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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송전탑이 짓밟은 ‘보통사람’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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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한 주를 여는 생각

밀양을 살다

밀양구술프로젝트 지음

오월의봄 펴냄


우린 또 하나의 실패 앞에 서 있다.

10년째 송전탑 건설 반대 싸움을 벌이고 있는 밀양에서도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 실현에 실패했다. 대추리와 강정마을에서 그랬듯, 국가는 국책사업이란 이름 아래 거짓말을 일삼고, 폭력을 행사했다. 주민들은 속절없이 당했다. 정치는 무능하고 무관심했다.

인권운동가, 르포작가, 전직 기자, 만화가 등이 지난해 12월 모여 지역 주민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밀양 화악산 자락 4개면에 살고 있는 주민 17명의 구술을 정리한 <밀양을 살다>는 그 결실이다.

야만의 폭력 앞에 노출되기 전까지 보통사람으로 살아온 주민들의 인생 이야기는, 이들이 신산한 세월을 뚫고 살아온 나의 어머니이자 아버지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기획자들은 “한분 한분의 역사를 사투리 그대로 옮겨 송전탑 투쟁 너머 삶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밀양의 싸움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송전탑 예정지 4곳에 30~40명의 주민들이 남아 저항하고 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밀양은 묻는다 “국가폭력을 언제까지 용인할 것인가”

보상을 원하는 게 아니다. 평화롭게 살던 곳에서 계속 살고 싶을 뿐이다. 국책사업으로 꼭 필요한 일이라면 민주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와 한전은 늘 거짓말하고 밀어붙이려고만 한다. 독재시대에 만든 악법을 고쳐야 한다. 우리도 언제든 희생양이 될 수 있다.

밀양은 할머니들의 절규로 기억된다. 송전탑 공사를 위한 벌목을 막기 위해 산을 기어오르는 노인들을 향해, 마치 개를 부르듯 “워리, 워리” 불렀다는 한전 용역들. “배가 몽탕몽탕”하고 “허벅다리가 우리 허리만” 한 그들 앞에서 존재가 무너지는 모욕감에 치를 떨어야 했던 노인들. 그들은 왜 그토록 처절하게 싸웠고, 무엇을 위해 지금도 싸우고 있나. 이 싸움은 무엇을 남길 것인가. 밀양 주민 17명의 말을 옮긴 책 <밀양을 살다>는 벌써 이 싸움을 잊은 것 같은 우리 사회에 도돌이표 같은 질문을 던진다. 처연한 노인들의 입말은 격동의 시대를 버텨온 지혜로 무자비한 권력을 꾸짖는다.

한국전쟁 때 보도연맹 사건으로 남편을 잃고, 나무 등짐을 팔아 아들 둘을 키워낸, 여든일곱의 김말해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이 골짜기(서) 커 갖고 이 골짜기서 늙었는데 6·25 전쟁 봤지. 오만 전쟁 다 봐도 이렇지는 안했다. 이건 전쟁이다. 이 전쟁이 제일 큰 전쟁이다. 내가 대가리 털 나고 처음 봤어. 일본시대 양식 없고 여기 와가 다 쪼아가고, 녹으로 다 쪼아가고 옷 없고 빨개벗고 댕기고 해도 이거 카믄. 대동아전쟁 때도 전쟁 나가 행여 포탄 떨어질까 그것만 걱정했지 이렇게는 안했다. 빨갱이 시대도 빨갱이들 밤에 와가 양식 달라 카고 밥 해달라 카고 그기고. 근데 이거는 밤낮도 없고, 시간도 없고. 이거 마 사람을 조지는 거지. 순사들이 지랄병 하는 거 보래이. 간이 바짝바짝 마른다. 못 본다 카이, 못 봐.” 이들은 자신의 땅에서 유배된 디아스포라다. 자연을 사랑한 삶도 민주주의도 거세되었다.

살농 정책에도 묵묵히
농토를 일구어온 주민들이
노년에 맞이한 이 폭력은
너무나 모멸적이었다
한전은 돈 몇백만원으로
주민들의 분열을 획책했다

어르신들의 생애와 소회의 기록은
법과 제도의 모순을 폭로하고
밀양의 진실을 밝히는 출발점이다


‘밀양전쟁’은 노인 두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치우와 유한숙. 산외면 보라마을 이장이었다가 얼마 전 해임당한 이종숙씨는 이치우 노인이 분신자살할 당시를 ‘수직의 불’로 기억한다. “이치우가 (분신을) 두 번 실패하고 들어갔는데 집에 들어가 옷 위에 잠바를 두 개 입고 기름을 말째로 부어 나왔어요. (…) 불이라는 건 수직 아닙니까. (…) 뜨거워 서니까 불꽃이 위로 올라가지. 전신이 기름옷 아닙니까. (…) 팔을 벌려 서 있으니 불이 넓어. ‘아아아…’ 소리 약간 나면서, 그게 다야. 자빠지는데 불은 안 자빠진다, 연해 수직이야. 아무리 꺼도 안 꺼져.” 이치우 노인은 이씨의 팔촌 조카뻘이다. 두 사람의 죽음에도 아랑곳없이 공사는 착착 진행된다.

교사직을 버리고 밀양에 투신한 이계삼 밀양765㎸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책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한다. “일생토록 국가가 시키는 대로 협조하였고, 수십 년 이래 일관되었던 폐농, 살농 정책에도 묵묵히 농토를 일구며 삶의 자리를 지켜온 주민들이 노년에 맞이한 이 폭력은 너무나 모멸적이고 또한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야만의 폭력은 법의 이름으로 강행된다. 주민들은 권력의 본질을 깨달았다. “경찰들은 말하대예. 주민들 보호 차원에서 나왔다고. 주민들 보호하기는 개뿔, 한전 보호하러 왔제.”(박은숙·단장면 동화전마을) 주민들은 국가의 거짓말에 당혹스러워했다. 주민 풀어달라는 탄원서인 줄 알고 서명했더니 합의서에 서명한 것으로 둔갑하기도 했다. 지방정부 관리들은 국무총리의 나노산업단지 유치 약속에 넘어가 주민들에게 눈을 흘겨댔다. 법원은 한전의 묻지마 고소고발을 잘도 받아들였다.

가장 견디기 어려운 건 주민들 내부의 분열과 갈등이다. 한전은 돈 몇백만원으로 주민들의 작은 이기심을 공략했다. ‘보상금을 언제까지 타가지 않으면 영영 받지 못한다’는 부류의 개인적 회유는 ‘너 때문에 우리 마을 전부 못 받게 됐다’는 집단적 협박으로까지 번졌다. “송전탑 싸움을 하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긴데, 싸움을 하다 보니까 국가가, 한전이, 권력가들이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정의가 아니고 불의를 내세워가지고 하는 거예요. 참 일찍이 몰랐다, (…) 진짜로 송전탑 문제 경험 안했으면 몰랐지예. 데모하시는 분들 이해가 갑니다. 일방통행입니더 (…) 송전탑이 없었으면 다 화목하게 살지예.”(안영수·산외면 골안마을)

누군가에겐 시아버님의 유언을 지켜야 할 고향 땅이고, 한평 한평 사모은 피와 땀이며, 병들고 지친 몸을 되살려준 기적 같은 생명의 산인 밀양 화악산. 발가벗고 인분 던지고 쇠사슬을 묶고 나무를 껴안고 고함치고 까무러치고, 다 해봤지만 이제 화악산엔 송전탑이 거의 다 세워졌다. 전체 52곳 중 5곳을 제외한 47곳에서 공사가 시작됐고, 이 가운데 17기가 완공됐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업이란, 이 싸움의 진실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것은 어르신들의 생애와 이 싸움의 소회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법과 제도의 모순을 폭로하고, 저들에 의해 저질러진 무간지옥의 폭력을 증언하는 과업일 것이다. 그리하여 여전히 오해와 몰이해의 문턱에서 서성이는 밀양 송전탑의 진실을 분명한 의미의 지평 위로 옮겨놓는 일이 될 것이다.”(이계삼)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오월의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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