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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명퇴자 줄 잇는데 … '창업 빅3'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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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함정 많은 홀로서기

요식업·프랜차이즈 포화상태

적응 쉽다고 뛰어들면 필패

6개월 이상 꼼꼼한 조사 먼저

퇴직금 노리는 조언자 경계를

‘이 일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KT에서 사무직으로 21년을 근무한 김모(46)씨. 아내와 중학생·초등학생 두 자녀를 거느린 가장이다. 설마 했던 일이 그에게도 닥쳤다. 8320명이 신청한 명예퇴직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 것이다. “회사를 원망해봐야 뭐하겠습니까. 다만 아이들을 어떻게 잘 키울지가 가장 큰 고민이네요.” 명예퇴직 신청을 한 후 그는 부쩍 그간 무심하게 지나쳤던 동네 음식점과 커피전문점을 눈여겨보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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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처럼 예고 없이 직장을 나온 40~50대들은 막막하기만 하다. 조직 생활은 했지만 일일이 모든 사안과 맞부닥쳐야 하는 사회생활엔 익숙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순간의 판단으로 명퇴 자금을 날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노화봉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조사연구부장은 “IMF 외환위기 때도 그랬지만 명퇴 하는 이들은 대부분 가족의 부양과 학자금을 책임져야 할 연령대의 가장들인 것으로 파악된다”며 “현 상황에서는 요식업이나 커피전문점 등 상대적으로 쉬워 보이는 업종에 진출하는 이가 많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외환위기가 닥친 직후인 1998년 자영업자의 비중은 경제활동인구의 28.2%로 가장 높았다. 올 3월 현재는 22.3%로 낮아진 상황이다.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소장은 “수치가 낮아진 건 그만큼 망한 자영업자도 많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창업자가 손쉽게 문을 두드릴 수 있는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상황도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이미 포화상태인 데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규제 등으로 신규 출점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협회 임영태 사무국장은 “대규모 프랜차이즈들이 공격적으로 점포를 확대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고, 편의점도 포화상태”라고 말했다. 임 사무국장은 “그나마 검증된 대규모 프랜차이즈들이 일부 신규 브랜드를 내놓고 있으니 프랜차이즈를 하겠다면 이를 고려해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창업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들의 점포 확장 계획은 소규모다. 1800여 개 매장을 운영하는 BBQ와 1050개 가맹점이 있는 네네치킨은 점포 확대보다는 기존 가맹점주의 영업력을 높이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커피전문점은 물론 명퇴자들이 상대적으로 적응하기 쉬운 편의점 역시 2~3년 전에 비하면 확장세가 절반 수준으로 꺾였다.

그렇다고 퇴로가 완전히 막혔다고 생각할 일은 아니다. 본지가 중소기업청 산하 창업진흥원과 창업 컨설팅 업체 4곳, 성공한 창업자들에게 문의한 결과 철저한 시장 분석과 조급함을 없앤다면 창업자들이 성공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20년 동안 공무원으로 재직하다 2012년 퇴직한 조규진(48·크림생맥주전문점 운영)씨는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는지, 운영은 어렵지 않은지를 우선 고려했다”며 “업종을 정한 뒤에는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1년 동안 신문·인터넷은 물론 창업박람회 등 거의 모든 경로를 활용해 정보를 수집했다”고 말했다. 이인호 세종창업연구소 소장은 “프랜차이즈 브랜드로 창업할 때는 반드시 3개 이상의 가맹점을 살펴보라”고 권했다. 창업자에게 의무적으로 제공하는 정보공개서와 예상매출내역서를 살펴보는 것은 기본이고, 신메뉴 개발 등 시장변화에 따른 지속적인 연구개발 능력이 있는지도 살필 것을 주문했다. 강병오 FC창업코리아 대표는 “과당 경쟁 상태인 기존 업종 말고 새롭게 등장하는 창업방식도 참조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직접 운영하는 게 부담이 있다면 운영은 본사가 책임지고 수익을 투자액만큼 배당받는 형태의 창업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투자 대비 수익비율을 꼼꼼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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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명퇴자들의 퇴직금을 노리는 악덕 컨설턴트들에 대한 경각심이 중요하다. ▶사후 관리 없이 점포 소개 ▶개점 업무만 진행하는 경우 ▶사전에 확인한 매장과 다른 매장을 소개하는 경우 ▶컨설턴트의 나이가 지나치게 어린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한국창업경영연구소 이상헌 소장은 “컨설턴트들의 말만 믿지 말고 이전 동료나 지인들 중 직접 창업해본 이들의 조언을 반드시 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최근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개업한 이민화(48)씨는 “일부 컨설턴트는 투자자금에 대한 감가상각이나 빌린 돈에 대한 이자는 감안하지 않고 무조건 수익이 난다는 점만 강조하며 가맹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라고 권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고, 담배도 좋아하지 않다 보니 고깃집이나 시끄러운 음식점은 내 코드에 안 맞더라”며 “수익력이 좋고 유행한다고 해도 자신의 적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컨설팅은 공인된 기관일수록 좋다. 창업진흥원 성승호 시니어사업담당 팀장은 “사업 아이템 기획부터 세무·회계까지 철저하게 조언해줄 수 있는 검증된 기관이나 컨설팅업체에서 교육받으면서 최소한 6개월 이상 탄탄한 창업준비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병주·채윤경 기자

문병주.채윤경 기자 byungjoo@joongang.co.kr

▶문병주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byung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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