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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아이 손 감싼 어머니 손 … 자유를 향한 소리없는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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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출신 미술가·영화감독

쉬린 네샤트 서울서 회고전

중앙일보

쉬린 네샤트의 초기작 ‘알라의 여인들’ 시리즈 중 ‘유대감(Bonding, 1995)’. 흑백 사진 위에 세밀화 붓으로 이란 전통 무늬를 그려 넣었다. [사진 글래드스턴 갤러리]


#1. 아이의 손을 감싼 어머니의 손. 흑백 사진이 보여주는 바는 간결하다. 어머니의 손엔 이슬람 전통 문양이 문신처럼 가득하다. 아이의 손은 백지처럼 깨끗하다. 검은 베일, 전통 무늬, 모국어인 파르시어 문자는 이 사회의 구성원인 어머니를 옥죄는 사회적 관습의 상징이다. 아이는 아직 사회적 코드를 익히지 못한 순수한 존재다. 이란 대표 미술가 쉬린 네샤트(57)의 데뷔작 ‘알라의 여인’(1993∼97) 시리즈 중 ‘유대감(Bonding)’이다.

#2. 가수가 노래를 마치자 객석에서 박수갈채가 요란하다. 가수도 관객도 모두 남자들이다. 맞은편 화면에서 히잡을 쓴 여자가 노래하기 시작한다. 격렬하고 열정적인 노래가 텅 빈 객석을 향해 울린다. 이란에서는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여자들이 공개 석상에서 노래하는 걸 금지하고 있다. 남녀가 노래를 메기고 받는 ‘격동(Turbulent)’이라는 제목의 2채널 흑백영상으로 쉬린 네샤트는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서울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7월 13일까지 열리는 쉬린 네샤트 회고전에 나온 작품들이다. 2000년 광주비엔날레 대상, 2009년 영화 ‘여자들만의 세상’(2004∼2008)으로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 올해 다보스 세계 경제포럼 수정상 등을 수상한 이 작가의 20여년 여정을 돌아보는 자리다. 사진 54점, 영상 9점 등 출품작 63점엔 초기작 ‘알라의 여인’부터 근작 ‘열왕기’(2012)까지 대표작이 망라됐다.

네샤트는 17세에 혼자 미국으로 유학가 버클리 대학에서 회화와 미술이론을 공부했다. 뉴욕서 활동하는 그는 기자와의 화상 인터뷰를 통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전혀 다른 삶을 경험했다. 그 무렵 고국에선 혁명이 일어나 가족들과 10여년 간 만나지 못했다. 내 생애 가장 슬픈 기억”이라고 돌아봤다. 79년 혁명으로 이란에 이슬람 공화국이 수립됐다. 창작 활동에서 표현의 자유가 제한됐고, 여성은 히잡을 써야 하며, 공공 장소에서 노래할 수도 없는 등 많은 제약을 받았다. 80년 이라크의 침공으로 8년 전쟁이 시작되자 여성의 군복무가 독려됐다. 네샤트는 이어 “17년 만에 이란에 돌아가 그곳 여성들의 삶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가족들 또한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두 살배기 아들을 안고 온 내 모습에 놀랐다. 아이가 나의 변화를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흑백 사진 위에 세밀화 붓으로 파르시어 시구를 써내려간 사진 작품 등이 대표적이다. 두 세계 사이에서 겪은 정체성 혼란, 젠더와 권력, 전통과 현대 등 이질적 요소들이 뒤섞인 세계를 담았다. 이슬람 여성의 삶과 자유를 시적 은유, 서정적 영상미로 승화했다. 개인적 고뇌이자 특정 사회의 아픔을 인류 보편의 문제로 제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네샤트는 “예술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내 안의 불안·걱정·딜레마를 어떻게 표출할 수 있었을까”라며 “예술은 내 직업일 뿐 아니라 내 삶을 견딜 수 있게 해 준 구세주”라고 말했다.

서울관 단일관람권 4000원. 02-3701-9500.

권근영 기자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권근영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altx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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