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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승객 탈출시켜라" 관제 지시에도 선장·선원 먼저 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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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도 여객선 침몰 참사 / 진도연안 VTS 교신으로 본 사고초기 긴박했던 31분 ◆

매일경제

20일 전남 진도 사고 해상에서 해양 경찰들이 희생자의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지난 16일 전남 진도 조도면 해상에서 침몰한 세월호와 진도연안 해상교통관제센터(VTS)와의 사고 당시 위급했던 교신내용이 20일 공개됐다. 교신은 16일 오전 9시 7분부터 9시 38분까지 총 31분간 이어졌다. 교신 내용에 따르면 진도연안 VTS의 거듭된 탈출 권고에도 세월호 선원들은'안전한 객실에 대기하라'는 안내방송만 반복하는 등 우왕좌왕하다가 교신을 서둘러 끊고 먼저 탈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세월호는 16일 오전 9시 7분 진도연안 VTS에 "침몰 중이다. 해경 빨리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이어 9시 14분 "지금 배가 많이 기울어서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사고 발생(16일 오전 8시 58분, 해경 사고 접수 기준) 16분 만에 세월호 선원들은 사실상 손을 놓은 것이다. 9시 23분, "경비정 도착 15분 전, (안내)방송해서 승객에게 구명동의 착용토록 하라"는 진도연안 VTS 권고에 세월호는 "현재 방송도 불가능한 상태"라고 답했다. 2분 뒤, 진도연안 VTS는 탈출을 직접적으로 지시했다.

진도연안 VTS는 "세월호 선장님이 직접 판단하셔서 인명 탈출시키세요. 저희가 그쪽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선장님께서 최종 판단을 하셔서 승객을 탈출시킬지 빨리 결정을 내리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세월호에서는 "그게 아니고 지금 탈출하면 바로 구조할 수 있느냐"고 되묻기만 할 뿐, 승객 탈출대책 등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선장 이준석 씨뿐만 아니라 1ㆍ2ㆍ3등 항해사 4명, 조타수 3명, 기관장ㆍ기관사 3명, 조기장ㆍ조기수 4명 등 15명의 선박직 선원은 배가 침몰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탈출이 가장 쉬운 조타실 브리지(선교)에 모여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배가 침몰되는 상황에서도 승객을 우선 대피시키는 매뉴얼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세월호는 진도연안 VTS와의 9시 17분 교신에서 "지금 50도 이상 좌현으로 기울어져 사람이 좌우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이며 선원도 구명복을 입고 대기하라고 했다"며 "선원들도 브리지에 모여 거동이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고 보고했다.

이때는 세월호가 '객실에서 머물러라'고 내부적으로 안내방송을 했던 시점과 겹친다. 오전 9시 38분 세월호 선원들은 진도연안 VTS와의 교신을 끊었다. 사실상 이때 선원들은 먼저 여객선에서 빠져나와 전원 생존한 것으로 보인다. 해경과 민간 선박들이 급박하게 세월호에서 구조작업을 펼치는 상황에서 진도연안 VTS가 추가인명 구조를 위해 '세월호'를 끝없이 외쳤지만 답신이 없었다. 이후 1시간여가 지난 11시 18분께 세월호는 완전 침몰했다.

총 승선원 규모에서도 혼선이 계속됐다. 세월호는 교신에서 승선원이 450명이라고 처음 밝혔다가 500명으로 정정하기도 했다.

세월호에서 첫 탈출시간은 9시 14분으로 추정되는데 선원이 먼저 탈출했을 수도 있다. 당시 인근 구조선박이 "옆에 보트가 탈출하네요"라고 상황을 전했는데, 기관장 박 모씨(54)는 수사본부에서 "선장이 탈선을 하라는 말을 듣고 9시쯤 기관실을 벗어났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세월호 승무원이 12번 통신채널을 통해 제주 VTS에 '지금 배가 넘어간다'고 최초 신고한 시점은 16일 오전 8시 55분이다. 해경과 인근 선박에 모두 전파되는 비상채널 16번을 사용하지 않고 엉뚱하게 사고 지점에서 80㎞ 떨어진 제주 VTS와 교신한 것이다.

선박에서 통신 수화기를 들기만해도 비상채널인 16번으로 연결되는데, 이를 몰랐거나 다급한 마음에 실수한 것이다.

또 세월호는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인근 선박에 조난신호가 보내지는 비상신호용 '디스트레스 버튼'도 누르지 않았다. 이후 사고 상황을 파악한 제주 VTS는 사고 해역 담당인 진도연안 VTS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때까지 진도연안 VTS는 세월호 이상징후를 전혀 모니터링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세월호는 오전 8시 48분 서남쪽으로 급선회했고 8시 52분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느리게 지그재그로 움직였는데, 교신기록에서 보면 진도연안 VTS는 모니터링하고 있지 않다가 9시 6분에서야 다급하게 세월호에 '지금 침몰 중입니까"라고 호출했다.

앞서 세월호는 전남 진도군 조도면 맹골수도를 지나 사고 현장인 병풍도 북쪽 해상에 16일 오전 8시 42분에 진입했다. 이곳은 병풍도를 끼고 제주를 향해 뱃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리는 변침점(變針點)이라 반드시 배의 방향을 전환해야 했다. 그러나 해경 조사 결과 조타실에는 선장이 자리를 비운 가운데 운항 경력 13개월, 입사 5개월에 불과하고 이 해역서 처음 운항하는 항해사 박 모씨(26ㆍ여)가 거센 물살을 맞아 무리하게 변침 운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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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 문지웅 기자 / 목포 = 김명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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