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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과학을 읽다]과학적이지 않은 이 비참한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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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원인 제공자 엄중 처벌…부실한 재난대응시스템 책임도 물어야

아시아경제

▲가라앉는 세월호를 지켜만 볼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비참함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대한민국이 침통하다. 어이없다. 과학적이지 않다. 비통하고 비참함 그 자체이다. 살아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실종자들이 하나, 둘 싸늘한 죽음으로 발견되고 있다. 분초를 다투는 구조작업에서 현실적 한계만을 언급하면서 구조 활동이 지연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세월호 침몰 사건은 대한민국의 안전 불감증과 재난대응시스템의 허술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사고와 재난대응시스템에 국민들의 분노가 치솟고 있다. 사고 원인에 책임 있는 관계자는 물론 재난대응시스템에서 허술한 대처를 보인 정부 당국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총체적 인재, 너무나 비과학적인 대한민국=500여명에 가까운 승객과 화물을 실은 세월호가 조타(방향을 바꾸는 것) 한 번 잘못했다고 뒤집혀 졌다면 어디 그것이 배일까 싶다. 배의 기본은 복원력이다. 한쪽으로 기울게 되면 오뚝이처럼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이는 배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과학적 상식이다. 해당 지역이 빠른 조류로 악명이 높은 맹골수도(孟骨水道)라 하더라도 6825톤급 배가 뒤집혀 질 지경까지 사전 관리감독은 없었던 셈이다.

악명 높은 맹골수도를 항해하는데 선장은 침실에서 반바지 차림으로 쉬고 있었고 한 번도 그 지역을 운항해 본 경험이 없는 3등 항해사가 그곳을 지휘했다니 이 또한 어처구니없다. 세월호는 일본에서 도입한 뒤 객실을 넓히고 화물을 더 많이 싣기 위해 증축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복원력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무게중심이 상당 부분 상승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배가 기우는데 실은 화물이 한 쪽으로 몰렸기 때문에 기우는 정도는 더욱 가속화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또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10시간 넘게 인천에서 제주도까지 거친 바다를 항해해야 하는 배인 만큼 화물이 비상사태에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묶는 일은 상식이다. 배가 기울어지면서 화물과 자동차들이 한 쪽으로 쏠렸다면 이는 가장 상식적인 사전 준비마저 무시됐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여기에 선장과 승조원들은 배가 뒤집어 지고 침몰하기 시작하자 승객들에게는 "배에 그대로 있으라"고 안내방송한 뒤에 자신들은 정작 배를 빠져 나왔다. 세월호는 6800톤급에 길이 146m, 폭 22m다. 승객들이 타는 곳은 3~5층이었다. 만약 배가 90도로 기울었다면 한쪽 구석 객실에 앉아있던 승객의 경우 22m의 낭떠러지 위, 아니면 아래쪽에 있게 되는 셈이다. 아래쪽에 있는 승객들은 배가 기울면서 각종 짐들이 떨어지면서 타박상 등 일차적으로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갑자기 수평이던 객실이 22m의 수직 낭떠러지가 돼 버린다면 성인들이라도 오르기 쉽지 않다. 하물며 고등학생 2학년 학생들이 그곳을 빠져 나온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선장이나 승조원들이 배에 남아 객실에 머물러 있던 승객들에게 비상 안내와 대피하는 방법을 알려줘도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절체절명의 위험한 상황에서 선장과 승조원들이 모두 빠져 나가고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승객들의 혼란은 더욱 가중됐을 가능성이 높다.

배를 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여객선은 상당히 복잡하게 만들어져 있다. 미로와 다르지 않다. 자신이 있는 곳이 정확히 어딘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여객선은 배가 출항하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상에서 선장의 지휘아래 비상대피 훈련을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 비상훈련을 하는 것은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곳에서 비상사태에 어떤 경로로 어떻게 탈출해야 할 것인지를 미리 점검하기 위한 목적이다. 총체적 인재로 밝혀진 상황에서 세월호에서 과연 이런 비상대피 훈련이 실시됐는지도 의문이다.

비상식적이고 과학적이지 않은 일들은 여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500여명의 승객을 태우고 꼬박 반나절을 타고 가는 배에 누가 탔는지, 몇 명이 승선했는지도 기본조차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하니 도대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비과학적인 재난대응시스템=사고가 일어난 뒤 정부가 가동했던 재난대응시스템은 그야말로 실망 그 자체였다. 눈앞에서 배가 침몰하면서 서서히 가라앉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재난대응시스템을 두고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다. 구조하기 위해 투입된 배, 헬기, 구조대원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실제로 이들이 가라앉아 있는 배에 접근해 생존자들을 얼마나 빠르게 구조해 내는지 과학적 방법을 고민했어야 했다.

배안에 수 백 명의 목숨이 그대로 가라앉고 있는데도 '조류가 심하다' '잠수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첨단 장비를 실은 구조선이 도착해야 한다' 는 등 구조당국은 현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민간의 최첨단 장비를 왜 공수해 오지 못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오랫동안 잠수하고 면밀히 수색하기 위해 최첨단 장비가 필요했다면 민간업체의 장비를 헬기나 또는 기타 방법으로 신속하게 현장에 투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분초를 다투는 싸움에서 재내대응시스템의 기본은 지켜지지 않았다. 정부당국은 장비와 빠른 조류 등 어려운 상황만 강조한 채 '현장 접근이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와 관련 수중 선박 구조 전문가로 알려진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의 지적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 대표는 민간의 뛰어난 기술·장비를 잘 활용하지 못해 실종자 구조가 늦어지고 있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이 대표는 "해경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해경의 한계"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표는 해경이 민간업체의 장비·기술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수색하고 있는 중앙 입구에서 10~20m만 진입하면 실종자들을 찾을 수 있는데 3~4일이 지나도록 해경은 진입조차 하고 있지 못한 상황인 것 아니냐"라며 "정부에서 동원령이 떨어져야 다이빙 벨(잠수부를 수면에서 수심이 깊은 곳으로 이동시키는 데 사용하는 소형 잠수기구) 같은 장비를 준비 할 텐데 아직 까지 해경은 자체적으로 하겠다는 입장인 듯하다"고 아쉬워했다.

이 대표는 "현재도 민간인 잠수부가 작업을 주도하고 있지만 시스템이나 명령 계통, 장비 준비 계통 등이 현실적이지 않아 성과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나라 해상 재난대응 시스템이 여전히 미흡하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밝혔다.

사전 안전 점검은 물론 기본적 상식조차 지켜지지 않은 허술한 배를 띄우고, 배가 기울고 있는데 선장과 승조원들은 먼저 도망가고, 사고가 난 이후 현실적 한계만을 강조한 채 침몰하고 있는 배를 지켜만 봐야 하는 대한민국은 이번 사건으로 비통함과 비참함만 남았다. 언제까지 이런 참담한 경험을 계속해야 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고 원인 제공자는 물론 재난대응시스템을 제대로 가동하지 않은 정부 관계자 등에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온통 '이해할 수 없고 할 말을 잃는' 상황만 계속되고 있다. 그 사이에 우리의 소중한, 꽃다운 나이의 어린 학생들은 목숨을 잃고 아직 실종상태여서 슬픔은 더해지고 있다.
아시아경제

◆세월호 침몰사고의 실종자 가족들이 정부의 재난대응시스템에 대한 불만을 표촐하며 진도대교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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