번만 안아보자. 응?”

23일 팽목항은 애끊는 소리로 가득 찼다. 시신이 차례차례 발견되면서 진도실내체육관에 있던 가족들이 팽목항으로 몰려왔다. 전날 이곳으로 건너온 가족들은 팽목항에 마련된 임시 숙소에서 밤을 새웠다.

밤사이에도 바다 쪽에선 고속정이 부지런히 시신을 실어왔다. 시신이 도착했다는 방송이 나오면 부모들은 우르르 가족지원상황실로 몰려갔다. 해경 직원이 시신의 특징을 설명하는 곳이었다. 아직 이름을 모르는 시신은 숫자로 불렸다.

“OOO번 시신입니다. 성별은 여자, 키는 1m60㎝가량, 오른쪽 귀에 검은색 귀고리….”

한 60대 여인이 풀썩 주저앉았다. “50번 넘게 신원확인소를 들락거렸는데 왜 우리 OO이만 없는 거야….” 실종된 한 여학생의 큰이모였다. 엄마·아빠는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해 옆 텐트에서 링거를 맞고 있었다.

시신의 특징을 적은 A4 용지를 붙여놓는 상황판은 이날 오전에 세 개에서 오후 들어 다섯 개로 늘었다. 때이른 죽음을 맞이한 학생들의 숫자가 그렇게 늘어갔다. 23일 기준으로 보호자를 찾지 못한 시신은 15구였다. 이 시신은 신원확인소 옆 간이영안실로 옮겨졌다. 부모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시신이 컨테이너 속 냉동장치에서 차갑게 얼어붙었다.

신원확인소에서 400m쯤 떨어진 상황실 앞에선 한 엄마와 중학생 딸이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 있었다. 모녀 앞에는 컵라면 하나가 놓였다. 딸은 후후 불며 라면을 먹었고, 엄마는 곁에서 물을 따라줬다.

“이 사진 좀 봐, 네 오빠 참 멋있다. 그치?”

“응, 이 라면 오빠가 진짜 좋아하는 건데….”

딸은 젓가락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근데 엄마, 오빠 정말 죽은 거야?” 스마트폰 위로 굵은 눈물이 떨어졌다.

오후 1시쯤 여학생 시신이 추가로 들어왔다. 가족대기소가 다시 웅성댔다. 부모들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바람에 잿빛 플라스틱 의자가 와르르 넘어졌다.

“검은색 티셔츠에 회색 운동화를 신었고요….”

검시관의 설명이 이어지자 한 엄마가 가만히 말을 막아섰다. 울음으로 축축해진 목소리였다.

“혹시 치아교정을 했나요? 눈썹 아래 점은요?”

검시관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팔을 늘어뜨리며 쓰러졌다. 곁에 있던 아빠가 겨우 붙잡았다. 아빠의 무릎도 후들거렸다.

23일 하루에만 오후 11시30분까지 38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상당수가 안산 단원고 학생이었다. 세월호 참사 사망자는 이제 159명이다. 생사조차 모르는 실종자가 143명이다.

신원확인소 출입구는 얇은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흰색 천 너머에는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시신으로 돌아온 아이들이 누워 있었다. 제 자식의 시신을 확인하려는 부모들이 천을 밀고 들어갔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는 듯 비통한 표정이었다.

신원확인소 안에서 부모들은 자식의 시신을 끌어안고 쩔쩔맸다. 밖으로 한 아빠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손이 왜 이렇게 찬 거야. 아빠 왔잖아. 응? 제발 대답 좀 해줘….”

확인소 앞을 지키는 20대 의무경찰이 손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신원확인소에선 20~30분 간격으로 통곡 소리가 들렸다.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곡소리였다. 부모들은 울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처럼 하염없이 울었다. 눈물은 그들의 호흡이었다.

4월의 부둣가에선 푸른 풀들이 솟아나고 있었다. 아이들 시신을 옮기는 다급한 발걸음이 그 풀들을 짓밟고 지나갔다.

글=정강현 기자, 진도=권철암·장혁진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정강현.권철암.장혁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박종근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jokepark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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