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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은행 `항아리형 구조` 방치…과장급 이상 직원 70% 넘는 곳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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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바일 뱅킹의 역습 (上) / 아날로그식 인력 운용 실태 ◆

매일경제

# B은행 본점의 한 경영지원 부서. 총 9명의 부서원 중 대리급 이하는 1명뿐이다. 부장을 포함해 차장, 과장급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로 인해 책임자급인 막내 과장이 허드렛일을 전담하고 있다. 이 부서 관계자는 "본점에는 특히 직급이 높은 인력이 많이 몰려 있다"며 "워낙 고참 인력이 많아서 은행에서 평생 일해도 지점장 발령도 못 받고 퇴직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 임금피크제를 신청하고 B은행에서 재직 중인 김상진 씨(가명). 은행 내부에서 영업자문역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지만 실제로 하는 업무는 제한적이다. 수십 년 동안 영업 현장에서 배운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답답할 뿐이다. 그는 "후배들도 같이 일하기가 불편한지 업무를 주지 않는 일이 많다"며"뒷방 늙은이로 취급받는다는 생각에 괴로울 뿐"이라고 밝혔다.

모바일뱅킹 확대로 은행 영업 구조는 최첨단으로 변하고 있지만 인력 구조는 여전히 아날로그 시대에 머물고 있다. 새로운 영업 환경에 맞는 '스마트'한 인적 구조조정이 절실한 시점이다.

은행권 정규직 인력 3명 중 1명은 부지점장급 이상 관리자로 인력 고령화는 심각한 수준에 달하고 있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오랜 기간 은행에서 근무한 이들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영업 지원에만 고급 인력들을 썩히고 있는 것이다. 신규 비즈니스 발굴이 미진하면서도 이들을 소화할 수 있는 자리 또한 부족한 실정이다.

국내 주요 은행들의 인력 구조는 전형적인 항아리형이다. 구조가 피라미드형이 아닌 항아리형이 되면서 직급이 올라갈수록 인사 적체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국민은행은 과장급 이상 책임자와 부지점장급 이상 관리자 비율이 전체 정규직 직원(2013년 6월 기준)의 71.4%에 달했다. 다른 은행 역시 이들 비중은 50~60% 수준이다.

연령별 인력 구조를 봐도 다른 금융권에 비해 은행권의 인력 고령화는 심각하다. 금융인력 기초 통계에 따르면 2006년 35.9%였던 40대 이상 인력 비중은 2013년에는 48.6%까지 높아졌다. 보험업계의 2013년 40대 이상 인력 비중은 35.9%였다. 증권ㆍ선물업계(37.0%), 자산운용업계(36.9%)도 상대적으로 고령 인력이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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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은행권에서 큰 폭의 인력 구조조정이 없었던 데다 다른 업종으로의 이직률도 높지 않았다. 은행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A씨는 "은행에 들어오면 마땅히 다른 업종의 일을 찾기가 쉽지 않다"며 "이러다가 갑자기 구조조정을 당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렇다고 인위적인 구조조정이 해법은 아니다. 고령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스마트'한 인사 시스템을 정착하는 것이 우선이다.

장민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령 인력이 많다고 해서 무조건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해답은 아니다"면서도 "이들을 영업 현장에서 적극 활용할 수 있는 기업 문화 조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점장 등 한정된 관리자 자리를 꿰차지 못한 고령 인력들은 그냥 '유휴 인력'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자문역, 심사역, 내부 모니터링 업무 등 조직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업무에서는 한발 떨어진 '한직'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들을 '뒷방'에만 방치해 둘 것이 아니라 이들의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전문성을 인정해주는 조직 문화가 정착될 필요가 있다. 이들이 지속적으로 전문성을 유지할 수 있는 조직 내 재교육 시스템의 정착도 중요하다. 고령화한 인력구조는 은행권의 '아킬레스건'이 아니라 '무기'가 될 수도 있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금융산업연구실장은 "인력 재배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용범 기자 / 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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